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 벼
할머니가 지으시는 농사 중에서 가장 많은 품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작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제일 먼저 벼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른 봄에 시작해 가을이 되어야 비로소 추수를 할 수 있는 벼는 우리의 밥상에 오르기까지 몇 번의 크고 작은 공정들을 거친다. 씨를 뿌리고 수확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계절이 바뀌고 벼가 성장하는 동안 몇 번이고 안부를 묻는 수고로움을 거쳐야만 노란 황금들녘의 모습으로 거듭나게 된다.
우리에게는 매일 마주하는 평범한 한 끼의 식사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일 년간의 땀방울과 노력이 들어간 결과물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나는 먹을 만큼만 덜어먹는 문화를 좋아한다. 잔반통에 남겨지는 밥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픈 이유에서다. 구슬땀을 흘려가며 수확한 쌀이 버려지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 학창시절에는 잔반통을 지날 때 눈을 질끈 감을 때가 많았다. 농사를 짓는 집에서 나고 자란 숙명이라고나 할까. 여름이 저물고 가을의 초입이 되면 어김없이 태풍이 지난다. 매일 뉴스를 켜놓으시는 할머니는 그맘때 즈음이면 일기예보를 보며 한숨을 쉬곤 하신다. 그럴 때면 곁에 있는 나 역시도 할머니의 한숨에 물들어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고 나약한 지를 시골 사람들은 너무도 잘 안다. 피부로 느껴지는 일들이기 때문일테다. 거센 태풍이 휘몰아치는 동안에도 논 걱정을 하느라 할머니는 밤 잠을 설치곤 하시는데 이른 아침 동이 트고 나면 비바람이 휩쓸고 간 흔적들을 정리하기 위해 논으로 향하신다. 가족들은 늘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노란 고무장화를 신고 빗물이 가득 찬 논으로 들어가 넘어진 벼들을 다시 일으켜 볏단으로 묶었다. 추수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기에 물에 잠긴 벼가 썩지 않게 하려면 인위적으로 세워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해를 잘 보낸 벼들은 노랗게 고개를 숙이며 가을이 되었음을 알린다.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옛말을 떠올리다 보면 자연에서 지혜를 찾던 선조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거니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진리는 자연에서부터 비롯될 수 밖에 없음을 깨닫는 시간이 온다.
한 해의 벼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는 우선 이른 봄부터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한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좋은 품질의 볍씨를 가려내는 일인데 작은 볍씨를 쉽게 가려내기 위해서는 볍씨가 들어있는 곳에 소금물을 붓고 물에 뜬 볍씨를 걸러내준다. 그렇게 얻은 볍씨들은 곧바로 논에 심는 것이 아니라 평평하게 흙을 담은 모판에 뿌려지는데 몇 주 후 푸릇푸릇하게 올라온 모종을 논에 심으면 비로소 봄이 깊어질 시기가 된다.
경운기를 타고 논으로 간 아빠와 삼촌들의 출출함을 책임지는 것은 집에 남은 식구들의 몫. 나는 종종 국수 소면 바구니를 머리에 인 엄마를 따라 멸치 육수가 가득 담긴 놋쇠 주전자를 들고 논으로 향했다.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는 논들은 어린 내 걸음으로는 한참을 걸어야 도착할 수 있었는데 엄마와 함께 새참을 들고 아카시아가 주렁주렁 피어있는 길을 걸으며 아카시아 꿀을 따먹던 추억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다. 작은 아카시아 꽃이지만 꿀만큼은 무척이나 달콤했고 엄마와 함께 엄마의 어린 시절을 함께 공유하며 걷던 시간들이 어른이 된 지금도 자주 떠오른다.
벼는 많은 나라에서 주식으로 꼽히는 작물이다. 비가 많이 오고 인력을 구하기 쉬운 곳에 재배하기 적합해서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주로 생산이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라 심고 나면 시기마다 비료를 주어야 하고 강수량에 따라 둑의 물을 막거나 빼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고 또 벼를 수확함에 있어서도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식구가 함께 살던 과거에는 집집마다 재배하던 필수 작물이었지만 뿔뿔이 흩어져 사는 오늘의 가족 형태에서는 농사의 규모를 한껏 줄이거나 농사를 짓는 대신 쌀을 사먹는 모습이다. 우리 식구 역시도 가족들이 다같이 먹을 만큼만 농사를 짓는 중이라 예전보다는 훨씬 농사일이 줄었다. 그래도 농사를 핑계로 가족들이 자주 할머니를 찾아뵙게 되니 우리 집은 가족보다는 밥을 함께 먹는 '식구'라는 표현이 조금 더 어울리는 단어처럼 느껴진다. 짝꿍과 서울살이를 하면서 둘 밖에 되지 않는 우리조차도 함께 저녁 먹는 일이 어려울 때가 많았는데 샛별이를 품고 돌아온 고향에서는 매일 가족들과 밥을 먹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함께 밥을 먹는 일이 언뜻 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함께 끼니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온도가 조금 더 높아지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반가운 이에게 으레 '밥은 먹었어?'라는 인사를 건네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