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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 외계인 Sep 30. 2020

한국 교육이 싫어서




'한국 교육이 아니라면 어디라도 좋겠어.’ 

절박한 심정이었다.  인문계 고등학교 영어 교사, 교육계 내부인으로서 스카이 캐슬의 한서진(염정아 분) 만큼은 아니어도, 마음만 먹으면 입시 관련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아이를 경쟁에서 조금은 유리한 위치에 놓고 키울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런데 불행히도 교사를 하면 할수록 탈출에 대한 염원이 간절해졌다. 학교만 들어서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고 명치 끝이 저렸다. 만성적인 피로와 무기력, 그리고 직업에서 오는 낮은 효능감이 그림자처럼 따라 붙었다. 
 
이민인데 최소한 일주일이라도 여행해 보고 결정해야지 않냐며 주위에서 염려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부부는 호주를 와본 적도, 호주에 우리의 이민 생활을 도와줄 가족이나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호주의 문화나 교육제도에 관한 자료나 책을 접해본 적도 없었으니 사시사철 더운나라인 줄 알았고, 멜버른이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떠났다. 
 
운이 좋았다.
특별한 기대없이 떠난 여행지에서 느닷없이 발견한 오래 머물고 싶은 동네 같다고 해야할까. ‘일단 떠나고 보자’로 정착한 호주는 나와 내 가족에게  안성맞춤이었다. 호흡기 질환자인 나에게 멜버른의 푸른 하늘과 청명한 대기는 구원이었고, 언제 실현될지 기약 없던 인생 버킷리스트인 <주택 살이>는 호주 입국과 동시에 실현되었다. 
 
한때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한국의 교사임용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전세계의 수많은 교육 사상가의 이름과 사조를 외웠다. 막상 교사가 되어 보니 그런 지식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임용고사를 통과하기 위해 헤밍웨이의 글쓰기 스타일과 그의 작품 세계를 암기했다. 물론 교실 현장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나만의 지적 허영심에 불과했다. 사범대에서 4년간 배운 대부분의 내용과 노량진 임용시험 학원에서 머리가 터질 듯이 외운 내용들은교실 현장과 무관하거나 적용이 불가능한 현실 이어서 임용과 동시에 멘탈이 붕괴되는 경험에 시달려야 했다. 
 
“호주 교사들은 교실에 있는 학생 수만큼 다양한 요구와 수준에 맞춰 수업 준비를 해야 해.” 

멜버른의 초등학교에서 근무했던 이민 선배가 말했다. 한국에서 입시위주의 암기와 일제 수업에 익숙해진 눈과 몸에 낯설기만 하던 호주식 교육이 시간이 지나면서 읽히기 시작했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교사들이 내가 줄줄 외웠던 교육사상가들의 이름과 사조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이 지향했던 가치들을 교실 속에서 구현하는 데는 달인들이었다. 헤밍웨이를 비롯한 대문호들의 작품세계를 공부했는지는 묻지 않았으나,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책을 접하고 직접 수준에 맞게 글 한편을 써내게 지도하는 데는 숙련된 교육자들이었다.

“학생중심 교육과정 때문에 한국 교육이 붕괴 됐어.” 라고 말하던 동료 교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학생중심 교육과정>, 한국의 국가 교육과정에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으나 현장의 교사들에게 천덕꾸러기로 전락 된지 오래된 용어의 원래 취지와 철학을 호주 교사들을 통해 비로소 깨닫는 일은 씁쓸했다.  


입시를 위해서라면 인정사정없이 왜곡되는 한국 교육의 현실 속에서 형식적이고 문서상으로만 접하던 교육과정이 눈앞의 호주 교사들이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충격이었다. 한국에서 오리무중이던 학생을 중심에 두고 교육한다는 일이 이해하기 어렵거나 실천하기 난해한 개념이 아니란 점을 깨달았다.  


한 교실에 존재하는 모든 학생들의 개성과 재능을 살리고 사회가 지향하는 공공의 가치를 전달하는 것은 호주 교사들의 주된 책무다. 그래서 호주의 교실은 한국에서 좁은 의미로 사용되는 장애/비장애 학생을 위한 <통합 교육> 개념을 넘어선 지 오래다. 심지어 호주 정부의 교육과정에는 영재아동, 장애아동과 특별하거나 부과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동을 다양성 교육(Diversity)이란 하나의 영역으로 정의한다. 호주의 교사들이 사회에서 교육 전문가로서 권위를 얻고 신뢰를 쌓는 방법이다. 


가끔 한국의 지인들은 나에게 묻는다. 호주 교실은 한국교사들보다 훨씬 많은 지원이 있지 않냐고. 과연 그럴까? 아이 학교는 350여명의 총 학생이 있고, 학년당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교사 한 명당 28명 안팎의 정원, 해외에서 갓 이민 와서 영어가 자유롭지 않은 아이들1-2명(저학년은 훨씬 많음), 장애 진단받은 아이들 1-2명, 심지어는 두 학년을 통합한 교실에서도 호주의 교사들은 수준별 수업을 진행한다.  


또한 한국 학교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상담사, 보건교사, 특수학급, 특수교사, 행정실무사 등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교사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장애 아동의 경우에만 정부에서 보조 실무사(특수학교나 일반학교에서 장애 아동을 지원하고 보조하는 역할)를 배치해 준다. 즉, 교장부터 행정실 직원까지 전 교직원이 각자의 몫을 오롯이 해내야만 되는 구조다. 인적 구성과 시스템이 효율적이고 유기적이고 체계적이고 예산의 낭비가 없다.


한국과 호주의 학교를 일대일 비교할 수 없지만, 한국의 교사들이 OECD 국가와 비교하며 행정업무가 적은 호주의 교사를 부러워한다면, 반대로 호주의 교사들은 각종 지원체계가 학교 안에 들어와 있는 한국의 교사들을 부러워 할지도 모른다. 저 많은 지원을 받으면서 왜 학생 중심의 개별 맞춤식 교육을 하지 않는가 의문을 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교육에 관해서라면 우물처럼 궁금증이 샘솟는 성격 탓에 ‘보조 실무사 자격증’ 과정을 시작했다. 호주 교사들의 정체, 그리고 어떻게 이런 교사들이 배출되는지 호기심이 생겨 견딜 수가 없었다. 
 
Duty of Care(학생 돌봄의 의무), Duty of Safety(안전의 의무), Code of Conduct(교육자로서의 언어와 태도에 관한 강령), Code of Ethics(교육자로서의 윤리 강령), Duty of Confidentiality(개인정보 기밀 유지의 의무), Child Protection Mandatory Report(아동폭력 신고에 대한 의무), Discrimination Disability Act(장애 차별 금지법), 호주교육과정이해, Duty of Inclusion(장애/언어/민족/종교/문화/인종 등을 차별하지 않는 통합교육의 의무) 등.
 
호주에서 1년 과정의 보조실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위의 내용들을 귀에 딱지가 내려앉게 듣고, 익히고, 실습을 거쳐 몸에 배도록 숙련해야 한다. 그러니 예비 교사가 되려는 학생들에게 교실 현장과 연계된 실무중심의 교육이 얼마나 철저하게 이루어질지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한국에서 내가 느끼고 경험한 교원양성과정과 학교 현장이 따로 국밥이라면, 호주는 상호 유기적이고 체계적으로 긴밀한 협조 체계를 이룬다.
 

학생 중심의 수준별 교육은 죄가 없다. 결국 한국의 교사들이 교육 전문가로서 권위와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이 방식을 익히고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어느 부모와 학생이, 어느 사회가 나와 내 아이의 개성을 존중하고 이에 맞춰 수업을 실시하는 교사를 원망하고 비난할까? 즉, 한국에서 오해받는 <학생 중심 교육과정>은 억울하다. 귤이 회수를 건너다 탱자가 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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