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 덕분에 나는 여기까지 왔다

결핍으로 시작해 결핍으로 단단해진 시간들

by 은영

좋은 말로는 결핍이 사람을 성장시킨다고들 말한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결핍은 사람을 가만두지 않는다.

쉬고 싶을 때도 등을 떠밀고,

멈추고 싶을 때도 이유를 만들어 다시 움직이게 한다.


나는 내내 그 결핍에 떠밀리며 살아왔다.

편안했던 적은 별로 없었지만, 돌아보면 이상하게도 그때마다 쓰러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시 일어났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생각을 한다. 결핍 덕분에 나는 여기까지 살아남았다고.


중학교 때였다. 진로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현실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우연히 미술학원을 다니게 되었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즐거웠다. 손에 연필을 쥐고 있으면 시간이 빨리 지나갔고, 결과물보다 과정이 좋았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선생님이 예술고등학교 진학 이야기를 꺼냈다. 해볼 만하다는 말,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그때의 나에게는 꽤 큰 힘이 됐다.


그날 집에 돌아와 예고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예상보다 차가웠다. 예고는 날라리들이 가는 곳이라는 말, 공부 못하는 애들이 특기로 버티는 학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걱정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지만, 그 말들은 그대로 나에게 낙인이 되었다.


그 순간부터 마음이 불편해졌다. 억울했고, 인정받고 싶었다. 나는 공부를 못해서 예고를 가려는 게 아니라는 걸, 그림이 좋아서 내가 선택해서 가는 길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 감정이 내 안에 첫 번째 결핍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결핍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잘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지고 싶지 않아서 공부를 시작했다.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괜히 숨을 죽였고, 점수가 오를수록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중간고사 중 하루에 치른 세 과목 시험 모두 100점을 맞았던 날이 있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성적표를 내밀었고, 부모님은 그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300점을 맞아온 날이라며, 지금도 그 이야기를 꺼낼 때면 괜히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렇게 중학교 내내 성적은 꾸준히 올랐고, 나는 결국 원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지금 돌아보면 참 어렸고, 동시에 꽤 단단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애썼던 시간이었다. 그 결핍은 나를 무너지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방향을 만들어주었다.


그 이후로도 공부는 계속됐다. 고등학교에서도 성적은 나쁘지 않았고, 결국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는 좀 편해져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알았다.

대학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걸, 사회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준비 단계일 뿐이라는 걸.



어느 날, 할아버지가 무심하게 던진 말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그렇게 좋은 대학 가면 뭐하니, 예술가는 돈을 못 버는데.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더 아팠다.

그 말은 내 안에 설명되지 않은 결핍을 남겼고,

나는 그 결핍을 열등감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예술을 좋아했지만 동시에 불안해졌다. 이 길로 괜찮을까, 잘 버틸 수 있을까. 그 질문은 머릿속을 쉽게 떠나지 않았다.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왔을 때, 나는 오랫동안 해오던 순수예술 대신 디자인을 선택했다.

실용적인 예술이라는 말이 나를 안심시켰다. 배우면 취업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돈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동기들은 왜 굳이 바꾸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해보고 싶어서라고만 말했다.

사실 그 선택의 밑바닥에는 열정보다 결핍이 더 많이 깔려 있었지만, 그걸 굳이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이후의 대학 생활은 거의 열등감과 승부욕으로 움직였다. 내가 선택한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또 다시 증명하고 싶었다.


방학마다 혼자 컴퓨터 학원을 다녔고,

잘 알지도 못하는 선배들에게 먼저 연락해 진로 이야기를 들었다.

대기업 인턴에 지원했고, 운 좋게 2년 동안 활동할 수 있었다.

부전공으로 심리학도 선택했다.


디자인이 내 꿈이 아니었기에, 부족하다고 느낀 부분을 더 많은 노력으로 채우려 애썼다.

그 시간들은 분명히 치열했고, 쉽게 흘려보낼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 디자인을 업으로 삼지 않았다. 졸업 후 선택한 곳은 금융권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결핍이 내가 원래 원하던 목표를 지켜내기 위한 힘이었다면,

대학 시절의 결핍과 열등감은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위에 세워진 선택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쌓아도, 오래 붙잡고 갈 수는 없었던 이유다.


그렇다고 그 시간을 실패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 결핍 덕분에 낯선 분야에 뛰어드는 용기를 배웠고, 스스로 실력을 만들어내는 경험을 했다.


시간을 들여 노력하면 결국 무언가는 손에 남는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몸에 새긴 시기였다.

내 인생에서 가장 뜨겁게 살았던 시간이었고, 그 성장은 누구의 것도 아닌,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결핍은 분명 나를 힘들게 했다.

비교하게 만들었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를 멈추지 않게 했다.

주저앉지 않게 했고, 다음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안다. 결핍이라는 감정이 없었다면 나는 훨씬 덜 움직였을 거라는 걸. 덕분에 나는 살아남았고, 내 인생을 내 손으로 만들어왔다.


결핍을 없애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대신 그 감정을 어디에 쓰느냐가 중요하다.

나를 무너뜨리는 이유가 아니라, 나를 일으켜 세우는 재료로 쓰는 것.

그 선택만은 스스로 할 수 있다.


결핍을 자양분 삼아,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 인생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다.


결핍은 분명 나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동시에 나를 멈추지 않게 했다.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