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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철 Oct 22. 2023

오대산 월정사, 상원사 가을

스님들의 길 선재길 걷기

오대산 월정사로 가는 길은 멀다. 대전에서 자가용으로 3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이 날 아침에 첫눈이 내린다. 네비는 월정사 입구에서 상원사로 가는 길이 온통 빨강불이다. 길이 좁아서 입장이 불가능한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는 신작로처럼 도로가 뚫려 있어서 차량이 입장하기에 불편함이 없다. 다만 길가에 여기저기 세워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입구에서 주차요금을 받지만 주차 공간이 없을 수 있다며 요금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드라마 도깨비에 지은탁의 나오는 눈이 오는 길로 잘 알려져 있다.

두 번째로 월정사는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가 보관되어 있던 곳이다. <조선왕조실록>을 임진왜란 직후인 1606년부터 보관해 온 오대산 사고에 조선총독부에서 파견한 일본인 관원과 평창군의 일본인 서무주임 히구치, 고용원 조병선 등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실록이 담긴 상자들을 통째로 털어갔다. 300여 년간 사고를 지키던 인근 월정사 승려들은 절 역사를 기록한 <오대산사적>에 이런 사실을 적는 것 말고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히로히토 일왕의 왕세자 시절 역사 스승이자 일제 식민사학의 태두였던 시라토리 구라키치(1865~1942)가 일본황실 세자 교육을 위해서라도 조선왕족실록이 있어야 하는 논리였다. 당시 도쿄제국대학(현 동경대) 사학과 연구실로 옮기게 된다. 788 책중에서 도쿄 대지진으로 대부분 불타 소실되었지만 외부에 대출되었던 74 책 중 24 책이 경성제대(현 서울대)로 1932년에 돌아왔다. 나머지는 2006년에 비로소 환수위원회를 통해서 월정사로 돌아오게 된다. 원래의 터는 1.4 후퇴 때 국군이 소각하였다. 이 터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사명당이 수행했던 자리였다. 

외쪽: 일제강점기에 찍은 오대산 사고의 사각(史閣).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의 핵심 건물. 오른쪽:일제강점기에 찍은 오대산 사고의 선원보전. 왕실 관련 문서를 보관했던 건물

이 큰 도로가 나기 전에는 오대천의 길을 따라 상원사까지 다녔던 그 길이 선재길이다. 지금은 잘 정비가 되어 화장실과 다리로 놓여 있다. 

월정사로 들어가는 초입이다. 월정사 들어가기 전에 왼쪽 빈터에 주차를 하고 스틱과 각반을 하고 걷기 시작한다. 둘레길이나 산책길이라 해서 운동화를 신는 사람들을 많이 보는데 돌멩이나 바위를 디딜 때 위험함으로 되도록이면 경등산화와 스틱을 챙겨야 한다. 물론 한 두 번 다녀오면 요령이 생겨서 반드시 그렇게 준비하게 된다. 그래도 경험을 하기 전에 다녀온 사람들이 한 이야기를 눈여겨 들을 필요가 있다. 

아침에 첫눈이 오고 나서 일기예보에서는 정오를 기점으로 날이 개일 것이라고 해서 예사로 생각했지만 손도 시리고 산에 오면 의외로 춥기도 하다. 가을 산행이나 계곡에는 장갑, 모자, 마스크 정도를 준비해서 챙겨가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추위를 피할 수 있다. 

월정사에서 시작하여 걷기 보다는 월정사 주차장이나 월정사 입구 진입로에 공터에 주차를 하고 공영버스를 이용하여 상원사까지 가서 상원사에서 걸어서 월정사로 오는 코스를 선택하기를 권한다. 상원사 경내를 한번 둘러 보고 상원사 범종과 당간지주를 본 다음 선재길을 이용하여 내려 오면 된다.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가는 길이 가파르지 않다고는 하지만 나름 느끼지 않는 경사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려 오는 길이 편하기 때문이다. 

강가를 따라 걷다보면 차가운 물에 바람도 차다. 마침 월정자 주차장 휴게소에 특산품 코너에 어묵과 어묵을 팔고 있어서 요기를 간단하게 하고 출발한다. 뜨거운 국물이 산에 오르는데 도움이 된다. 

월정사 경내는 단풍이 반절을 물들었다.  월정사 고려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월정사 8각 9층석탑이 있다. 그 앞에는 공양하는 모습의 석조보살좌상이 마주 보며 앉아 있는 모습이 특이하지만 석탑을 분리해서 복원 중이라 가림막을 쳐 놓은 상태이니 한번 물러 보길 바란다. 

월정사로 들어가는 경내와 월정사 앞다리 오른편으로 가다 보면 선재길 걷기 아치형 다리와 아내판이 나온다. 그곳에서 상원사까지 약 10킬로 미터이다. 경사도는 비교적 완만하여 난이도가 낮다고 적혀 있지만 무지 못할 바위와 돌들이 많아서 스틱이나 등산화는 반드시 챙겨야 한다. 중간중간 사진을 찍고 풍경을 감상하며 멍을 때리는 나는 완주 시간이 짧거나 빨리 걸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은 없다. 하여 일행들과 함께 가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그런 스타일을 아는 사람들을 자주 나와 함께 걸으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선재길은 오대산 월정사부터 상원사까지 10km에 이르는 거대한 전나무들이 도열한 천년의 숲길로 1960년도 말 도로 개설 전 부터 스님과 불교도들이 다니던 길이다. 지금은 작은 도로 대신에 큰 신작로가 뚫려 있다. 선재는 선재동자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수도승들이 걷던 길이다. 화엄에서는 선재동자 입법 계품에 등장하는 구도자를 일컫는다.  

걷기 시작하는 반야교이다. 음료수와 간식을 챙겨가고 화장실을 다소 띄엄띄엄 있으니 참작하여 음료를 마실 필요가 있다. 

선재길은 이렇게 평탄한 흙길도 있지만 자갈과 바위가 있는 울퉁불퉁한 곳이 많이 있다. 계곡을 따라 걸어야 하는 이유로 인해 밑창이 두꺼운 등산화나 스틱은 유용하다. 간간이 부모님이 어린이를 데리고 걷기도 하는데 다소 무리는 있다. 걷기를 좋아하거나 익숙한 어린이라면 걷는 것이 즐겁겠지만. 



맑은 물과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다소 가파르다는 느낌이 든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유형은 다양하다. 버스를 타고 와서 상원사에서 월정사로 내려오는 사람들. 상원사에서 중간 쯤와서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사람들. 나는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걷고. 내려올 때는 상원사에서 월정사로 새로운 자동차 도로로 내려왔다. 선재길보다는 훨씬 밋밋하고 평탄하며 수월하고 소요시간이 적게 든다. 이 날은 버스가 만원이라 중간에서 하산하는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도 버스가 정차하지 않고 지나쳐 버렸다.  

      

아이들이 옥색 물에서 돌을 던지며 놀고 있는데 옆에서 그렇게 하면 아니 되는 겁니다라고 하시는 분이 어머니인 줄 알았는데 조금 있다 보니 다른 방향에서 아이들 엄마가 이들을 불렀다. 아마 다른 등산객이 주의를 줬던 모양이다. 사람보다 보는 방향이 다르다. 그래도 돌을 던져서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은 아이들이라면 있으리라 조심해서 해라는 것은 찬성이다. 


산악회나 친구 등 일행들이 물가의 바위에 앉아서 음식들을 먹는다. 이 아름다운 가을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걸으며 맛난 음식이나 음료를 먹는 기분은 더욱 좋을 것이다. 

이곳에 오대산 화전민이 60년대 중반까지 살았고 그 후에 이주를 시켰다고 한다. 화전민들이 생활할 때 내를 건너는 섶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섶다리는 이별다리라고 한다고 한다. 여름이 되어 홍수가 나면 떠내려 가서 다시 가을에 동네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겨울에 얼어붙은 내를 건너기 위해서 합심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월정사, 상원사, 진부역으로 오고 가는 마을 공용버스의 표시가 도로에 표시되어 있다. 아쉽게도 상원사까지 갔다가 다시 월정사로 내려오는 버스는 오후에 만원이다. 하여 택시를 불러서 타고 내려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상원사에는 먹을거리가 거의 없다. 식당이 한 군데 보이는데 어묵과 라면 정도 판매하고 있다. 상원사까지 가서 그곳에서 점심을 해결하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음식을 싸서 들고 가야 하거나 먹고 가는 것을 권한다. 

상원사에 도착했을 때 소요시간이 일반인의 배 이상이 소요되었다. 하기사 10킬로가 되는 길인데 산길과 자갈길이 함께 있어서 내게 쉽지 않았다. 상원사 입구에 도착을 했을 때는 내려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기다란 줄로 사람들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원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범종인 상원사 종이 있다. 

상원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소리가 좋은 상원사 동종이 있다. 그리고 옆에는 수양버들의 단풍이 있다. 마침 단품이 그 단아한 자태를 들어내었다. 우리나라에서 각장 아름다운 범종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상원사에 이른 아침이나 저녁을 기다려야 한다. 

하산하는 길에 버스 대기줄이 너무나도 많아서 내려가는 길이다. 이 길은 승용차들도 워낙 많기도 하고 비 포장도로라 먼지가 많이 날려서 마스크를 준비해야 한다. 내려가는 길의 걷는 묘미는 없다. 그냥 걷는 길에 불과하다. 대신 빠르고 편하게 걸어갈 수 있다. 

걸어 내려가다가 사진을 찍다 보니 이게 마치 회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나무들을 세워놓고 다양한 물감을 채색한 한 폭의 병풍 같은 회화처럼 느껴졌다. 이런 맛이 걸어 다녀 보다 보면 많다. 

출장할 때 월정사에서 10시였는데 도착해서 시작을 보니 6시였다. 그러니깐 8시간을 걸었다. 밤이 되니 월정사 일주문에 야간 서치라이트가 은은하게 비치고 있었다. 

오를 때는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내려오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월정사에 조선왕족실록을 보관하기 위한 터를 잡기 위해 중앙관료의 높은 벼슬이나 그 담당자가 내려온다. 여기도 그 자리를 확인하기 위해 내려왔던 

 선조의 아들 낭원군이 왔던 자리를 바위에 세긴 터를 표시하는 것어 보인다. 봉안사는 실록과 같은 귀중한 사고를 보관하기 임명된 사람을 일컫는다. 그때의 행사를 후세에 남기기 위해 큰 바위 위에 글을 새겨놓았다니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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