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의 무릉도원이 길을 헤매다 우연히 발견한 지상 낙원이라면 #피치스도원은 네비를 찍고 의도적으로 찾아간 성수동 핫플이었습니다. 탐스러운 복숭아나무는 없었지만 짓궂은 표정의 '피치스' 캐릭터가 여기저기 열려 있었고 노티드 도넛과 다운타우너 버거가 주차에 지친 나그네의 허기를 채워주었죠.
# 훼손된 정원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정원 한 귀퉁이에 찌그러진 차가 거꾸로 처박혀 있었어요. 뜨악했죠. 정원을 대하는 방식이 다소 섬뜩하리만치 해괴하다 싶었죠. 자연은 생명인데 교통사고는 죽음을 떠올리게 하잖아요. 생명의 기운이 죽음의 이미지로 방해받는 느낌이었죠. 공간을 파는 사람들은 보통 이런 식으로 하지 않잖아요. 자연을 데코로 들이는 의도는 대게 방문객들에게 '쉼'을 주고 '힐링'을 선사하는 데 있죠. '도심 속에서 맛보지 못한 평화를 여기서나마 누리세요'하는 자비로운 느낌으로 잔디를 비치하거나 화분을 가져다 놓고는 하잖아요.
충격이 좀 가시니까 차츰 재미있는 도발로 다가오더군요. 애써 정비해 놓은 정원에 '불의의 사고'를 연상시키는 차를 거꾸로 박아버림으로써 '자연=힐링'의 도식과도 같은 불문율을 스스로 훼손해 버린 거잖아요. '도심 속 정원'으로 얻을 수 있었던 선량하고 내추럴한 이미지를 제 손으로 망친 거죠.
재미있는 건 방문객들이 이 의도적인 훼손을 즐긴다는 점이었어요. 보편적인 소통법을 비켜간 연출이 #피치스도원이 추구하는 방향성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호기심이 더해지는 거죠. 이 정도로 과감하게 객기를 부릴 수 있는 곳이라면... 안에는 뭐가 있을까? 궁금해지는 겁니다.
#7살 더 먹은 노티드
안에는 화려하게 래핑 된 차와 노티드 도넛이 있었어요. '정원=평화'의 이미지를 거스른 '폐차=반항, 똘끼'의 이미지를 보고서는 '와 안에도 뭔가 센게 있겠구나'했는데 말랑한 도넛이 있는 거예요. 노랑, 분홍으로 치장해 온갖 귀여운 짓을 다하는 노티드라니. 기대했던 상식을 깨트리는 반전의 재미가 있었죠.
만약 원래의 노티드대로 귀엽기만 했다면 고딩래퍼가 랩을 해도 손색없을 힙한 공간과 어우러지지 않았을 거예요. 시멘트 벽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화려한 영상과 빈티지카가 비치된 자리인 만큼 노티드도 자기 색을 한 톤 바꿨더라구요. 원래의 노티드가 8세라면 여기서의 노티드는 16세 정도. 노랑, 분홍의 어린 티를 벗고 회색빛의 시크함이 어울릴 만큼 나이를 먹은 거예요. 나이와 성격이 바뀌는 '살아 있는 브랜드'를 직접 만난 느낌이었죠.
#피치스도원은 '단짠단짠'이었어요. 귀여운데 터프하고, 쎈데 깜찍한. 노티드 도넛(단맛)과 다운타우너 버거(짠맛)의 단짠단짠이 공간에도 그대로 녹아들어 있었죠.
'힙'은 정의될 수 없는 감각이죠. 이거다 싶으면 또 바뀌어 있으니까요. 익숙해질 틈을 주지 않죠. 새롭다고 해서 다 통하는 것도 아니고요. #피치스도원이 허무한 자본력이 지배하는 아쉬운 공간이 아니라 좋았고 자기만의 힙을 아는데라 멋졌어요. 여기가 바로 성수동 낙원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