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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 Apr 13. 2022

대파

야X채소이야기#02.


분류(과명)  : 백합과 (여러해살이풀)
원  산  지   : 중국의 서부
역      사    : 고려시대 이전부터 재배


생각 #01. 모두 쉽다지만 내겐 어려운

일상적으로 밥상에 차려지는 음식들에서 빠지지 않는 채소 중 하나가 대파다. 1차적으로 자급자족 농사를 원했던 나는 농사 첫 해부터 파를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대파를 키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봄에 밭에 키우기 시작하는 것이 확연히 보이는 작물- 감자, 고추, 참깨 등 은 따라 농사짓기가 좋다. 그런데 대파는 언제 어떻게 키우는지 밭에서 잘 보이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영부영하다 첫 해에 대파를 키우는 것을 놓쳐 버렸다.


오히려 밭마다 남은 것이 별로 없는 겨울이 되고 나서야 뒷집 할머니도, 옆집 할머니도 밭 어딘가에 대파를 키우고 있었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할머니들의 밭에서 한 겨울에 유일하게 남아 서 있는 작물이 대파였다. 그래서 다음 해엔 봄이 되기가 무섭게 물어보고 다녔다.


"어머니~ 대파는 언제 심어요?"

    "아 이제 슬슬 씨 부서(부워)놔~"

"씨 뿌려 놓으면 돼요?"

     "아 여름 되면 엥겨 줘야제(옮겨 줘야지)"

"생각보다 파 키우기 어렵네요..."

     "파 키우기가 뭐시 어려붜? 거름만 마이 주면 되제."


두 번째 해엔 할머니들 말을 따라 했다. 하지만 옮겨 심을 때 1/3 정도가 죽었고, 잠깐 주변 잡풀을 제거해 주지 않은 틈에 사라진 파가 많았고, 평소처럼 무투입(*퇴비, 비료 등을 투입하지 않고 키우는 농법)으로 내버려 뒀더니 대파가 아니라 실파도 겨우 얻기 힘든 결과만 얻었다.


세 번째 대파 농사를 앞두고 오랫동안 대파를 키워 먹은 여성들에게 다시 재배법을 묻고 다녔고, 실패의 원인을 분석했다. 아직 실력이 없는 농부이기에, 밭에 직접 씨를 뿌려 옮겨 심지 않고 모종판에 씨를 뿌려 모종을 옮겼다. 어릴 때 주변 잡풀을 제거하는 일에 힘썼고, 대파만큼은 무투입으로 키우기엔 아직 무리가 있다고 판단해서 숙성한 거름을 넣어 주었다. 세 번의 시도만에 대파스러운 대파를 얻었다. 월동도 시켰다.


대파 키우는 법을 물을 때면 동네 할머니들은 하나같이 '씨 부서(뿌려) 놨어? 그럼 됐어잉~' 이라며 큰 일 아니라고, 뭐 그리 간단한 일을 묻느냐는 듯 답하곤 했다. 그토록 쉬운 일을 나는 삼 년 만에 겨우 감을 잡는다. 여전히 감 잡지 못한 농사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언젠간 나도 그토록 간단하고 쉬운 일인 듯 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살면서- 남들은 모두 쉽다지만, 나는 어려운 일이  있었다. 나만 어려운, 유독 나에게만 어려운 일도 있었다. 돌이켜보니 '나만', '유독 나에게만' 이란 수식어가 붙던 순간은 주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보여서, 나를  혹독하게 채찍질하며 구석으로 스스로를 몰아갈 때였다. 그런데 농사를 지으면서는 내가 어렵게 여기는 것을 당연시 여기게 된다. 평생을 농사를 지어  어른들 앞에서 나는 비교 대상이 못된다. 서른 , 마흔  아니  번도 넘게 대파를 키워  할머니와 겨우   키워  나를 어떻게 비교할  있으랴.


한 해, 또 한 해가 지나가면 나도 조금씩 쉬워지겠지. 시간이 필요한 것이겠지. 사실 모든 것이 다 그렇지. 내게 시간을 줘야지 무슨 일이든.




 

생각 #02. 파뿌리

파 농사를 잘 짓지 못했을 땐, 파를 뿌리째 뽑는 것이 아까워 잘라먹었다. 그런데 파를 곧잘 키울 수 있게 된 후로는 뿌리째 뽑아 수확한다. 파는 본래 전체를 다 먹는 식재료니 뿌리째 수확하는 것이 답이다.


물론 파의 뿌리를 요리에 쓰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파를 손질할 때면 파뿌리와 흰 줄기가 시작되는 경계에서 뿌리를 잘라내어 버리고 그 윗부분만 사용한다. 하지만 파뿌리는 분명히 식재료다. 파뿌리를 물에 담가 뒀다가, 흐르는 물에 여러 번 씻어 흙을 완전히 제거해 육수를 만들 때 쓴다. 파뿌리가 많을 땐 잘 말려서 두고두고 이용한다. (감기 기운있어 생강, 대추, 계피 등을 달여 먹을 때 나는 이 파뿌리도 꼭 넣는다)


버릴 수 없는 식재료이자 약재이기 때문에 파뿌리에 집작 하기도 하지만, 파뿌리는 내가 농사짓는 땅의 상태를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다른 채소들을 뿌리째 뽑을 때도 나는 뿌리의 상태를 면밀히 살핀다. 얼마나 깊이 땅 속으로 뿌리가 뻗어 나가는지, 뿌리가 얼마나 건강하게 보이는지는, 그 속을 알기 어려운 땅을 보기 위해 중요하다.


수확 후 바로 손질하지 않고 며칠을 내버려 뒀어도, 뿌리를 물에 잠시 담아 놓으면 어느새 물속에서 숨 쉬듯 살아나는 것을 본다. 흙에서 뽑혀와 며칠간 다 말라 버린 듯 보였지만 여전히 살아 있다.


뿌리가 아닌 흰 줄기와 푸른 잎을 먹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나는 뽑아 놓은 대파를 볼 때면 뿌리만 보게 된다. 잘 보지 않는 부분을 보게 되는 일. 남들이 버리는 부분을 귀하게 여기게 되는 일. 다 농사 탓에 생긴 버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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