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 감자
여름이 되면 옥수수와 함께 떠오르는 간식이 있다. 뽀얀 속살을 가지고 있는 식재료 감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세계 4대 식량 작물 중 하나인 감자는 포슬포슬한 식감에 두어 개만 먹어도 만족스러운 포만감을 느낄 수 있어 캠핑 식량으로도 안성맞춤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집 역시 봄이 오면 더 바빠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감자에 있기도 하다.
전 년도에 수확해둔 감자는 이듬해의 농사를 위해 조금 남겨둔다. 감자의 씨눈이 있는 부분을 땅에 심으면 싹이 나고 가지를 길게 뻗으며 감자를 주렁주렁 맺는데 더위가 시작되는 6월부터는 감자의 수확철이라 영양가 높은 감자를 맛볼 수 있다. 올 해는 샛별이를 뱃속에 품고 할머니의 일손을 거들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에 거름을 줘서 영양을 보충해준 다음, 땅을 평평하게 만들어 비닐을 씌우고 쟁기로 물이 빠질 수 있는 고랑을 만들어 감자들에게 포근한 집을 만들어 주었다. 임산부가 무슨 노동이냐며 주위에서는 다들 말리거나 염려스러워했지만 자연 속에서 적당히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는 일이야말로 제일 좋은 태교라 생각하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농사를 도왔다. 그리고 감자처럼 동그랗고 예쁜 아이가 태어났고 말이다.
여행을 가서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쓰인 메뉴판에서 무엇을 선택할 지 알 수 없을 때면 선택하게 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Chicken(닭)이고 두 번째가 바로 Potato(감자)이다. 만국 공통으로 식탁에 오르는 재료이기도 하거니와 맛을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하기에 고를 수 있는 선택지인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그 선택은 실패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새로운 맛을 기대할 수도 없지만 말이다) 세계 어디서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감자는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장점이 있어서 유럽에서 인구 증가가 폭발적이었던 18-19세기 시절에는 그들의 주된 식량이 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양식이었다. 그리고 심지어는 물이 부족한 화성에서도 이론적으로는 감자를 재배할 수 있다고 밝혀졌다. 몇 년 전 꽤나 재미있게 봤던 '마스'라는 영화에서도 맷 데이먼이 화성에서 감자를 키워 몇 년의 시간을 홀로 버텨내지 않았는가. 굽기, 삶기, 볶기, 튀기기 등 조리법도 무척이나 다양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내가 자주 마시는 술(알코올)도 감자에서 추출한다고 하니 버릴 구석이 없는 식탁 위 베스트 프렌드이다.
감자는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 집의 주된 간식이었다. 과자 한 봉지를 사 먹으려 해도 50분을 꼬박 걸어 나가야 하는 시골 마을이었기에 과자보다는 늘 할머니의 밭에서 나는 것들이 간식으로 주로 등장했다. 할머니는 늘 눈 대중으로 뉴슈가와 소금을 넣어 대~충 간을 하셨지만 감자는 한결같은 맛을 냈다.(심지어 할머니가 간을 보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냄비 가장자리에 눌어붙은 감자였는데 그 부분은 유난히 짭조름하게 간이 되어 있어서 늘 내 차지가 되곤 했다. 그 간식은 매미 소리가 짙어지는 여름이면 늘 낡은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겨 내 앞에 놓였다. 밭으로 나가신 어른들을 기다리며 한 해도 빠짐없이 파란색 날개의 선풍기 앞에서 감자를 후후 불어 먹었다. 무더운 날씨에 뜨거운 감자를 먹는 일이 어린 나이에 익숙지 않았을 법도 한데도 투정을 부려본 적이 없었던 것은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새벽 4시에 정성껏 키운 농작물들을 이고 지고 시장으로 나가 하루를 꼬박 고생하고 들어오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란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번 돈으로 할머니는 내 대학 첫 등록금을 내주셨다. 한 봉지에 2-3000원 하는 고추나 깻잎을 몇 개나 팔아야 등록금을 벌 수 있는지 조심스레 생각하다 보면 나는 모든 계절의 작물들에게 빚을 지고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