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작은 손을 닮은 _ 고사리

리틀 포레스트 : 고사리

by Jessie
제목_없는_아트워크.jpg 고사리



비빔밥을 생각하면 오색나물과 빨간 고추장이 듬뿍 들어간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한다. 봄이 되면 뒷 산 둔턱에는 늘 고사리를 꺾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할머니 집 마당 한편에서 푸릇푸릇하던 고사리가 자그맣게 말라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 계절마다 있는 일이었다. 고사리는 어린 순이 부드럽고 먹기에도 좋아서 봄이 영글어가는 시기가 되면 할머니들은 작은 자루를 들쳐 메고 뒷산으로 향하곤 하셨다. 마른풀을 헤치고 하늘로 머리를 하나 둘 밀어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작디작은 아기가 손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떠오르는데 '고사리 손'이라는 표현이 이 모습에서 유래된 것도 과장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 순일 수록 손가락 같은 잎사귀를 자그맣게 웅크리고 있는데 우리는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조금씩 두터운 잎의 푸른 고사리가 되었을 테니 말이다.



고사리는 꽃과 종자 없이 포자로 번식하는 대표적인 양치식물이다. 양치식물이라 하면 삼엽충이 바닷속을 헤엄치던 고생대의 대표적인 식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고사리류는 세상에 나타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지구 상에 살고 있는 많은 생명체들이 환경에 적응하며 사라지거나 또다시 진화하기를 반복한 것처럼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고사리들도 그렇게 변화와 적응을 거듭하며 오늘날 우리의 식탁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래도 양치식물이 아주 오래 지구 상에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음지와 양지 어디든 가리지 않고 어떤 환경이든 잘 자랐기 때문이다. 오염되지 않은 땅을 제외하곤 어디서든 잘 적응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조상들은 우리네들도 그렇게 굳건히 살기를 바라며 제사상에도 고사리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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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는 뿌리를 길게 틔워 고사리를 번식시키는데 땅 속으로 깊이 1m 이상 자란다. 고사리는 씨앗을 딱히 판매하지 않는다. 고사리 뿌리를 잘라다 땅에 심으면 길게 뿌리를 퍼트리며 자라나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통통하게 물이 차오른 고사리 줄기를 꺾으며 소쿠리 가득 그것이 채워진 모습을 보는 것은 늘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일이었다. 초록이 가득한 고사리들은 밭 곳곳에서 죽어있는 풀더미 사이에서 앙증맞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새순이 꺾여 나간 고사리대에는 일주일이 지나면 다시 새순이 돋기 시작하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자라나는 고사리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허리춤까지 성장해 넓고 뻣뻣한 잎사귀를 뻗어낸다. 시원시원하게 뻗은 고사리는 제주도나 등산을 하는 길목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사실 전 세계적으로도 넓게 분포되어 있는 식물 중 하나이다.



푸른 고사리는 뜨거운 물에 푹 삶았다가 다시 찬 물을 부어 반나절 동안 담가둬야 비로소 독성과 쓴 맛이 빠지는데 이렇게 충분히 익혀지기 전에는 몸에 들어와 비타민을 파괴하기도 한다니 양날의 검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식재료가 아닐 수 없다. 고사리가 유독 야생동물이나 곤충들의 피해를 입지 않는 것도 다 날 것의 그것들은 독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잘 익혀진 갈색의 고사리들은 식탁에 오를 때면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는 명예로운 이름이 붙는데 나물임에도 불구하고 몸에 좋은 영양소들을 많이 품고 있어 사시사철 인기가 좋은 식재료라 할 수 있다.



할머니 댁에 가면 늘 이렇다 할 반찬없이도 나는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곤 했다. 어린 시절부터 시골에서는 햄과 같은 반찬이 없다는 걸 인식하며 큰 이유이기도 했지만 늘 할머니가 차려주시는 제철 재료 가득한 식탁이 하루 반 나절동안 뙤약볕을 쐬며 일궈낸 정성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그릇에 뜨거운 밥 한 주걱을 퍼담고 고사리와 콩나물, 무나물, 취나물을 가득 넣고 고추장, 참기름을 가득 넣고 슥슥 비벼 먹던 맛은 어른이 된 지금도 피곤에 지친 날이면 자주 떠오르곤 한다. 소고기가 없어도 그 허전함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입 안 가득 행복을 안겨주었던 그 밥상을 떠올리며 오늘 저녁은 고사리가 잔뜩 들어간 먹음직스러운 비빔밥을 준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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