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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보람 Apr 18. 2024

특기는 변기 뚫기와 전등 교체하기, 취미는 타협하기

도서관의 관리자 인듯 관리자 아닌 관리자 같은(?)


   4월의 도서관은 도서관의 날, 도서관 주간 등의 행사로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낸다. 우리 도서관은 4월에 개관기념일이 있는 데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 투표소로 역할을 맡게 되어 올해는 더욱 숨 가쁜 일들의 연속이었다. 작년 이맘때의 나는 이 시기가 얼마나 바쁜지 알지 못하고 뜬금없는 코로나에 (처음) 걸려 가장 중요한 시간을 집에서 끙끙 앓는데 다 써 버렸다(다행히 내가 준비할 건 다 하고 앓아누웠지만 필요할 땐 결국 집에서도 일을 해야 했다)




   올해는 연초부터 투표소 지정을 위해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갖춰져 있는지, 승강기나 대피시설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 같았다. 이 동네엔 투표소로 쓸 만한 공간이 많지 않아 주민센터와 학교, 그리고 도서관을 투표소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 도서관이 완벽한 곳은 아니지만, 도서관이 생기기 전 투표소 역할을 했던 근처의 교회에서는 더 이상 공간을 빌려주지 않는다는 주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도서관이 투표소로 확정된 후에는 전기 및 소방 점검 등 안전한 투표 진행을 위한 여러 가지 일정이 있었고 하나의 일정이 끝날 때마다 확인 서명을 해야 했다. 이름, 소속, 연락처는 쉽게 작성할 수 있었지만 직급(직위)을 적는 란은 항상 어떻게 써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저는 직급이 없는 기간제근로자인데 여기엔 뭐라고 쓰면 될까요?"


"아, 그럼 관리자라고 쓰시면 돼요."




   그렇게 나는 도서관의 관리자가 되어버렸다(?). 물론 4월 10일에 출근하는 사람이 나 혼자이기도 하지만, 같이 일하는 근무자들 중 가장 오래 이곳에 머무른 사람이기도 하다. 사실 나의 주 업무는 도서관을 잘 운영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일이지만 권한에 한계가 있기에 책임질 수 있는 범위가 넓진 않다. 




   규모가 큰 도서관이라면 각각의 역할에 인력을 배치할 수 있지만, 긴 운영 시간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인력으로 굴러가는 우리 도서관은 한 명만 빠져도 동그라미가 아닌 각진 네모, 세모가 되어버리기에 항상 모서리를 둥글게 굴려줄 사람이 필요하다. 어떤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을 때, 인력이 없다는 이유는 이용자에겐 핑계로 느껴질 뿐이다. 그래서 내 역할은 퇴사 등으로 어딘가에 구멍이 나면 메꾸고 채우는 일이다. 원래의 그 모양과는 다를 수 있어도 모서리가 드러나지 않게끔 잘 다듬는 사람이다.




   나를 제외한 모든 근무자의 업무를 거의 숙지하고 있고, 누군가의 인수인계 없는 갑작스러운 퇴사로 자리가 비면 충원이 될 때까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채용된 새로운 이에게 업무를 알려준다. 아무리 경력직이라 하더라도 업무 프로세스와 대략적인 도서관의 분위기(도서관이 추구하는 업무 방향)를 알고 있으면 적응도 빠르고 업무 처리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업무 인수인계와 함께 편하게 질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여기저기 부딪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고, 새로운 이가 일에 금세 익숙해지면 나도 빠르게 내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칫 사소한 일이 갈등이 될 여지도 줄여준다. 스스럼없이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는 시행착오를 줄이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 파티션도 없는 곳에 근무시간에 반 이상을 같이 있어야 하는 동료들과 갈등이 생기면 얼마나 불편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다. 그렇기에 암묵적인 타협이 일상이 되고, 민감한 주제를 다뤄야 할 때는 사유를 납득할 수 있도록 먼저 제시한다. 




   또, 다른 근무자들이 담당 지자체에 말하기 어려운 부분은 내가 대신 전하기도 한다. 특히나 급여와 관련된 부분이 그렇다. 급여가 밀린 적은 없지만 주휴수당을 잘못 계산하거나, 급여명세서를 교부하지 않거나, 4월이 훌쩍 지났는데도 연말정산 환급금이 들어오지 않는 등 문제가 종종 생긴다(그런 문제도 항상 내가, 아니 나만 발견한다...).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근로자의 권리이지만 그럴 때마다 자칫 돈을 밝히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물론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아주 약간 껄끄럽지만 MZ세대라는 핑계의 방패를 앞세우고 대신 총대를 멘다.




관리자라고 부르진 않지만 모두가 함께 해야 하는 업무에서 '니 일'과 '내 일'을 구분하지 않는 것.

어떤 사고나 사건이 생기면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것, 나서야 할 때 주저하지 않는 것.

이용자들을 항상 미소로 맞이하며 나의 역할에 책임을 다하고, 주변의 이해관계자들과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삶의 길목에서 잠시 만나고 헤어지는 동료들과의 시간에 마음을 다하는 것.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의 터전의 일상을 별 탈 없게 꾸려나가는 것.


이것이 전통시장 속 작은 도서관에서 매일을 쌓아가는 나의 역할이자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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