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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Apr 29. 2024

엄마는 오늘도 너에게 배웠어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8개월까지 모유를 먹고 자랐으니 건강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고 여긴 아들이었지만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그런 자신감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마주하는 바이러스들을 차례로 달고 오는 터라 병원 선생님들은 이제 아이의 이름, 성격 그리고 멀리서 보이는 차량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인지하기 시작하셨다. 인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자란 터라 아이에게도  인사를 시키는데 조그마한 녀석이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는 다소 귀여운(?) 모습과는 달리 진료실에 들어가면  소리로 울어대며 오징어 다리 꼬듯 몸통을 비트는  역설적인 모습이 아마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래도 진료실을 나오면 언제 울었냐는 듯 간호사 선생님을 따라가 무릎에 앉는  모습 덕분에  아들의 양손에는 비타민 사탕이 가득하다. 친절한 선생님들 덕분에 병원에 가는 일은 그다지 무서워하진 않지만 엄마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병원에 가는 일이 조금은 줄어들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무시무시한 대기 시간과 아이를 데리러 오가는  모든 일들이 수고로운 이유에서다.



 어린이집 생활을   즈음하고 나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이 생겨서 병원에 가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고 했는데  학기가 되어  많은 친구들과 단체 생활을 하면서 아이는 그새 감기를 시작했다. 이제    먹었으니 면역을 키우려 배도라지 음료 홍삼 같은 것들을 주기도 했지만 민간요법으로 낫기에는 이미 심각해진 상태였다. 아침과 밤으로 기침을 하느라 잠도 편하게   때면 마음이 여간 쓰라릴 수가 없었는데 나는 그렇다 쳐도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부탁하는 월요일과 수요일이면 불편한 마음이 더해졌다. 씩씩하기만 해도 아들 육아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콜록거리는 아이를 맡기자니 저녁 수업을 가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동안 아이의 기침하는 모습을 보느라 다음  출근임에도    엄마의 푸석거리는 얼굴을 보는 일이 나에게는  곤욕스러웠던 것이다.



  더 먼 곳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보라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권유에 20분 거리의 병원에 새로 등록을 하고 어부바를 연신 외치는 묵직한 아들을 업고 병원으로 향했다. 새로운 환경이지만 처음 만나는 선생님들께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앉아서 기다리는 일을 조금씩 배워가는 아들의 모습에 감사함이 느껴진다. 아침과 밤에만 유독 기침을 심하게 하는 아들의 진찰 결과는 모세 기관지염.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진단코드들을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이다. 그래도 컨디션이 좋아서 아들은 연신 책을 읽어달라, 딸기를 사달라며 필요한 요구들을 했다. 마트에 들러 필요한 것들을 사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아홉 시가 되기 전에 침대로 향한다. 수면등을 켜고 아이와 그 언저리에 엎드려 도서관에서 빌려온 그림책들을 읽는 시간이다. 해야 하는 일들이 부쩍 늘어난 요즘은 체력 저하로 그림책을 읽다 말고 잠드는 일이 유독 많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림책을 읽다 스르륵 잠이 들었는데 아들의 기침 소리에 깨어나니 새벽 두 시였다. 지난밤의 기억을 되짚어보니 그림책을 펼치자마자 졸음이 쏟아진 나는 몇 문장을 읽다 말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아들은 그런 나를 깨우며 책을 읽어달라 했다. 이런 상황들이 두어 번 더 반복되었고... 그리고 기억이 까마득하다. 수면등이 꺼져있는 걸 보면 분명 아들은 나를 깨우다 결국 포기하고 불을 끄고 내 옆에 누워 잠을 자기 시작했을 것이다. 연신 콜록거리는 아들의 작은 몸은 기침을 할 때마다 꿀렁꿀렁 파도가 친다. 이 작은 몸으로 감기와 싸워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부모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절절히 느낀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곁에서 이불을 덮어주고 작은 발을 주물러주는 일뿐이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데 아들이 눈을 끔뻑거리며 일어나더니 나를 보며 자그맣게 말했다.




"엄마,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어설프기만  엄마는 아이의  마디에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아이의 보드라운 뺨을 두어   쓰다듬어 주었다. 32개월  아들이 하는 말들은 작고 간결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엄마의 고단함을 다독거리기에 충분했다. 작은 일에도 호들갑을 떨며 혹은  모든 것들이 내가 잘못한 것이라며 가슴을 쥐어뜯는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늦은 , 작은 천사가 잠시 아이의 몸을 빌려 다녀간 것일지도 . 말문이 트인 아이가 나에게 덤덤하게 건네는 작은 문장들이 마음에 크고 작은 파동을 일으킨다. 육아로 고단한 몸과 마음은 때론  감동으로 치유되기도 한다. 이렇게 힘듦과 위로의 파도를 끊임없이 겪어내며 우리는 조금씩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어가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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