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을 끊은 연습

끝난 관계를 굳이 예쁘게 마무리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by 은영

브런치에 글을 쓴다고 마음먹으면 늘 같은 고민에서 시작한다. 어디까지 솔직해져도 괜찮을까, 이 이야기를 꺼내도 되는 걸까.


특히 ‘끝난 인연’에 대한 이야기는 늘 조심스럽다.

우리는 너무 쉽게 이별을 미화하고, 끝을 예쁘게 정리하려 애쓴다. 마치 그래야만 내가 덜 아프고, 더 성숙해 보일 것처럼. 하지만 이제는 안다.


모든 인연의 끝이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는 걸. 어떤 끝은 그저 끝으로 두는 게 가장 정직하다는 걸.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제대로 사랑했던 사람과는 2년을 만났다. 그 사람의 바람을 알게 된 날,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이유도, 변명도, 설명도 듣지 않은 채 모든 연락을 차단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울부짖거나, 마지막 대화를 나누거나, 진흙탕 싸움을 하지도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했던 선택 중 가장 잘한 행동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다. 차단을 해놓고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가 어떻게든 연락해 오기를, 집 앞에 찾아와 무릎 꿇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장면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내가 먼저 끝을 싹둑 잘라버린 탓에, 이별을 받아들일 시간도, 감정을 정리할 틈도 부족했던 것 같다. 설명 없이 끝난 인연은 내 안에 물음표로 남았고, 나는 그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기를 오래도록 기다렸다.


차단을 풀고 한 번쯤은 이야기를 들어볼까 하는 생각을 수백 번은 했던 것 같다.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그중 가장 친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너 지금 상황은 말이야, 어쩌다가 똥을 밟았는데 그걸 잘 닦고 다시 잘 걸어가고 있어. 근데 가다가 계속 마음에 걸리는 건, 그 똥을 네 방식대로 예쁘게 처리하지 않은 것 같아서야. 근데 다시 돌아가서 그 똥을 예쁘게 포장한들, 똥은 똥이야. 그러니까 지나간 똥 다시 주우러 갈 생각 말자.


너무 적나라해서 웃음이 났고, 너무 정확해서 말문이 막혔다. 나는 그 말대로 했다. 돌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대가는 생각보다 길었다. 그 사람과 헤어진 뒤 몇 년 동안 누군가와 썸은 탔지만, 정말로 마음을 내어 사랑한 사람은 없었다. 마음이 고장 난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 앞에서 늘 한 발짝 물러나 있었고, 기대하지 않는 법부터 배웠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어느 평범한 날,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문득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호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5년 전 그대로였고, 나는 그 사이 꽤 달라져 있었다. 우리는 오래전 미뤄두었던 이야기들을 꺼냈고, 그는 그날의 상황과 자신의 잘못을 차분히 설명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 사과는 나를 다시 그 사람에게 끌어당기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완전히 놓아주었다.


신기하게도 그로부터 두 달 뒤, 나는 그 사람 이후 처음으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오래 묶여 있던 인연의 고리가 그제야 끊어진 느낌이었다.

이 경험 이후로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어떤 인연은 끊어야만 새로운 인연이 들어온다는 것을. 이 공식은 연애에만 해당되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비슷한 인연을 만났다. 온갖 감언이설과 지분 이야기를 앞세워 나를 설득하던 대표가 있었다. 나는 그의 말에 속았고, 그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썼다. 스스로에게 ‘일이 재밌다’, ‘이건 성장의 과정이다’라고 세뇌하며 과도한 책임을 묵묵히 감당했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면 언젠가는 알아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고마움은커녕 함부로 대하는 태도와 막말이 시작되었다.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나에게만은 그러지 않을 거라 착각했다. 그 착각이 깨지는 순간, 실망과 배신감은 동시에 밀려왔다.


이번에도 나는 싸우지 않기로 했다. 설명을 요구하지도, 이해받으려 애쓰지도 않는다. 내 직관을 믿기로 했다.

아, 또 똥을 밟았구나. 이상하게도 이번엔 담담하다.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고, 나는 결국 더 나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라는 걸. 예전처럼 뒤돌아서서 그 똥을 왜 이렇게 치워야 했는지, 예쁘게 마무리하지 못한 게 맞는지 곱씹지 않을 것이다. 사과를 받지 못해도, 설명이 없어도,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는 법을 이제는 안다.


인연의 맺고 끊음은 기술이다. 붙잡는 법만큼이나 놓아주는 법도 배워야 한다. 모든 끝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모든 이별을 납득할 필요도 없다. 어떤 인연은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끝내고 나서야 비로소 보인다. 그러니 더 이상 끝난 인연을 예쁘게 포장하려 애쓰지 말자. 잘 끊어낸 인연 위에, 우리는 언제든 더 좋은 인연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으니까.



모든 인연의 끝이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는 걸.
어떤 끝은 그저 끝으로 두는 게 가장 정직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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