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만난다

누군가는 흘러가며 배우고, 누군가는 머물며 배운다.

by 은영

나에게는 나와는 조금 다른 삶의 결을 가진 동생이 있다.

같은 부모 아래서 자라고, 같은 집에서 밥을 먹고, 같은 동네 골목을 뛰어다녔는데도 우리는 관계를 맺는 방식이 꽤 다르다.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자주 흔들리고, 계절이 바뀌듯 관계가 바뀌는 경험을 반복해온 반면, 동생은 놀랍도록 한결같다.


동생은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한 동네 친구들과 여전히 가장 깊은 우정을 나누고 있다. 그 시절, 나 역시 그 아이들을 알고 있었다. 방과 후면 우리 집에 모여 게임을 하고, 거실 바닥에 엎드려 웃고 떠들던 얼굴들.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그 관계가 아직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가끔 믿기지 않는다.


얼마 전, 동생이 새벽같이 집을 나서겠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발인 날 운구를 도와주기로 했다는 말이었다.


이제 막 서른이 된 나이에, 누군가의 삶 한복판에서 그렇게 묵직한 역할을 해내는 친구가 되어준다는 게 괜히 마음이 먹먹해졌다.

‘아, 이런 우정도 있구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시간으로, 인생의 장면으로 증명되는 관계.


그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지난번에 썼던 글을 떠올렸다.

“친구는 시기에 따라 바뀐다”는 말. 그건 분명 내 인생에서는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동생의 삶을 보면, 또 전혀 다른 답이 존재한다.

동생에게는 “한 번 친구는 평생 간다”는 말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들어맞는다.


같은 환경에서 자랐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다를까.

나는 이 질문을 오래 곱씹어보았다.
어쩌면 우리는 처음부터 각자 다른 과제를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닐까.
누군가는 관계의 흘러감 속에서 자신을 단단히 세우는 법을 배우고,

누군가는 한 관계를 오래 지켜내는 방식으로 삶을 완성해가는 것.


그래서 나는 요즘 동생을 볼 때마다 이상한 감정이 든다.

부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한 마음.

초등학교 친구를 여전히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여기며, 그 자리를 끝까지 지켜내는 동생이 참 멋지다.

그 관계를 유지해온 시간과 마음이 얼마나 많은 선택의 결과였을지 알 것 같아서 더 그렇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안다. 내 삶도 틀리지 않았다는 걸.
관계가 시기에 따라 바뀌어왔던 나의 인생 역시, 그 나름의 이유와 의미가 있다는 걸.
누군가는 흘러가며 배우고, 누군가는 머물며 배운다.
그 어떤 쪽도 더 낫거나, 더 부족하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동생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판단을 내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계에는 정답이 없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건네고 싶어서.

어릴 적 친구와 평생을 함께 가는 삶도, 시기마다 다른 인연을 만나며 나아가는 삶도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충분히 잘 살아내고 있다고. 같은 부모 아래에서 자랐어도 우리는 이렇게 다르고, 그 다름이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이 요즘은 참 고맙다.


흔들리며 관계를 배워온 나의 삶도, 묵묵히 우정을 지켜온 동생의 삶도 모두 존중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결국,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간다.


초등학교 친구를 여전히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여기며,
그 자리를 끝까지 지켜내는 동생이 참 멋지다.
그 관계를 유지해온 시간과 마음이
얼마나 많은 선택의 결과였을지 알 것 같아서 더 그렇다.

누군가는 흘러가며 배우고, 누군가는 머물며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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