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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브리데이미 Apr 12. 2022

더이상 무난하지 않은 베이글

#무난하게 동그란 끼니에서 외식의 방점을 찍는 화려한 원으로!

  베이글이란 녀석. 외식의 방점을 찍는 화려한 원이 되기에는 무리 아닌가. 그저 무난하게 동그란 끼니일 따름이지.

#리틀넥애니오케이션


 평소 베이글을 좋아하지만 '베이글 좋아한다'는 사실을 숨기기라도 하듯이, 혼자 있을 때만 먹고 다녔다. 집밥을 아무리 애정 해도 손님을 초대했는데 먹던 반찬에 밥을 내주기는 좀 그런 것처럼. 카페에서 일하다가 출출해질 때쯤 시켜 먹기에는 만만해도 "무슨 음식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베이글이요"를 등장시키기에는 지나치게 무난해서 도리어 튀어 보이는 감이 있었다. "무슨 음식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집밥이요."라고는 잘 안하게 되는 것처럼.


 무난한 걸 좋아하는 것과 무난한 걸 선보이는 건 좀 다른 문제지 않나 싶다.


 취향과 기호를 밝히는 자리에서 굳이 베이글 같은 밋밋한 예를 들어서 나란 사람의 인상까지 무난하게 남기고 싶지 않다는, 인상적이고 싶은 이미지에 대한 욕심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 '베이글 먹으러 가자'는 말 같은 건 아예 꺼낼 생각도 못했다. 카페에서 배고플 때 때우듯이 먹는 걸 친구와의 만남이나 데이트에서 권유하기에는 예의가 아닌 메뉴 같아 보였다.


 그랬던 베이글이 갑자기 요란하게 스페셜해져 버렸다. 혼자 먹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누군가에게 권유해도 좋을 정도로.

#리틀넥애니오케이션


 #리틀넥애니오케이션 #런던 베이글 뮤지엄 #코끼리 베이글의 기나긴 웨이팅은 베이글에 관심 없던 사람들의 눈길을 선동하고, 나처럼 베이글에 대한 기호를 입 속에서만 우물거리던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베이글 먹으러 갈래?"는 요새 유행에 민감하다는 뜻으로 새롭게 해석되는 분위기다.


 베이글이 핫한 이슈로 떠오르다니. 뒷산에 마구 자란 쑥이 명약이라며 새삼스러운 주목을 받고 분리수거하는 날이 특별한 이벤트로 부각되는 느낌이다. 식빵으로 큐브를 빚고 크로와상을 납작한 와플로 만들더니… 별걸 다하다가 베이글에까지 손대는 느낌으로 번져나가는 빵계의 유행이 억지스러운 꾸밈으로 보인다기보다는 그저 반갑다. 평소, 크림빵이나 팥빵처럼 고명 위주로 전개되는 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의 빵 취향은 크로와상과 베이글, 치아바타 같은 기본 베이스가 승부이자 전부인 쪽으로 꽂혀 있고



 그중에서 식감이 가장 딱딱한 쪽에 속하는 베이글은 손이 가장 덜 가는 빵이었는데도 갑자기 여기저기서 ‘베이글! 베이글!’ 하니까 나 역시 덩달아 '원래부터 베이글 좋아했던 여자야'하는 자부심에 취한 나머지 고개가 십구 도쯤 올라가고 말았다. 이러다가는 '베이글이란 자고로 이렇게 먹어야 한다'며 크림치즈와 퓨전 치즈의 구분을 짓고,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는 베이글을 나무라는 '베이글 꼰대'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오래된 취향에 전통성을 부여하며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요즘이다. 오직 베이글을 사기 위해 베이글 전문 빵집에 간다고 하면 “고작 베이글 하나 먹으려고?”하던 이들에게 한 방 먹인 쾌감마저 들기도 하고.


베이글 빵으로 유명한 포 비(FOUR B). 빵 굽는 공간과 커피 만드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 커피와 베이글을 따로 따로 받아야 하지만 전문성이 느껴져 불편함을 감수하게 된다.

 

 그런데 왜 진즉부터 베이글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못했을까? 밋밋함이 '맛없음'으로 착각되기 쉬운 미각의 세계라고는 하지만 개인의 취향에 대한 최소한의 기백은 있었어야 하지 않나. 민주화된 취향만이 옳은 것도 아닌데. 유행으로 도는 아이템만이 칭찬받을 수 있는 건 아닌데 말이다.


 아마도 베이글이 지닌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말하면 누군가에게 추천하기에는 베이글에 대해 별로 자신이 없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 식감 좋은 빵이 넘치는 세상에서 꽤 하드한 존재인 베이글은 식빵에 비하면 씹기 어렵고 크로와상처럼 우아한 자태도 아니다. 오픈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기에는 좋지만 어디까지나 '만들기에' 좋은 거지 먹기에는 아니다. 토핑은 한 입에 들어오는데 질긴 빵은 잘 안 뜯겨서 둘이 따로 논다. 입가에는 불필요한 힘이 잔뜩 들어가고 토핑은 미끄러지기 일쑤다. 아무리 노련한 푸드 파이터라도 ‘먹기 좋은’까지는 무리다. 햄버거의 난이도를 능가하는 추잡스러움이 버거워 잘 안해 먹게 된다. 자칫하면 입천장이 까지기도 십상이고.


만만해 보이지만 은근히 어려운 상대였던 거다. 베이글이란 녀석은.

#리틀넥애니오케이션에 대기 명단을 올린 후 두 시간 후 입성했지만 카페 주문메뉴는 다 팔려서 솔드아웃. 아쉬운대로 베이글만 사와야 했다. 오전 일찍 가는 걸 추천 드린다.

 

 그래서 그런지 베이글이 핫하다기보다는 베이글을 꾸미기 위한 인테리어와 감각적인 마케팅이 돋보이는 공간의 유명세가 더 큰 거 같다. #런던 베이글 뮤지엄 #리틀넥애니오케이션처럼 가게 구경 자체가 재미 있는 곳은 웨이팅을 할 정도로 인기지만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에 입점한 베이글 코너 앞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세상의 많은 유행이 흔히 그렇듯. 베이글보다는 베이글을 해석하는 아이디어가 더 매력적이며 보드로 식탁을 만들고 참기름병에 서양식 오일을 넣어 파는 아이디어가 재미있어 여기에서 파는 베이글까지 먹게 되는건지도 모른다.


보드를 닮은 식탁과 참기름병 +서양 오일 콜라보의 참신함에 반하고 말았다.


 지금의 열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이어지든 끊어지든 어느 쪽이든 좋다. 베이글이란 원래 한철 잠깐 먹고 질리는 맛이 아니니까. 크림치즈만 발라도 맛있고, 희한한 걸 얹으면 또 희한하게 맛있으며 연어와 크림치즈를 받쳐주는 가장 적절한 빵이니까. 지금 이때만큼의 주목을 받을 날이 다시 오지 않을지 몰라도 이만하면 태어난 이래 최대의 영광을 누리지 않았나 싶다.


 실은 열기가 좀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나도 거기 가서 베이글 좀 먹어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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