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보람 Dec 30. 2023

여기, 당신을 지키는 사랑

보이지 않게 나를 지켜주는 마음들

   지금 일하고 있는 곳에서 도보 3분 거리의 김밥집이 있다. 요즘 거의 일주일에 세 번은 가는 것 같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주방에 계신 사장님께 말한다.


   "김치볶음밥 하나 먹고 갈게요."



   나에게 김치라고는 삼겹살이나 고기를 먹을 때만 느끼함을 잠시 해소하기 위해 곁들이는 반찬이었다. 이 식당의 김치볶음밥은 냉동식품이 아닌, 사장님이 냉장고에서 김치 포기를 꺼내 숭덩숭덩 썰어 밥과 함께 강력한 화력으로 볶아낸다. 많이 짜지 않아 적당한 맛을 자랑한다. 내 12월의 카드 이용내역 중 가장 많은 결제 횟수를 자랑하는 이 김밥집의 매력은 집밥 같은 심심함이다.



   음식이 나오면 사장님은 집에서 먹을 반찬을 만들었다며 반찬 몇 가지를 내어 주신다. 오늘의 반찬은 따뜻한 무나물과 새콤한 미역무침이다. 무나물은 냄새부터 고소하다. 내가 삶았을 땐 이런 맛이 안 났는데. 감사한 마음으로 나는 항상 내게 주어진 음식들을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비운다. 식사를 마치고 벗어두었던 코트를 다시 입었다.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다. 우산을 들고 눈 쌓인 길에 조심조심 걸으며 발자국을 새긴다. 저기 멀리 가까워지는 회사를 보면서 생각한다.



   항상 혼자 있지만 도처에 가득한, 내가 알아채지 못한 사랑들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

오늘처럼 눈이 펑펑 오는 날 항상 내 손에 들려있는, 대학 동기 언니가 선물해 준 우산,

돈 한 푼 잘 쓰지 않는 나를 위해 자신의 겨울 코트를 내어준 내 동생의 사랑,

불향 입힌 김치볶음밥과 따뜻한 반찬 그리고 밖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는 말을 덧붙이는 김밥집 사장님의 마음,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나에게 견과류며 과일이며 바리바리 싸들고 와 먹으라며 건네주는 동료 선생님의 마음나를 지켜주는 그 모든 사랑 속에서 하루를 버티고 2023년을 살아냈다.



   2024년에는 나도 조금이나마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작은 모닥불처럼 언젠간 꺼지겠지만 잠시라도 누군가와 함께 내 손 위의 따뜻함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몰래 먹는 간식이 더 맛있잖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