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한 만큼 얻게 되는 정직한 일 _ 마늘

리틀 포레스트 : 알알이 영글어가는 마늘

by Jessie


녹음이 짙어져 가는 동안 만삭이 가까워져 마루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 한창 뜨거운 8월이 예정일인지라 날씨가 더워질수록 몸이 무거워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나와는 달리 할머니는 더워질수록 더 바빠지셨다. 만물을 깨우는 봄이 농사 중 가장 바쁜 시기인 줄 알았는데 농사에는 겨울을 제외하곤 한시도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 잠시 외출을 했다 돌아오면 거실은 늘 할머니 대신 햇살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신발을 갈아 신고 집 뒤의 밭으로 향해보니 할머니는 파보다 작은 녀석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무언가를 뽑고 계셨다. 가까이 가서 보니 할머니 손에 가득 들려있던 것은 식탁 위에 자주 오르던 마늘쫑이었다. 지난 가을에 심은 마늘이 싹을 틔우고 쑥쑥 자라며 새로운 잎사귀 사이로 또 다른 마늘 대를 키워내고 있었는데 이 녀석들을 제 때 뽑아주지 않으면 뿌리로 갈 영양분들이 모두 마늘쫑에게로 가버려 마늘이 상품 가치를 잃게 된단다. 그렇게 할머니가 부지런히 뽑아오신 마늘쫑은 장아찌가 되기도 하고, 마늘과 새우를 넣고 볶음요리를 하거나 파스타로 식탁에 오른다. 그래도 어떻게든 제 역할을 할 수 있어 다행인 셈이다.



마늘은 가을에 심어 그 다음 해 여름에 수확하는 작물로 고랑을 만들어 물이 잘 빠지는 밭에 심어준다. 9월 말 경에 심어 6월 경에 수확을 하기에 이모작이 가능한데 우리 집은 요즘 마늘을 뽑고 난 자리에 콩을 심는다. 가을에 심은 마늘은 서늘한 온도를 선호하는 성격이라 겨울이 되면 잠에서 깨어 싹을 틔울 준비를 한다. 추수를 하고 난 뒤 남아있는 짚더미를 흩트려 마늘을 심은 곳에 잘 덮어주면 추운 겨울 동안 땅 속에서 조금씩 영글어 갈 준비를 한다. 2-3월이 되어 땅이 녹기 시작하면 고개를 드는 마늘 싹은 봄의 오고있음을 알려주는 밭의 정령이다.



할머니는 하루에도 두세 번씩 뉴스를 보는 습관이 있으시다. 현역에서 일을 하던 나보다도 더 정치나 사회의 일들을 두루 아시기도 하고 할머니만의 식견이 있으셔서 젊은 세대인 우리와도 자주 사회 이야기를 나누신다.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알게된 것은 할머니가 하루에도 몇 번씩 뉴스를 보시는 이유는 바로 뉴스 끄트머리에 등장하는 날씨 소식을 확인하기 위함이셨다. 할머니는 일기예보를 보시고선 농작물들의 파종 시기와 비료를 주어야 할 시기 또 수확해야 할 시기를 결정하셨다. 이번 해는 부쩍 길어진 장마와 비 소식에 할머니는 마늘 수확을 조금 앞당기셨다. 비를 흠뻑 머금고 있는 땅에서는 마늘 줄기를 당겨도 마늘 알맹이는 하나도 나오지않고 줄기만 뜯겨버려 결국 호미로 땅을 파서 수확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마늘은 수확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볕이 좋은 양지에서 2-3일을 바싹 말려 흙을 털어내야 한다. 햇살이 내리쬐는 밭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할머니와 아빠는 마늘을 뽑아다 손수레에 실어 마당으로 날랐다. 마당에 차곡차곡 마늘이 쌓이면 할머니는 볏짚을 예쁘게 꼬아 마늘을 20개씩 엮어 내다 팔기 좋은 모양으로 만드셨다. 마늘 한 접이 100개라는 것을 서른이 다 넘어서야 알게 된 것은 조금 부끄러운 일이었다. 살아오면서 마늘 한 팩 대신 마늘 한 접이라는 말을 쓴 것이 처음이었으니 그럴만도 하지만 말이다. 할머니가 무심하게 손바닥을 비비면 볏짚은 할머니의 손 안에서 흐트러짐 없이 말려 마늘을 흔들림 없이 엮어주는 역할을 했고 순식간에 일렬로 정렬해 한 접의 마늘이 되었다. 나와 아빠는 대나무를 기울여 기둥을 세우고 할머니가 엮어두신 마늘을 한 접씩 들어 마당 한가운데 보기 좋게 널었다. 그 뒤부터 사나흘 동안은 모두 햇볕의 일이다.








잘 마른 마늘은 그늘진 창고의 기둥에 묶여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다. 할머니는 오일장이 열릴 때면 잘 마른 마늘을 한 두 접씩 내어다 팔고 오셨는데 오랫동안 장사를 하셨던 할머니의 작물을 기억하는 분들이 꽤 여럿이라 좌판에서 장사를 그만두신 지금도 손님이었던 분들이 할머니 댁을 찾아오시곤 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혼자가 되신 할머니께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을에서 할머니와 가장 오래 우정을 쌓고 지내던 앞 집 어르신이 돌아가신 후 마음이 부쩍 외로워진 할머니는 전보다 더 농사일에 열심히이시다. 몇 번이고 병원 신세를 지신 적이 있어 할머니를 말려보기도 여러 번이었지만 만남보다 헤어짐이 더 잦은 나이가 되면 생각이 자꾸 깊어져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할머니는 여든이 넘도록 여전히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고 계신다. 자식들 도움 하나 받지 않고 굽은 허리로도 올곧게 사시는 할머니를 우리 가족들은 늘 존경의 마음으로 모시고 있다.



수면 위에서는 온화해보이지만 물 밑에선 쉴 틈 없이 갈퀴질을 하는 백조처럼 시골살이야말로 멀리서보면 평화로워 보일 뿐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쉴 틈 없이 몸을 움직여야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일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 류준열이 도시 생활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면서 그런 대사를 하지 않았던가. '움직인 만큼 결과를 만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일'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일이 가장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 같다고. 때가 되면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또 수확을 하면서도 이듬해 농사를 생각해야 하는 끝이 없는 일. 그래서 할머니는 쉬는 와중에도 밭으로 가 잡초를 뽑거나 마늘쫑을 뽑으신다. 서른 해가 다 되도록 할머니가 보내주시는 농작물들을 그저 받아 먹기만 했는데 내 안에 작은 생명을 품고서야 고향으로 돌아와 나를 지금껏 키워준 것들이 어떻게 자라나는지를 곁에서 살피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서른이 넘어 내가 한 선택 중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할머니의 농사를 도우며 많은 것들을 배움은 물론 오랫동안 채워지지 않았던 마음의 허기까지도 가득 채웠으니 뱃속의 샛별이에게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마음을 줄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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