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중소기업의 사회공헌’ 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세 명의 기업가가 있었다. 가장 먼저는 나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다. 초등학생 시절,수업을마치면 아버지가운영하던 공장에 가서 고사리 손으로 일손을 돕거나 회사 마당에서 키우던 강아지와 뛰어 놀곤 했다. 아버지께서는 자동차와 전자제품에 필요한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을 운영하셨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월급날이 되면 급여 중 일부를 회사 주변에 있는 복지시설에 기부하거나, 국제개발협력 NGO를 통해 결연을 맺은 해외 아동들을 위해 기부금을 내는 것이었다.
기억나는 두 번째 분은 3년전에 만난 어느 중소기업의 대표님이다. 이 분은 같은 산업단지에서 사업을 하는 동료 기업가들과 수년동안 사비를 걷어 복지기관에 기부를 해 왔는데, 이제는 본인이 운영하는 기업이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와 같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업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을 구하셨던 분이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대표는 지방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분인데, 창업한지 30년이 넘은 기업을 운영하면서 기업의 생존과 함께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민하다 보니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인 것 같다며, 어떻게 해야 기업이 사회적인 책임을 다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문의를 하신 분이다.
필자는 거의 평생을 중소기업과 인연을 맺고 지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중소기업을 운영하셨고,대학교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구매부서에서 10년이상 근무하며 중소기업과 함께 일을 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대기업 CSR팀에서 일을 하며 중소기업 대상으로 CSR 컨설팅을 진행했는데, 이를 위해 많은 중소기업을 방문하고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중소기업을 만나 CSR 관련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인권경영이나 윤리경영, 환경경영이 주를 이루지만 사회공헌 활동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과거 중소기업사랑나눔재단에서 조사한 중소기업 사회공헌 현황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중 61.7%가 사회공헌 활동에 참여하고 있고, 비록 예산이 충분하지 않고 전문인력이 부족하지만 국내의 아동, 청소년, 노인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보며 ‘다윗과 골리앗’이 생각났다.
작은 다윗이 자신보다 큰 골리앗을 상대하여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택한 것은 덩치 큰 골리앗이 갖고 있던 커다란 무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무거운 갑옷과 칼 대신, 평소에 잘 다루던 작은 돌멩이 몇 개를 챙겨서 전쟁터로 나섰을 뿐이다.
‘Take the high road’, 어려운 상황이더라도 옳은 것을 선택하는 경우 ‘하이로드(high road)를 간다’는 표현을 쓴다. 이제 중소기업의 사회공헌 활동도 하이로드를 갈 필요가 있다. 대기업의 활동을 흉내 내거나, 다른 중소기업이 하는 활동과 비교하거나, 홍보효과만 생각하거나, 진정성 없이 실적 채우듯 하거나, 직원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자원봉사 활동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등의 활동이 아닌, 사회공헌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며 각 기업이 갖고 있는 돌멩이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 세 가지의 실천이 필요하다.
‘사회공헌 전략을 수립하자’, 아무리 작은 기업이라도 비즈니스를 할 때 전략이 있다. 고객이 누구이고 경쟁자가 누구인지 고민하고 기업의 전략을 만드는 것처럼, 사회공헌도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때 기업마다 비즈니스 전략이 다르듯 사회공헌 전략도 다를 수 있다. 가끔 어떤 회사의 사회공헌 활동이 더 의미가 있는지, 더 잘한 활동인지 비교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비교는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사회공헌 활동치고 나쁜 활동은 없다. 투입되는 재원이 얼마나 되는지, 수혜자가 얼마나 많은지, 참여하는 인원이 몇 명인지 등차이는 있지만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과 전략에 따라 진정성을 갖고 진행한다면 그것으로 이미 충분히 의미 있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평가하자’, 어느 것까지 측정하느냐에 따라 사회공헌 활동의 결과를 측정하는 것은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평가해 보자. 그래야 개선이 있고 발전이 있기 때문이다. 평가결과가 맞는지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더라도 당황할 필요가 없다. 현재 수준에서 활동을 점검하고 나은 방향을 고민하는 것으로도 의미있기 때문이다.
‘사회공헌을 발전시키자’, 기업 사회공헌 활동에 정답은 없다. 최근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이 갖고 있는 돌멩이 즉 핵심역량을 활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어느 기업관계자로부터 “이 활동은 오랫동안 진행해온 사회공헌 사업이어서 그만 둘 수 없어요”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기업입장에서도, 수혜자 입장에서도 시급하거나 중요하지 않지만 초대 회장님이 시작하셨고, 오랫동안 진행해 온 사업이며, 대중에게 많이 알려져 있으므로 이제 와서 그만둘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조심스럽게 담당자께 말씀 드렸다.
“그 활동을 그만두지 마시고 진화시켜 보세요”
더 발전시키라는 의미였다. 기존에 하던 활동을 그대로 고집하며 진행하는 것은 사회공헌 분야에서 자주 언급되는 ‘지속성’과는 다른 것이다. ‘지속성’이라는 단어는 똑같은 것을 반복한다는 것이 아니라, ‘발전’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다시 이 글의 처음에 언급한 중소기업의 기업가를 떠올려보자. 내 아버지께서는 수익의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셨고, 두 번째 대표님은 기부를 넘어, 비즈니스 자체를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만들기 원했고, 마지막 대표님은 지속가능경영을 위해 CSR을 고민하셨다.
이들은 모두 갖고 있는 돌멩이가 다르고 사회공헌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가 다르다. 누가 옳고 틀린 문제가 아니다. 기업마다 처한 현실이 다르다. 경영진의 관심도 다르고, 사용 가능한 재원의 규모도 다르다. 사회공헌 전담 인력 규모도 다르고 전문성에도 차이가 있다.
미국의 소설가 폴 오스터의 소설에 있는 글귀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출발선이 어디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거나 어딘가에서는 출발해야한다.
원하는 만큼 빠르게 전진하지는 못했을지 모르나 그래도 나는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중소기업의 사회공헌 활동도, 기업마다 서로 다른 출발선에 서 있지만 어쨌거나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조금씩 전진하면 된다.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중소기업사랑나눔재단에 기고한 칼럼 재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