리틀 포레스트 _ 냉이
잎사귀부터 뿌리까지 아낌없이 주는
봄이 오면 쑥, 달래와 함께 식탁에 오르는 봄나물은 바로 냉이이다. 어디서나 잘 자라기도 하고 요즘은 하우스 재배를 하기도 하니 봄을 알리는 식탁의 3 대장이라 부를 만하다. 봄이 오면 할머니 집 앞의 논두렁에는 아주머니와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웅크리고 앉은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양지바른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씩씩하게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쑥과 냉이를 캐기 위함이다. 어린 시절부터 봄이 오면 늘 봐오던 풍경이라 논두렁을 산책하다가도 쭈그려 앉아 한참을 머무는 아주머니들의 뒷모습을 볼 때면 으레 그곳에 봄나물이 자라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시골에서는 계절이 흐르고 있음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봄을 캐고 있는 할머니의 뒷모습에서 한번, 뺨을 간지럽히는 바람 냄새로 한번, 분주히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에서 한번 그리고 식탁에서 또 한 번 말이다.
냉이는 먹을 수 있는 채소를 의미하는 '나이', '나시', '남새', '나생이'에서 유래하는 순우리말 이름이다. 씹을수록 특유의 쌉싸름하고 특유의 향이 나는 냉이는 양지바른 논두렁이나 밭 언저리, 들판에서 자란다. 봄이 깊어가는 3-4월에 주로 채취할 수 있으며 잎과 줄기, 뿌리까지 모두 먹을 수 있는 식물로 잎과 줄기가 작은 어린 냉이가 특히 맛이 좋다. 요즘은 하우스에서 재배하기도 하지만 야생에서 나는 냉이의 향은 미처 따라가지 못한다. 할머니 집 식탁에 즐겨 오르던 냉이는 할머니가 국을 끓이기 위해 손질을 하실 때부터 그 향이 마루로 날아올 정도였으니 자연이 품은 것들은 차마 흉내 낼 수 없는 기품을 지니고 있다.
겨울이 혹독할수록 더 깊은 향을 내는 냉이
할머니가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붉은덕이라는 이름의 작은 시골 마을은 이제 동네주민이 스무 명이 채 되지 않는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와 비슷한 나이의 어르신들이 많이 계셨지만 하나 둘 지상에서의 소풍을 마치고 떠나셨고 이제는 할머니가 가장 나이 많은 어른이 되셨다. 가장 친하게 지내던 앞 집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부쩍 적적해하시던 할머니는 지난해부터 마을 회관 청소를 맡으셨는데 이젠 체력이 부쩍 예전 같지 않으신지 청소일도 이제 못하겠다며 이장님께 종종 전화를 걸곤 하셨다. 청소하는 날이 되면 회관에 다녀올테니 집에 있으라 말씀하고 문을 나서신다.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팔자로 향하는 느릿느릿한 걸음에서 할머니의 세월이 느껴진다. 청소가 없으신 날은 할머니와 아침을 먹으며 인간극장을 본다. 어린 시절에는 "띠리리링 띠링~ 띠링 딩딩"하는 비지엠이 참 지루하게 느껴졌는데 요즘은 어떤 예능보다 사람 사는 모습이 가장 재미있는 드라마처럼 느껴진다. 세대차이가 한참이나 나는 할머니와 내가 가장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바로 인간극장을 보며 서로의 의견을 나눌 때이다. 할머니와 티비를 마주보고 앉아 '사람 사는게 별 거 없구나' 라는 결론에 마주하고 나면 어느새 할머니는 부지런히 수건을 두르고 나갈 채비를 하신다. 회관 청소가 없는 날은 늘 텃밭의 잡초를 뽑거나 봄나물을 캐기 위해 밖으로 향하시는데 할머니의 말동무도 되어드릴 겸 나 역시도 뒷목을 가려주는 농촌 모자를 쓰고 일곱 살의 천진난만했던 모습 그대로 할머니 뒤를 따라나섰다. 물론 겨드랑이에는 구멍이 송송 뚫린 빨간 소쿠리와 적당히 흙이 묻은 호미가 담겨있고 말이다.
밭 비탈 여기저기에서 자라나고 있는 냉이의 이파리는 톱니바퀴 모양을 하고 있다. 톱니바퀴 모양의 잎사귀들이 뿌리를 기점으로 동그랗게 자라난 냉이는 칼로 줄기부터 채취하는 쑥과는 달리 뿌리가 다치지 않게 조심스레 호미로 땅을 파서 통째로 캐낸다. 냉이를 캐는 일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건 그렇게 캐낸 야생 냉이의 향이 마치 봄의 내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쑥도, 달래도 저마다의 특별한 봄 냄새를 품고 있지만 그중의 제일은 냉이라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쭈그리고 앉은 다리의 통증도 견디게 하는 그 향은 겨울이 추울수록 더 그윽하고 풍부해진다. 외부의 어려움을 견디며 안으로 더 깊어진 까닭이다. 몇 해 전, 호주의 유명한 와이너리에서 비옥한 땅보다 거칠고 투박한 토양에서 더 좋은 풍미의 와인이 생산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기치 못하게 위로를 받았던 경험이 있었는데 어려움을 자양분 삼아 더 단단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을 하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난 보기에 아름답고 상처나지 않은 것들보다 어려움을 겪고 단단하게 영글어가는 것들에 더 마음을 쏟는 경향이 있다. 온실 속에서 어려움이나 상처 없이 성장한 사람보다 흙에서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투박하게 자란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건 아마도 자연 속에서 추운 겨울과 모진 태풍을 겪어내고 안으로 더 풍성하게 자라나는 식물들을 마주하며 자랐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비록 멋지고 근사한 모습의 식물이 되진 못했지만 추운 겨울을 보내는 동안 깊은 향기를 차곡차곡 품은 냉이처럼 사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내가 가장 닮아가고 싶은 모습이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뒤 더 강한 향을 머금고 자란 냉이는 4-6월 사이에 꽃을 피워내는데 꽃말은 ‘나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이다. 정말이지 꽃말까지도 아름다운 봄철의 냉이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