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깊은 산속에 들어갔다. 때마침 아는 언니가 초대를 했다. 아는 언니는 은퇴를 하고 오랫동안 꿈꾸고 준비해 온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멜번 외곽의 산속에 있는 생태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꾸불꾸불한 비포장 도로를 흙을 뒤집어 쓰며 달렸다. 잠깐 방심하면 끝이 없는 낭떠러지로 뎅굴뎅굴 구를 듯하여 경치 감상 따위는 뒷전이다. 아직 비명횡사를 하고 싶지는 않다. 어제 고객의 죽음을 마중했는데 오늘 나의 죽음을 맞이하고 싶진 않다. 죽음에 거리 두기 라고나 할까?
“별종들이 아니고선 누가 지 나라, 지 부모형제를 떠나 서럽게 이민생활을 하냐?”
멜번 이민자들끼리 서럽고 고달프고 외로울 때 무심히 던지는 말. 하지만 아는 언니는 내가 만난 “별종” 중의 갑이다. 나와는 다르게 실행력과 결단력과 추진력이 불도저다. 멋지고 살짝 부럽다. 나이 들면 편안하고 편리하고 쉽고 깔끔한 도시적 삶이 좋을 텐데, 그리고 충분히 그렇게 살 수 있는 조건이 되면서도 굳이 이곳으로 들어온 이유는 아는 언니만이 알 게다. 남의 속사정은 잘 묻지 않는다. 멜번 생활, 아니 이민 생활의 기초 덕목 중 하나다.
나야 땡큐다. 아는 언니가 사는 곳 만큼 산속 깡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에게 산속 생활은 익숙하다. 솔직히 말하면 산 속 생활의 속살을 너무 “잘” 알아서 “굳이” 내 삶의 선택지에 들여놓지 않을 뿐이다. 못 살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살아야 할 이유도 없는 그런 곳. 하지만 아는 언니 집(집이라기 보단 산장)을 방문하는 일은 지근거리에 사는 비싸고 고급스럽고 넓은 지인의 집을 방문하는 일보다 설렌다. 집주인이 아는 언니이기 때문인데 그곳에 가면 평화와 휴식과 도시에서 찾기 어려운 자연식 밥상이 있기 때문이고, 뭔가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대가 있고, 더 큰 이유는 빽빽한 나무들이 나를 세상과 단절시키기 때문이다. 도피처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다 일과 사람에 지치고, 인간관계에서 낭패를 보거나 도시와 단절되고 싶을 때 산속의 부모님 집을 방문했다. 순전히 나의 필요에 따른 이기적 방문이었다. 마침내 멜번에 제 2의 이기적 고향이 탄생했다.
“선생님, 정말 큰 일 하셨네요. 고객이 마지막 순간을 선생님을 택한 데는 이유가 있겠죠.”
아는 언니는 나를 이름 대신 꼭 선생님이라 부르고, 언제나 존댓말이다. 당연한 말을 하며 상대를 칭찬하는 기술이 빼어나다. 은근슬쩍 문장의 말미를 흐리며 반말로 돌려도 될 텐데 어림도 없다는 듯 존댓말로 마침표를 찍는다. 언어에 기품이 있다. 존댓말 속에서 믿음과 신뢰가 싹트고, 예의가 자란다.
벽난로에 장작이 타고, 그 열 위에서 닭장에서 주워 온 계란이 삶아지고, 차가 끓고,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우리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이야기들을 순서 없이 섞는다. 산장 옆의 닭장에서 주워 온 싱싱한 알을 보며 이런 실없는 소리를 하면서.
“닭이 큰 일을 하시네요. 닭님들, 잘 먹겠습니다.”
아는 언니와 농장에 심어 놓은 채소, 주변의 산책 코스, 공동체 구성원들, 산장에 놀러 오는 웜뱃, 왈라비, 산토끼 등등 이야기를 나누는데 에이전시에서 전화가 온다.
“Are you okay?”
오피스 직원 클로이는 대뜸 묻는다. 고객이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게 잘 지원해 줘서 고맙다며 나의 정신적/심리적 어려움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무슨 지원이든 필요한 게 있다면 꼭 오피스에 말해 줘서 그에 따른 지원을 받으라고 염려한다.
‘이 사람들은 비정규직 시간제 알바의 정신적/심리적 돌봄까지도 챙기네.’
속으로 생각한다. 한국에서 국가직 공무원 교사일 때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배려라서 충격이다.
잠시 후 나를 아끼는 간호사 J 에게 전화가 온다. J는 병원에서 일하기도 하지만 주중에는 나와 같은 에이전시에서도 일을 한다.
“언니 괜찮아요? 당황했죠? 첫 죽음은 영원히 기억되더라고요. 저도 병원에서 수도 없이 죽음을 봐왔지만, 처음으로 돌아가신 분은 너무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근데 이상하게 나 너무 괜찮아. 무섭지도 않더라. 아버지 죽음을 본 적이 있어서 그럴까? 마지막 순간에 있잖아, 그냥 내 아버지 얼굴이랑 고객의 얼굴이 겹치는 거야. 볼이 움푹 들어간 코카시안 할아버지랑 볼이 움푹 패인 아시안 내 아버지의 얼굴이 똑같은 거야.”
“맞아요. 전 돌봄 일이 너무 좋아요. 끊임없이 배우고 겸손해 져요. 죽음을 자주 보면 기가 많이 빨리긴 하는데 부질없는 욕심들이 사라져요. 죽음의 순간엔 모두가 너무 공평해요.”
“어제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내가 본 고객 중에 가장 부유한 분이셨어. 내 아버지는 가장 가난한 화전민이었고. 근데 숨을 거두는 장면은 너무 공평해서 숙연해지는 거야. 가진 게 너무 많은 고객도, 가진 게 너무 없는 내 아버지도 죽음의 길에선 빈손이야. 죽음 앞에서 보는 삶이 다르게 읽혀져. 어제보다 오늘 내가 조금 더 성숙한 기분이야.”
“언니는 앞으로 더 좋은 케어러가 될거예요. 보통 젊은 케어러들은 죽음을 보면 멘탈이 털려서 다시는 Palliative Care 고객 못 받아요.”
“젊고 건강한 사람들에게 죽음은 “인지”가 잘 안되겠지. 난 죽음이 항상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어제 보니까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거 같아.”
반나절을 먹고 떠들다 아는 언니를 따라 산속을 산책했다. 뿌려만 놓고 내킬 때만 일을 한다는 아는 언니의 농장에는 말 그대로 풀 반, 각종 채소반 이었다. 멜번답게 채소들도 다양한 국가의 국적을 유지했다 잎 채소들은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다. 농약 먹지 않은 채소에 딱 달라붙은 애벌레들이 배불리 먹고 남겨 놓은 채소들을 내가 거둬온다. 아는 언니의 이런 말에 속아서,
“선생님, 유기농이잖아요.”
산 속은 밤이 무거워서 일찍 내려앉는다, 울창하고 키 큰 나무에 반비례해서. 익숙하지 않은 산속 밤길 운전은 위험하니 서둘러 귀가를 결심한다. 마늘, 대파(멜번에서 대파 구경은 어렵다), 양배추, 애호박, 각종 허브, 한국 상추, 근대 등. 아는 언니가 바리바리 싸준 보따리를 차에 싣는다. 죽음을 겪고도 산 사람은 살겠다고 먹을 거리를 챙긴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게 인생이라고. 산 사람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위해 또 열심히 사는 거라고. 이게 죽음을 대하는 예의 있는 자세라고.
“선생님, 언제든 놀러 오세요. 며칠 씩 묵고 가도 좋아요.”
내 속을 모르는 언니는 해맑다. 이미 내 맘속엔 “언제든” 놀러 오기로 작심이 섰는데 말이지. 나중에 내가 너무 자주 들이닥쳐 조용한 산속 생활에 파장이 인다고 하실지 모르겠다. 어둑해진 산길을 죽음을 달래며 시속 30킬로미터로 운전한다. 죽음아, 기다려. 아직 난 널 맞을 준비가 안됐어.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