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깊어가는 소리 _ 옥수수

리틀 포레스트 : 옥수수

by Jessie

여름이 깊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소리를 통해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다. 온통 초록으로 둘러싸인 할머니 집 거실이 밝아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가까운 어딘가에서 매앰- 매앰-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면 나는 누워서부터 그날 하루가 얼마나 더울지를 조심스레 예상해보곤 했다. 할머니는 이른 새벽녘이면 자리에서 일어나 수건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가까운 밭으로 나가셨다. 그리고 내가 일어나는 8시 즈음이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와 서른이 넘은 손녀와 손녀가 품고 있는 생명을 위해 아침을 차려주시는 것이었다. 살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내가 아침을 차리는 모습이 할머니는 늘 병아리처럼 보이시는 모양이다. 아무리 시집을 가고 아기를 가졌어도 어른들의 눈에는 여전히 내가 몇 십년 전 모습 그대로인가보다. 여름이 오면 땡볕에서 일을 하시다 몇 번이고 더위를 먹어 병원 신세를 지신 할머니께 이제는 일을 내려놓고 조금은 편안하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정씨 집안의 생계를 위해 평생 고생을 해오신 할머니의 고집이 한순간에 꺾일리는 없었다. 아빠가 할머니와 함께 살겠다고 말씀드렸지만 할머니는 혼자가 편하다며 여전히 시골집에 머물며 뱃속에 생명을 품고 돌아온 손녀만을 거두어 주셨을 뿐이었다.



정년퇴직을 한 아빠와 할머니는 올해 더 많은 시간을 밭에 쏟아부으셨다. 농사일이라는 것 역시 집안일처럼 부지런하지 않으면 티가 나는 것이라 할머니는 거의 매일을 잡초를 뽑거나 비료를 치러 그렇지 않으면 가지를 솎아내기 위해 밭에서 시간을 보내셨다.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늘 정갈하게 줄 맞춰 자라고 있던 작물들이 보통의 노력으로 이뤄진 게 아님을 곁에서 한참이고 보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올 해는 옥수수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할머니와 아빠가 작년보다 더 많은 옥수수를 심으셨다 했다. 뙤약볕 아래서 옥수수를 심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셨을지는 보지 않아도 조심스레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일 년생 식물인 옥수수는 봄이 깊어가는 4월에 씨를 뿌리고 8-9월이 되면 수확을 한다. 여름이 깊어가는 계절에 뙤약볕 아래서 수확을 해야 하니 수고롭지 않을 수 없지만 딱히 이렇다 할 간식이 없는 시골에서는 옥수수만 한 양식이 없기 때문에 할머니는 봄이 되면 잊지 않고 밭으로 나가 옥수수를 심는다.




여름이 되면 할머니와 집 안 식구들은 조금 더 야위고 까맣게 그을린 모습이 된다. 밭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마치고 온 어른들은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구슬 같은 땀방울을 수건으로 아무렇지 않게 훔치고서는 마루에 앉아 냉장고 안에 넣어둔 수박과 막 쪄낸 옥수수를 꺼내 배를 채웠다. 곁에 앉아 입을 거들던 나는 내가 먹은 옥수수와 엄마가 먹은 옥수수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옥수수를 알알이 깨끗하게 먹은 엄마의 것과는 달리 내가 먹은 옥수수는 늘 풀이 잔뜩 자란 들판처럼 옥수수 알갱이들이 중구난방으로 뜯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엄마처럼 깨끗하게 먹겠다며 옥수수 알을 손으로 한 알씩 떼어먹다 결국 급한 성격을 못 이겨 와구와구 먹던 나는 나이를 먹으며 어느새 엄마처럼 말끔하게 옥수수를 먹을 줄 아는 어른이 되었지만 가끔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먹고 싶은 것을 먹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곤 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를 먹으며 할머니의 고된 시집살이를 듣는 것은 내가 할머니를 위해 해 드릴 수 있는 최선의 위로였는데 지금의 나라면 결코 견딜 수 없는 모습이어서 이따금은 화가 나고 대게는 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를 미워하게 되곤 했다. 그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면 이러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시집을 온 할머니가 4남매와 남편, 시어머니 그리고 두 시누이를 모두 먹여 살리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옥수수를 파는 일이었다. 할머니 댁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현대 자동차 공장까지 옥수수 대야를 이고 가서 온종일 옥수수를 팔고 돌아와 녹초가 된 몸으로 다시 시댁 식구들과 자식들을 위해 저녁을 준비해야 했던 삶. 차가 있는 지금도 한 시간 가까이 운전해야 닿을 수 있는 곳을 70년 전의 할머니는 하루 20리가 넘는 거리를 옥수수 대야를 이고 걸어 나가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하루 종일 굶어가며 옥수수를 다 팔고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오곤 했으니 할머니의 청춘은 옥수수와 함께 조금씩 증발해버린 것이었다. 옥수수만 봐도 질리실 법도 할 텐데 할머니는 가족들을 위해 잊지 않고 이듬해의 농사를 위한 옥수수를 마루 언저리에 걸어두고 말려두셨다. 그렇게 잘 마른 옥수수 알갱이들을 적당한 간격을 두고 심으면 봄을 지나 초여름이 되어가는 동안 쑥쑥 자라나는데 내 키를 훌쩍 넘을 만큼 자란 옥수숫대에 서너 개의 옥수수가 달리는 것이다.



할머니는 옥수수라는 말보다 강냉이라는 표현을 주로 쓰셨는데 그래서인지 강냉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나는 할머니 집 마루에 앉아 매미 소리를 듣던 장면이 자주 떠오르곤 한다. 낡은 냄비 한 가득 뉴슈가를 넣은 옥수수를 쪄주시던 할머니가 그중에서도 제일 맛있는 찰옥수수를 내 손에 가장 먼저 쥐어주시던 것이야말로 가장 투박하고도 날 것의 사랑이었노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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