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갛게 익어가는 그리움_ 감

리틀 포레스트 : 감

by Jessie


우리집은 저녁을 먹고 뉴스를 보며 가족이 함께 과일을 먹는 문화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래왔으니 저녁을 먹고나면 저마다 편한 자세로 거실에 앉아 오늘 먹을 과일을 기다리는 것이다. 엄마가 쟁반에 담아 들고오는 제철과일을 보며 계절이 어떻게 흐르는지를 알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가을이 오면 늘 등장하는 단골손님은 바로 감이었다. 할머니 집 옆 텃밭에 주렁주렁 열린 감들은 아주 작은 초록에서 시작해 조금씩 부풀다가 빨갛고 예쁜 노을빛으로 영글며 비로소 가을을 알린다. 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와 장대를 들고 감을 따러가던 기억이 자리하고 있으니 아마 그 나무들은 나만큼이나 혹은 나보다 나이를 많이 먹은 친구들임에는 분명하다. 엄청나게 크고 날씬하게 뻗어있는 나무는 아니지만 매년 주황빛 감들이 가지마다 자리를 잡는데 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작고 야문 나무'가 아닐 수 없다.



가을이 오면 가족들이 분주해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감나무에 있다. 이른 아침, 논에 다녀오고 나면 점심을 먹고 오후 느즈막히 길고 가느다란 대나무 장대를 든 어른이 앞장을 서신다. 그러면 양동이를 들고 그 뒤를 쫄래쫄래 따르는 것이다. 감나무 아래 떨어진 감을 줍다보면 양동이가 금새 가득 차는데 돌아오는 길에 양동이는 힘이 센 어른들의 몫이 된다. 장대를 이용해 따는 감들은 대게 높고 햇살을 잘 받는 곳에 있어서 빨갛게 익어 홍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할아버지는 늘 예쁜 홍시를 따서 나와 동생에게 쥐어주셨다. 살짝만 껍질을 눌러도 금새 달달한 홍시의 과육이 터져나오던 기억. 그래서 홍시를 먹은 날은 늘 끈적끈적한 손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바닥에서 깨끗한 감나뭇 잎을 주워 홍시가 잔뜩 묻은 손을 닦아주곤 했다.




우리나라 신생대 지층에서 감나무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에서 미루어보면 감나무의 역사는 인간의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조심스레 유추해볼 수 있다. 감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서 주로 재배하는데 서구권에서는 그다지 인기 있는 과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배와 함께 대표적인 과일이었던 터라 내가 자라던 유년시절에 감나무는 동네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가을이면 장대를 들고 무리 지어 감을 따러 가는 이웃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떠올려 볼 수 있던 걸 생각해보면 요즘은 빼곡하게 들어선 건물과 도로들이 과거의 풍경들을 많이 지워버린 것 같아 조금은 아쉽고 쓸쓸하기도 하다.



증조할머니는 본채와 별개로 지어진 작은 온돌방에 사셨다. 짚으로 덮인 온돌방 굴뚝에서는 매일 나무를 떼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었고 할아버지는 아궁이에 소죽을 쒀다 소에게 먹이곤 하셨다. 그런 겨울 풍경 속에서 꽤 오래 기억에 남아있는 장면은 증조할머니에게 곶감을 얻어먹던 나의 어린 시절이다. 증조할머니는 기다란 곰방대에 솔 담배를 뜯어 담뱃재를 꼭꼭 눌러 담고 화로대에 불을 붙여 담배를 피곤 하셨다. 그 장면이 여전히 생생한 걸 보면 증조할머니가 내가 꽤 성장했을 때까지도 한결같은 모습으로 온돌방 문을 열고 툇마루에서 담배를 피우고 계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증조할머니 방에 놀러 가는 건 어린 나에게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온돌방의 불이 너무 세게 지펴진 곳은 장판이 까맣게 눌어붙어 할머니가 늘 이불을 깔아 두셨는데 귀가 떨어질 것처럼 추운 날에는 그 이불 안으로 들어가 방바닥에 누워 겨울을 용케 피해 가곤 했다.



증조할머니의 살림살이는 무척 소박하고 간소했다. 한 평생 돈이라곤 벌어보신 적이 없으셨기에 증조할머니가 증손녀에게 해주실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작고 소박한 것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려보면 증조 할머니의 작은 마음들은 내가 가진 세상의 큰 행복이기도 했다. 증조할머니는 어린 내가 문지방을 열고 들어가면 매번 낡은 장롱 속 숨겨놓은 보자기를 풀어 소중한 것들을 나눠주곤 하셨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 없을만큼 빡빡 머리 시절의 내가 담긴 사진 몇 장과 낡은 신문지에 싸인 마름모꼴의 설탕이 가득 묻은 박하사탕 같은 것들 말이다. 이따금 그곳에서 과일맛 젤리가 나올 때면 하루가 무척이나 풍요롭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마저도 없으실 때면 할머니는 온돌방 처마 밑에서 가장 소중하게 아껴둔 것을 꺼내 주곤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곶감이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주렁주렁 달려있던 감들이 알맞게 마르고나면 짙은 밤색의 곶감이 되었다.



감들도 저마다의 용도가 있어 떫은 감은 홍시로 만들고 단감은 가족들에게 나눠줄 몫으로 포대에 담긴다. 나무마다 몇몇의 잘 익은 감들은 새들의 몫으로 남겨지곤 했는데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며 으레 나 역시도 자연에서 난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생명들을 배려하는 법을 배웠다. 이런 마음들은 마음이 너무도 메말라버린 순간들에 거짓말처럼 떠올라 나를 몇 번이고 일으켜 세워주었다. 무엇 하나 허투루 자라는 것이 없는 시골의 풍경들. 할머니가 날 위해 남겨두신 홍시를 입 안 가득 우물거리며 나는 아이에게도 가장 날 것의 아름다운 것들을 물려주겠다고 몇 번이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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