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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Jin Han Jul 08. 2020

실패의 다른 얼굴, 기회

인생의 싱귤레러티


희진, 난 요즘 말이야 내 인생 전반이 실패한 느낌이 들어.


나와 동갑인 친구가,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40대의 직장 생활은 20대와 달리, 각도가 다르다. 그 깊이가 청년보다 더하다 또는 덜하다를 의미하지 않는다. 삶의 고민은 나이와 상관없이 깊을 수 있다. 다만, 직장 생활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을 아울러 밀려오는 감정들까지 더한 그녀의 고민의 무게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문득 20대를 뒤돌아보면,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고민을 했었다. 진로 고민으로,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는 늘 숙제였다. 그중 하나가 영어였다. 고등학교부터 나는 영어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문과생인 나는 수학이 더 재미있었다. 덕분에 수학 성적은 좋았지만, 영어는 바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과연 대학에 갈 수 있을까?를 걱정해야 할 성적이었다. 그렇게 영어는 직장 생활을 하는 20대 후반까지 내 인생의 아킬레스건이었다. 졸업하기 전 IMF가 터졌고 이후, 취업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좋은 학교와 성적도 그 당시 취업 준비생, 특히 여성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영어는 지금과 다르지 않게 취업문을 여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였다. 나는 영어 성적 없이 취업을 하긴 했지만, 명확한 진로를 찾지 못했었다.


2005년, 결단해야 했다. 지금 회사를 내려놓고, 늦었지만 영어 정복을 해야 할지, 아니면 평생 영어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야 할지, 이 두 갈림길에서 나는 영어를 극복하고 싶었다. 영어 공포증을 극복해보려는 시도와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보다 열심히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학원을 다니며 하루에 반나절은 영어 학원을 오가며, 복습을 했었다. 그렇지만 전혀 변화가 없는 영어 실력의 시간을 통과하며 좌절과 실패의 감정을 느끼는 시기가 5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어학연수를 가기로 결심했다. 남들은 대학생 때 가던 어학연수를 29세를 바라보는 28세 2월 겨울,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요즘은 늦은 나이에도 많이 가는 것 같지만(?), 그 당시에는 꽤 큰 결단이었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영어 강사 한 분이 '어학연수 성공 확률은 5%'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나는 5% 안에 들겠다는 마음으로 그 길을 선택했다.  


뉴욕 어학연수는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한 달간 생활과 공부에 투자한 돈만 200만 원이 넘었지만, 나의 실력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이대로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 두려움에 눈물도 찔끔 흘렸다. 친구들은 어학연수 시, 실컷 놀았다고 하던데 지금 나는 뉴욕에 있는 건지, 어느 미국 시골에 있는 지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뉴욕의 삶을 즐기지 못했다. 다시 실패하고 싶지 않은 절실한 마음 때문이었다. 부모님 얼굴을 뵐 때 당당하고 싶었고, 내 삶에도 크진 않지만, 작은 산등성이 하나 정도 넘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뉴욕에서 1년 동안 그 흔한 뮤지컬 한 편 즐기지 못했다. 마음도, 돈도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어느 날, 우리 반 일라이(Ely) 선생님과 나는 점심시간에 교실에 남아 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나는 책상에 앉아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어색한 시간이 흘렀을 때 즈음 나도 모르는 용기가 났다. 그 당시 나는 선생님의 말이 거의 이해되지 않았고, 말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침묵하는 학생이었다. 그런 내가 입을 열어 질문을 했다. 띄엄띄엄 단어를 사용했다.


“뭐 하나만 여쭤볼 게 있는데요, 선생님 말이 이해가 안 되고 안 들려요”


도움을 구한 작은 용기가 내 인생의 싱귤레리티를 넘어서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누가 상상을 했을까?  

일라이 선생님은 3가지 원칙을 알려주었다. 매우 기본적이지만, 중요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지금까지 10년 동안 배운 영어는 잊어. 다시 시작하면 돼.

별 의미 없이 지나갈 수 있는 이 한마디는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시작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는 것처럼. 나의 모든 영어 공부 습관을 내려놓고, ABC부터 배운다는 마음으로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이 말을 덧붙였다.

"만약 내가 시킨 3가지를 5개월 동안 한다면, 너는 여기를 졸업하는 날, 내 말의 90% 이상을 알아듣게 될 거야. 그리고 나와 대화를 하고 있을 거야"


과연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맞다. 나는 지금 그의 말대로 되었다. 놀랍게도 나는 4개월 후, 그의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 있었고, 그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GMAT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드디어 해냈구나 생각을 했다.


"난 네가 10년 정도 여기서 살았다고 생각했거든. 왜냐하면 한국 학생의 억양과 발음이 거의 없어."


지금까지 나는 EBS 모닝 스페셜이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는 영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영어 공포증에 대한 실패와 두려움, 그리고 극복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실패와 두려움은 끝이 아니다. 누구나 실패하고, 누구나 그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그 두려움은 비례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린 그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영어 공포증은 인생에 찾아오는 두려움과 실패라는 단어의 무게감에 비해 작은 사건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는 이후에도 다른 면에서 실패를 경험했고, 두려움 앞에 섰었고, 다시 일어났다.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처음부터 시작하겠다는 마음과 도움을 요청할 용기였다. 산을 올랐다가 다시 내려가면, 우리는 또 산을 오르기 위해 밑에서부터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다. 인생에서 실패와 두려움이 찾아오면, 산을 오른다는 마음가짐으로 걷기 시작하면 된다.



내게 선물처럼 주어진 한 번의 인생이다. 두 번 살지 않을 삶이기에 이번 생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다. 대단한 성공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보다 실패와 두려움에 갇혀서 내게 주어진 행복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에도 때때로 두려움이 찾아올 수 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거나 그 자체가 두려움일 것이다. 그러나 난 그때 또다시 나에게 정직할 것이고, 도움을 요청할 것이고, 그렇게 처음부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극복했다면 나 또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 것이다.



두려움, 그리고 실패와 싸우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인생에 꽃은 다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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