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두통 1

좌충우돌, 쉐어홈 사람들

by 루아나


“어머, 루벤은 두통이 있는 거 같아.”


창밖의 부드러워진 햇살이 저녁이란 걸 알리는 토요일 오후, 장애인 지원사(disability support worker) 파올라가 인도식 밀크티인 차이를 마시면서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알아? 내 눈엔 다른 날과 똑같아 보여. 너무 일상적인데?”


또 다른 지원사 헤일리가 스리랑카 출신인 파올라가 진하게 끓여준 차이를 홀짝이며 물었다. 한국 출신인 헤일리의 머릿속엔 2000년대 언젠가 배낭 여행으로 갔던 스리랑카의 절에서 공짜로 얻어 마신 차이의 맛을 떠올리고 있었다. 헤일리는 과거의 기억들은 가물가물한 나이다.


사실 이 쉐어홈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세 달이 갓 넘은 헤일리에게는 어제와 같은 루벤이었다. 루벤이 집에 머물 때는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의 본인 소파에 앉아서 아이패드를 본다. 한 손은 아이패드의 화면을 계속 바꾸고, 다른 한 손에는 길쭉한 노랑과 초록이 섞인 뱀 모양의 쭉 늘어나는 재질의 감각지원 장난감을 돌리고 있다.


루벤은 타인과의 사회적 거리가 일관적으로 멀다. 근처에 타인이 가까이 오는 것도 타인이 옆에 앉는 것도 선호하지 않는 듯한데, 어찌 보면 타인들이 가까이 머물기에 어려운 점도 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순식간에 뱀모양의 장난감을 천장이나 방바닥에 던진다. 어느 순간 갑자기 일어나 서성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쉐어홈 사람들이나 지원사가 거실에 있어도 옷을 홀라당 벗어 버린다. 운이 나쁘면 루벤의 곁에 있다가는 예상치 못한 행동이 발생했을 때 루벤의 의도가 뭔지 모르겠으나 맞을 수가 있다.


“아앗!” 루벤은 종종 불규칙하고 짧고 히스테릭한 소리를 버럭 지른다. 얼굴은 잔뜩 화가 난 듯하기도 하고 찡그린 얼굴이 아파보이기도 한다. 루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누구도 정확하게 장담할 수는 없다. 루벤이 직접 말을 해 주지 않으니 지원사들은 그저 본인에게 쌓인 경험과 들은 정보들로 상상과 추측만 할 뿐이다.

110 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육중한 몸에서 30대의 청년이 내는 소리는 얼마나 우렁찬 지 신입인 헤일리는 화들짝 놀라 “아이고!”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 내린다. 그러잖아도 요새는 종종 심작박동이 마구 빨라지는 듯해서 걱정인 헤일리는 이러다 심장마비가 오는 건 아닌지 두렵다. 루벤이 우렁찬 소리를 지르면 집을 지을 때 시멘트가 거의 쓰이지 않는 호주의 오래된 집은 천장이 울리는 듯하다.


“내 눈엔 보여. 두통이 있는 거 같아. 파나돌을 줘야 할 거 같아.”

“네 눈엔 보인다고? 어떻게?”

“나는 이 집에서 15년째 일하고 있잖아. 그렇게 오래 일하고도 아직도 안 보인다면 내게 뭔가 문제가 있는 거겠지.”

헤일리는 파올라의 말들이 아리쏭하다. 루벤은 단 한마디도 말로 소통을 하지 않는다. “예스”와 “노”도 언어로 발화하지 않는다.그리고 심지어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로 흔들면서 “예스”와 “노”를 표현해 주지도 않는다.


“헤일리, 너 아직 루벤하고 소통하는 법 잘 모르지? 내가 보여 줄게.”


파올라가 반쯤 마신 차이 컵을 식탁에 내려놓고, 루벤에게 다가가면서 본인의 손바닥을 루벤에게 내밀며 말한다. 물론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루벤, 두통 있어요?”


루벤이 파올라를 순간적으로 쳐다본다. 두꺼운 안경알 너머로 한개의 동공은 파올라에게로 또 하나의 동공은 허공으로 향한다. 아이패드를 만지던 손으로 파올라의 손을 터치한다. 본인의 능력이 검증된 파올라가 자신감에 찬 미소를 띤 얼굴로 헤일리에게 말한다.


“봤지? 루벤은 두통이 있으면 손을 터치하고 그렇지 않으면 무시해. 루벤은 통풍도 있어서 통증이 있거든. 그래서 PRN을 줄 때는 이렇게 확인해 보면 알 수 있어.”


파올라는 루벤의 PRN 약상자에서 파나돌을 꺼내 들고 헤일리는 물컵을 들고 루벤에게 다가간다. 헤일리는 속으로 염려한다.


‘나도 15년 일하면 이렇게 이심전심 고객과 통하는 걸까?’

‘그런데 15년 후면 도대체 나는 몇 살 인거지? 그 때까지 이곳에서 일하고 있을까?’



참고


글에서 ‘장애인 지원사(support worker)’란 용어는 호주에서 장애분야의 장애인 쉐어홈에서 일하거나 활동보조사를 통칭하는 표현. 케어러나 지원사 등으로도 불림. 앞으로의 글에서는 지원사라 칭함.

파나돌(Panadol) – 호주의 국민 진통, 해열제

PRN (pro re nata의 약자) – 필요할 때, 즉 증상이 있을 때 사용하는 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