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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Nov 30. 2023

우리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되어가면 돼

나의 오랜 친구에게서 배운 것들

5월의 산티아고 순례길 


 스물여섯의 5월을 떠올리면 늘 아련한 마음이 되곤 한다. 5월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추워서 피레네 산맥에 눈이 쌓였던 기억. 파리의 도심을 하염없이 걸어 다니는 동안 친구가 벗어준 후리스가 그토록 따뜻하고 감사할 수가 없었던 일. 숙소에서 만난 언니에게서 물이 없어서 피레네 산맥에 쌓인 눈을 떠서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꾸벅꾸벅 잠에 빠져들었던 시간. 


 스물여섯이 되던 해에 나는 산티아고로 떠났다. 5년 동안 간절히 머릿속에 담았던 그 길을 걷기 위해서. 홀로, 낯선 나라로 떠나는 일에 있어서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훨씬 앞섰던 시절이었다. 순례자로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걸음을 옮기며 나에게 깨달음을 주는 이들을 매일처럼 만났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부터 70대 할머니 심지어는 당나귀와 강아지를 데리고 함께 순례를 떠나온 사람들까지. 그리고 H는 내가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 중 가장 오래된 인연이자 내 인생에 가장 따뜻한 친구가 되었다.


 그와 나의 첫 만남은 알베르게라는 한 숙소에서부터였다. 한국인은 한국인을 알아보는 법이라 무거운 배낭을 메고 숙소에 들어섰을 때 몇몇 한국인들이 반가운 인사를 건네왔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며 누군가가 배낭에 소중하게 담아 온 고추장과 라면수프를 꺼냈고 삼삼오오 재료비를 모아 닭볶음탕을 만들어 먹었던 자리에 H가 있었다. 나보다 세 살이나 어렸지만 이따금 함께 걸으며 나눈 대화 속에서 늘 어른스러움이 느껴지던 친구. 함께 길을 걸으며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부분의 시간 속에서 나는 대게는 말을 하는 사람이었고 그는 대게는 듣는 쪽이었다. 걷는 리듬과 속도가 비슷해서 우리는 자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누군가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래, 함께 걸어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때의 우리는 서로를 가장 많이 이해하는 사람이었을 거라고. 그 시간들이 적어도 우리에게만큼은 그러했다. 






@ 우리가 걸음을 맞춰 걷던 시간들


 올해로 산티아고에 다녀온 지 딱 10년째. 10킬로그램이 넘는 배낭을 메고 하염없이 길을 걷다가 한적한 오솔길에 벌러덩 누워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기도 하고 새벽부터 걸음을 옮기다 낮 열두 시 언저리에 또르띠야와 함께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켜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만 하염없이 흐른 듯한 기분이다. 일 년에 두세 번 즈음 안부를 주고받는 H와는 5년 만에 전시회를 계기로 서울에서 만남을 가지기로 했다. 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수서역에 내리자마자 멀리서 반가운 얼굴이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다, 정말!" 


"누나, 잘 지냈어?"

 


 아침 일찍 여는 콩나물 국밥 집에 들어가 뜨거운 뚝배기 두 개를 앞에 두고 우리는 몇 년 동안 수북하게 쌓인 안부를 건넸다. 시간이 흘렀으니 서로의 얼굴에 내려앉은 세월의 흔적은 지울 수가 없지만 마음으로 분명하게 느껴지는 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발견한 각자의 화살표를 따라 서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시절, 우리가 가지고 있던 순수함은 작디 작아졌지만 여전히 마음은 때 묻지 않은 모습이었다. 


 꿈을 위해 얼마 전부터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연필을 들었다던 H는 10년 전처럼 여전히 깊게 반짝이는 눈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 매일 책상 앞에 앉아 까만 활자를 부지런히 따라가면서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늘 회사에 남아 공부를 하고 오셨다는 그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늘 부러운 마음이 들곤 했었는데 이젠 그가 아버지의 모습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그가 10년 전에 자랑스럽게 말했던 그의 아버지 모습처럼 말이다. 그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게 된 이유도 역시 아버지로부터 권유를 받게 되면서부터였다. 한국인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던 시절, 홀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돌아온 아버지는 아들에게도 멋진 경험을 전하고 싶어서 비행기 티켓을 건네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신발과 가방을 짊어지고 온 그가 마침내 길 위에서 나의 소중한 동료가 된 것이었고 말이다.  






@ 알베르게에서의 장면들 


 산티아고에서 돌아오고 10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호주에서 돌아와 결혼을 했고 한 마리의 강아지와 한 아이를 책임지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엄마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H 역시도 군복무를 마치고 회사생활을 하다 꿈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것이었다. 산티아고에서 돌아와 제대로 돈도 벌지 못하는 일을 열정 페이로 이어나가는 동안 아낌없이 응원해 주었던 그를 생각하면 나는 늘 용기가 났다.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는 길을 걷기 위해 홀로 인천공항으로 떠나던 날, 헐레벌떡 달려와 편지와 함께 내 등을 두드려주던 그 모습은 아마 오래도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출국장에 들어와 탑승을 기다리며 열어본 편지봉투 속에는 아르바이트로 어렵게 번 돈과 함께 멀리서도 끼니 거르지 말고 잘 지내라는 응원이 담겨 있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는 말이 있지. 

누나를 보면 나는 내가 연탄재처럼 온몸을 다해 뜨거워 본 적이 있었는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아 

늘 마음을 다해 사는 누나에게서 뜨겁게 사는 법을 배운 것 같아. 고마워"



 마음이 부쩍 차가워질 때면 우리가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하나씩 꺼내어 온기를 채운다. 매사에 부족한 나지만 그 편지들을 읽다 보면 나는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이 생겨난다. 지금은 설령 아무것도 아닌 모습일지도 모르겠지만 내일은 꼭 더 나아지리라는 다짐과 함께. 

 지난 주말, 서울은 적당히 춥고 적당히 푸근한 온도였다. 떠올리면 마음이 아렸다가 아득해지는 이를 만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그런 날씨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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