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합니다.
올 해가 시작되고 가장 큰 변화는 책상에 앉는 습관이 조금 더 익숙해졌다는 점이다. 한 달 반이나 브런치 글의 부재가 있었기에 그럼 그동안은 도대체 글을 쓰지 않고 무얼 했는지 물어오시는 분이 있으실지 몰라서 고백하자면 요가 지도자 자격증 과정을 밟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미 강의가 절반이나 시작된 상태에서 나 홀로 들어갔던지라 생소한 산스크리트어와 자세 이름과 동작 하물며 근육과 뼈대의 의학용어까지 모두 줄줄 외워야 했고 글을 쓸 만한 마음의 여유가 증발되었다. 그래도 시험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가 글을 쓰고 있음을 알고 있는 지인들이 청첩장 글귀를 부탁하거나 새롭게 시작하는 브랜드 소개글 등을 부탁해서 글을 쓰는 근육은 착오 없이 일을 해나가는 중이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을수록 문득 드는 생각은 그래도 내가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 편인지 또 무엇을 잘하지 못하는지를 비교적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침형 인간,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인간관계에 있어 딱딱하더라도 어느 정도 선을 지키는 사람을 선호하며, 매일의 정해진 루틴이 있고, 산책을 하며 마음의 긴장을 내려놓고 아이디어를 얻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자 30개월을 갓 넘긴 남자아이와 천방지축 강아지를 돌보며 바득바득 밤 시간의 고요를 즐기기 위해 기를 쓰고 일어났다면 요즘의 나는 아홉 시가 되면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서너 권 읽고 침대에 누워 함께 잠이 든다. 그리고 아침 여섯 시 언저리에 일어나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나의 작은 행복이자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아침의 루틴은 이러하다. 눈을 뜨자마자 시계를 확인하고 살금살금 거실로 나와 냄비에 물을 채운다. (언제 떠날지 몰라서 물 끓이는 주전자를 사지 않았었는데 떠난다고 마음을 먹기까지 일 년 가까이의 시간이 걸렸고 이젠 이 루틴이 익숙해져서 물 끓이는 주전자를 사지 못했다.) 가스레인지에 불붙는 소리가 유난히 도드라지는 시간이다. 그날, 그날의 기분에 따라 믹스커피 한 봉을 톡톡 털어 다이소에서 산 꽃무늬 커피잔에 담거나 하얀 머그잔에 아메리카노 한 봉지를 툭 털어 넣는다. 화장실에서 지난 밤동안 쌓여있던 용무를 해결하고 나면 비로소 책상에 앉아 온전한 아침을 보낸다. 귀에 거슬리지 않지만 있는 듯, 없는 듯 들을 수 있는 백색소음을 찾기 위해서도 많은 시도를 했는데 끝내 정착한 것은 실제 자연의 소리를 담은 유튜브였다. 공부할 때면 비 오는 날의 장작소리를 듣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면 가을밤 풀벌레 소리를 켜둔다. 실제로 담은 영상과 소리라서 그런지 그 어떤 위화감이나 거부감 없이 소리에 녹아들어 책상에 놓인 것들에 집중할 수 있어서 무척이나 감사함을 느끼는 중이다.
새해가 되기 전부터 여섯 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시작했다. 거창하게 마음을 먹거나 목표를 정하지도 않았고 시작하기로 다짐한 날부터 아무런 조건 없이 일어났으니 핑곗거리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이젠 어둑한 공부방에 스탠드를 켜놓고 의자에 앉는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리고 조금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일은 나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되었다. 하루의 루틴이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영상을 얼마 전 본 적이 있다. 되돌아보면 우울에 젖어있던 시절에도 나에게는 꼭 지켜야만 하는 루틴이 있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면 운동화를 신고 매일 강아지와 산책을 나갔고 일주일에 한 번은 도서관에 들러 아이를 재우고 나면 책을 읽었다. 내가 비교적 큰 헤맴 없이 우울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 어쩌면 그 시절에 내가 꾸준히 해오던 두 가지 일 덕분이었음을 이제는 잘 안다. 또 다른 미래의 내가 아침 여섯 시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될 때까지 앞으로도 큰일이 없다면 조금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 볼 참이다. 하루 한 시간이지만 이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이면 어떤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작은 기대를 해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