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X채소이야기#03.
분류(과명) : 십자화과 (한해살이 초본식물)
원 산 지 : 지중해 연안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으로 전래)
역 사 : 삼국시대부터 재배
생각 #01. 그저 고마운 존재
무를 생각하면... 그저 고맙다. 농사 첫 해 때부터, 무만큼은 수확 실적이 좋았었기 때문이다. 늘 살펴보고 손을 대야 하는 다른 작물들에 비해서, 어렵지 않게 잘 자란다. 가을에 씨를 뿌릴 때 너무 빽빽하게 심었다면 싹이 올라오고 나서 솎아 주기만 하고, 무가 좀 자라서 흙 위로 무가 노출될 때면 흙을 좀 북돋아 주기만 하면, 겨울에 진입할 무렵 원하는 튼실한 무를 얻을 수 있다.
큰 돌봄 없이도 까탈스럽지 않게 잘 자라 주는 것도 고마운데, 겨우내 먹을 양식이 되어 주기까지 한다. 저장이 오래되기 때문에 오래 먹을 수 있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처리하여 다양하게 먹을 수 있기도 하다. 무를 수확하고 나면 땅이 얼기 전에 구덩이를 만든다. 무를 보관할 만큼의 면적과 깊이로 구덩이를 파서 흙을 덮어 두면 봄이 오기 전까지는 아삭아삭한 생무를 계속 먹을 수 있다.
바로 사용할 무는 밭에서 가져와서 겨우내 먹을 양식을 만든다. 동치미 한 항아리를 담고, 김장을 할 땐 석박지를 만들고, 무말랭이용과 물을 끓일 때 쓸 무차용으로 무를 말려 놓는다. 겨우내 먹는 각종 찌개에도 무는 빠지지 않고 계속 들어간다.
무엇보다, 수확한 무를 손질할 때 잘라 놓은 무청마저도 먹는다. 이사 와서 첫겨울, 동네 할머니들이 집집마다 왜 그토록 많이 무청을 손질해 말리는지 의아했다. 그런데 곧 알게 됐다. 밭에 푸성귀들이 사라지는 겨울 동안 할머니들은 부족한 비타민과 무기질을 이 무청 시래기로 공급해 왔다는 사실을.
이렇듯 무는 땅이 얼어 버리는 계절 동안 밥상에 끊임없이 귀한 영양분을 공급하면서도, 무심하게 잘 자라준다. 초보 농부마저도 어렵지 않게 자신을 먹으며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그저 고마운 존재, 무.
생각 #02. 냉면 덕후와 무
나는 냉면 덕후다. 서울에서 구례로 이동해 와서 살며 가장 어려운 점이 무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한다. "평양냉면 못 먹는 거요."
전라남도에서는 평양냉면을 맛보기 어렵다. 원래 좋아하는 음식 세 가지에 들어갈 만큼 평양냉면을 좋아했던 내가 이토록 평양냉면을 자주 먹기 어려운 상황이 여전히 힘들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냉면 덕후인 내가 냉면을 먹기 힘든 환경이라면, 내가 냉면을 만들어야 한다.
냉면의 핵심 두 가지를 메밀면과 동치미와 고기육수의 절묘한 합이라고 보는 내가 냉면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계절은 겨울이다. 시인 백석이 표현했듯 "쩡하니 익은 동치밋국"은 겨울무로 만들기 때문이다. 가을에 무씨를 뿌리며, 냉면을 그리워한다. 초겨울 무를 수확하자마자 동치미를 항아리로 담아내며, 냉면을 상상한다.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냉면을 만들어 먹는다. 계속해서 냉면 덕후로 살 수 있게 하는 무.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