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 밤
나는 사계절 중에서도 가을을 가장 좋아한다. 내 생일을 비롯해 친정 식구들과 짝꿍의 생일이 있는 계절이어서기도 하지만 하늘이 유난히 푸르고 뺨에 닿는 바람의 감촉이 저절로 웃음이 나게 하는 이유에서다. 이런 사랑스러운 계절에는 나무마다 저마다의 결실이 올망졸망 달리는데 그 중 내가 가장 기다리는 것은 바로 밤이 익어가는 시기이다. 삶아 먹어도, 구워 먹어도 달콤하고 맛있는 밤은 먹는 재미만큼이나 따는 재미도 쏠쏠하기 때문이었다.
우리 가족에게는 정말 보물같은 밤나무가 하나 있다. 이 나무에서 열리는 밤을 먹으면 사다 먹는 밤은 멀리 밀어내버릴 정도로 밤의 알이 굵고 맛이 깊어서 가족 모두가 그 나무를 아꼈다. 할머니가 열여덟의 나이에 시집오며 심었던 밤나무인데 할머니가 올해 여든셋의 나이가 되셨으니 사람의 나이로 치면 65살이 되었다. 마을 입구의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녀석은 튼튼한 기둥 위로 여러 개의 가지를 뻗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는데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새들에게 쉴 곳을 내어주고 가을이면 통통한 알밤을 가득 품어 우리를 기다린다. 그 기다림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나는 가을이 되면 가족들과 밤 따는 모습을 종종 떠올리며 고향 앓이를 하곤 했다.
밤 따는 날이면 가족들은 모두 장화로 갈아 신고 각자 기다란 나뭇가지를 챙겨 마을 어귀의 언덕으로 향한다. 밤나무를 밟고 올라가 밤송이를 털어줄 역할을 하는 아빠는 기다란 대나무 장대를 들고 앞장을 서고 그 뒤로 할머니와 나 그리고 엄마가 양동이를 들고 뒤를 따른다. 낙엽과 풀이 많은 곳은 모기를 비롯해 벌레나 뱀을 조심해야 해서 긴 팔의 셔츠와 긴 바지 그리고 장갑이 필수다. 아빠가 밤나무를 밟고 올라가 잘 익은 밤송이가 달린 나무줄기를 장대로 툭툭 치면 밤송이들이 후드득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우리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밤송이들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아빠의 역할이 모두 끝난 다음에 나무 아래에서 저마다의 방법으로 알밤을 줍는다. 지금은 남편이 된 짝꿍이 할머니 댁에 인사를 왔던 것도 마침 가을이었는데 우리 가족들과 함께 밤을 따러 간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몇 번이고 밤 따는 일을 자랑하는 모습을 보면서 꽤 흐뭇했던 기억이 있다.
밤은 따가운 가시의 밤송이에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다시 겉껍질에 떫은 속껍질로 싸여 있으니 여간 접근하기 어려운 열매가 아닐 수 없다. 일단 따가운 밤송이를 벗겨내고 나면 맨들맨들한 알밤은 맨 손으로 만질 수 있기에 밤 따기는 밤송이에서 알밤을 구출해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밤송이는 익기 전엔 푸릇푸릇한 색이지만 잘 익고 난 후에는 짙은 갈색으로 변하며 알밤들을 내보낼 수 있게 밤송이를 터트린다. 잘 익은 밤송이는 밑창이 두툼한 신발로 잘 밟아 알밤을 주으면 되지만 덜 익은 밤들은 알밤이 나올 틈조차 없는 밤송이 그대로의 모습이기 때문에 끝이 뾰족한 나뭇가지로 밤송이의 배꼽 부분을 겨냥해 알밤을 꺼내 주어야 한다. 이따금은 채 영글지 않은 알밤들도 만나게 되는데 그런 녀석들은 아직 단단하지 않은 뽀얀 껍질을 입은 상태이다. 하지만 맛은 잘 익은 밤과 비교해 나무랄 데가 없으니 성숙하지 않았다고 미워할 필요는 없다.
내가 밤을 먹는 방법 중 가장 좋아하는 건 바로 할머니 집 아궁이에서 군밤을 만들어 먹는 일이다. 너무 오래 묻어두면 먹을 것 하나 없이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아서 아궁이 앞을 서성이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겉껍질에 칼집을 내지 않으면 아궁이 안에서 밤이 폭발해버리기에 칼집을 내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어렵게 쟁반에 놓인 군밤은 늘 까는 속도보다 먹는 속도가 더 빨라서 아쉬움을 남기곤 했다.
할머니는 수확한 알밤들을 냉동실에 넣어 두셨는데 그렇게 보관해둔 밤들은 설날과 추석이 되면 제사상에 잊지 않고 올리셨다. 그 이유인 즉슨, 다른 식물들은 씨앗이 발화하면 나무가 되어가는 동안 사라지지만 밤은 최초의 모습인 알밤의 모습 그대로 나무 아래 달려 있기에 조상의 뿌리를 기억하자는 의미로 제사상에 올리는 것이라 하셨다. 초심의 모습을 종종 잊고 사는 나 역시도 밤을 앞에 두고 조금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와 맞는 아주 오랜만의 가을이다. 샛별이가 8월 첫째 날 태어난 덕분에 여름의 끝자락부터 계절이 어떻게 흐르는지를 느끼지도 못한 채였다. 할머니는 새로운 식구가 늘어나며 어느새 증조할머니가 되셨지만 그럼에도 샛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기뻐하고 계신다. 내가 조리원에서 회복을 하는 동안 할머니는 증손주 얼굴 보기를 무척이나 기다리셨는지 내가 도착하는 소리에 벌써부터 버선발로 현관 앞까지 나와계셨다. 한참 샛별이를 안고 계시던 할머니는 나에게 줄 것이 있다며 아이를 이불 위에 눕혀두고 주머니를 뒤적거리셨다. 그리고 내 두 손에 쥐어주신 것은 바로 올해 첫 수확한 할머니의 밤 다섯 알이었다.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들으시고선 이른 아침부터 밤나무 아래에 다녀오셨다고 했다. 아이를 낳느라 고생했을 손녀를 위해 무엇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마음이셨을 것이다. 동이 트자마자 밤나무 언덕배기를 두리번 거리셨을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토록 헌신적인 사랑을 받고 자랐으니 삐뚫어질 새도 없이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세상의 찬 바람에 휘청거려 쓰러질 때면 고향의 풍경들을 떠올리면서 다시 무릎을 털고 일어났을테고 말이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이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가에 기쁨이 가득했다. 그런 할머니를 오래오래 바라보다 무심코 내려다 본 손바닥 위에는 가을을 가득 품은 밤 다섯알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가을을 만지작거리며 나는 따뜻한 어른이 되고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