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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Jun 12. 2024

롱디부부의 기쁨과 슬픔

지나고 나면 모두 그리울 시간들이라 믿으며 



 내 주위 사람들은 우리가 보통 장거리 부부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힘들겠다는 위로를 건네곤 한다. 아마 아이를 혼자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체감할 수 있는 처지의 주부들이 내가 요즘 만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집안일, 그 사이사이마다 끊임없이 놀자고 요구하는 아들과 강아지, 보이진 않지만 차곡차곡 쌓인 피로 같은 것들. 아이를 키워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느낌일 것이다. 하지만 남편과 그 주변 사람들의 입장을 대략 떠올려보자면 아마 이런 대화를 가끔은 들어오지 않았을까. 가끔은 나조차도 이런 말들을 들어왔으니 말이다. 



"3대가 덕을 쌓아야 주말 부부가 가능하다는데, 장거리 부부면 얼마나 덕을 쌓은 거냐"



 아이가 19개월에 한국에 돌아와 34개월이 된 지금까지 아이를 돌보고 강아지를 키웠다. 문득 돌아보면 나는 어떤 정신력과 체력으로 육아를 해왔는지 까마득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에 아이가 돌아오자마자 어린이집을 등록해서 잠시의 여유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베트남은 어린이집 비용이 80만 원씩 들어서 차마 보낼 수가 없었다) 클라이밍과 글쓰기를 이어가며 몸과 마음의 근육을 구석구석 쌓아갈 수 있었다는 것은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글쓰기와 창작의 동력이 되는 외로움이 삶의 전반에 깔려 있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 책상에 앉아 오랜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일어나기 전의 그 짧은 한 시간이 나에게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요가 공부를 하는 소중한 아침의 시작이 되어주었고 말이다. 하루의 에너지를 다 써버린 저녁에는 금방 방전되고 말지만 해가 떠오르는 아침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하루 중 가장 따뜻하고 긍정적인 기운이 있는 아침 시간, 책상에 앉아 하루동안 있을 일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내고 책을 읽으며 머리를 깨우는 일들은 나를 나 자신으로서 살 수 있도록 북돋워주었다. 







 반면, 홀로 아이와 강아지를 돌보는 일은 명확한 장단이 있는 일임에 분명했다. 자타공인 체력이 엄청난 나조차도 쉬지 않고 집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아들을 돌보는 일이 매일 힘에 부쳤다. 요즘은 엄마가 용인할 수 있는 선이 어디까지 인지를 알아차리기 위해 간을 보는 아들에게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수없이 가르치느라 목이 다 쉴 지경이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 늘 혼자의 시간(맥주 한 캔과 책 읽기)을 가지던 나였지만 최근에는 밤 9시가 되면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새벽까지 꿈나라에 머무는 모습을 통해 육체적인 체력보다는 정신적인 체력에 있어서 급격한 소모가 있는 것 같다는 개인적인 소견을 꺼내어본다. 아이에게 밀려 작은 방 책상 밑에 숨어있는 강아지도 빼먹을 수는 없다. 아이가 태어났다고 다른 생명을 등한시한다는 것은 책임감으로 살아온 나에게는 적어도 용인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와의 산책을 간절히 기다리는 녀석을 위해 기본적으로 하루 한번 혹은 두어 번의 산책을 해주는 일은 나의 일과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다. 그러니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아침 한 시간을 알차게 채워놓지 않으면 나를 위한 시간은 새하얗게 소멸되고 마는 것이었다. 






@ 완전체로 떠났던 남해여행 


 이런 어려움들은 물론 함께 나눌 이가 있다면 육아가 덜 고단하게 느껴지겠지만 나에게는 주말에 찾아가는 친정을 제외하고는 도와줄 이가 없다. (물론 친정은 아주아주 큰 힘이 된다) 집에 돌아오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설거지와 빨래 그리고 발 디딜 틈 없이 어질러진 거실을 치워줄 사람이 현실적으로는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나면 어떤 날에는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가고 싶을 지경이다. 예전 같았다면 모든 것들을 뒤로 미뤄두고 현실을 회피했겠지만 '엄마'인 나에게는 '직면'의 버튼 말고는 누를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둘째를 낳는다는 생각은 달나라에 토끼가 산다는 말처럼 나에게는 전설 속의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다. 물론 하늘을 봐야 별을 따는 것일 테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그토록 왕성하고 활발했던 나조차도 고단한 육아와 일주일을 가득 채운 스케줄을 소화하고 나면 무엇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들고 싶은 지경이 된다. 얼마 전까지도 나를 여자로 봐주지 않는다며 섭섭함을 토로했던 나였기에 남편이 들으면 꽤 반가워(?) 할 소식인 것 같긴 하다. 동굴의 시간을 줄기차게 요구하던 남편과 정말로 장거리 부부의 삶을 살게 되니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서서히 식어가는 마음을 스스로도 알아차리게 된다. 부부 상담을 다녀오고 아이가 커가는 것을 못 봐서 슬프다는 남편의 눈물도 이제는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 되었고 각자의 하루를 사느라 지나치게 바빠서 밥은 먹었는지, 고민은 없는지, 쉬는 날이 언제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3-4개월에 한 번씩 귀국하는 남편을 보낼 때면 눈물이 앞을 가리고 우울함이 일주일은 지속되었는데 이젠 그 불같았던 감정도 시간이 지나니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한 때는 그렇게 좋아하고 애틋했는데 더 이상 그 사람의 하루가 궁금하지 않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냉정하고도 아픈 현실임에 분명하다. 




 주말이면 왕성한 아들을 데리고 늘 어딘가로 향한다. 가끔 아빠와 놀고 있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아이를 알아차릴 때면 문득 미안함이 밀려온다. 돈이 뭐라고 이렇게 가족이 떨어져서 지내야 하는 건지. 현실이 가혹하기만 하고 먹먹해지기도 하지만 이내 씩씩함으로 무장하고 아빠 못지않게 모래놀이를 해주며 상황은 결국 무마가 된다. 요즘은 매일 같이 아빠는 언제 오냐고 물어오는 아들 덕분에 결국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스타트업의 미래를 감내하고 베트남으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홀로 아이를 키우던 시간 동안 내가 쌓아온 경험과 인연들을 내려두고 갈 생각을 하면 마음이 울컥해져 오지만 이젠 다시 '엄마'로서의 삶을 집어들 시간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또 더 이상 하루가 궁금하지 않은 남자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짧지 않은 일 년 반의 시간 동안 절절하게 느꼈던 독박육아의 기쁨과 슬픔. 남편의 회사 대표가 나에게 보낸 메시지처럼 지나고 나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일은 남아있는 '혼자'의 시간들을 기꺼이 기쁨으로 채워가는 일이 아닐까. 마음껏 걷고 누릴 수 있는 자연을 하루하루 아낌없이 누리고 이젠 함께 육아의 기쁨을 위해 씩씩하게 걸어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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