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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Apr 11. 2017

5. 옷을 버리고 고민을 버리다.

스트레스를 돈 주고 살 필요는 없다.

제발 안 입는 옷 좀 버리라며 끊임없이 엄마에게 잔소리를 들어도 끄덕없던 내가 새벽에 여름옷들을 다 끄집어내어 단 몇 벌만을 남기고 모두 버렸다. 이 일을 새벽에 행한 이유는 단지 하나였다.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책상에 앉으면 책상정리부터 하게 되는 것처럼 나는 해야할 공부가 있었고 그것이 그 새벽에 그토록 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충동적으로 행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나는 부담없이 행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아까운 마음이 어디가겠는가. 나는 옷을 그대로 버리지 않고, 친구들에게 나누기 시작했다. 놀라운 건 그 뒤에 일어난 변화이다. 엄마도 입지 않는 옷을 내다버리기 시작했고, 친구들은 자신의 화장품이나 악세서리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화장품 하나를 다 쓰면 고민 하나가 생기는 사람이었다. 화장품 두 개가 바닥을 보이면 고민이 두 가지가 생기는 것인데 그 이유는 무언가를 사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이었다. 립스틱을 다 사용하면 새로운 립스틱을 사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검색하며 더 나은 것을 사기 위하여 고민했다. 화장품을 고르고 나면 그걸로 끝이 아니다. 해당 브랜드의 세일기간에 맞춰서 사야하는데 이것 또한 대단한 신경을 필요로 한다. 주부들의 '내일 뭐먹지'만큼이나 나의 세계를 뒤흔드는 중대한 고민은 '내일 뭐입지'였다. 무엇을 사는 과정에서 많은 스트레스와 에너지를 소모하면서도 월급을 받으면 당장 무엇을 살지부터 계획하는 나였다.


옷이 많은데 매번 입을 옷이 없다고 느꼈고, 겨울철에는 돈이 더 휙휙 나갔다. 이것은 단지 기분탓이 아니었다. 더이상 이런 것으로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메모장에 적어둔 사야할 것의 목록을 살펴봤다. '이것이 정말 필요한 것인가.' 이런 질문은 미니멀 라이프를 살지 않아도 물건을 실용적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늘 하는 질문이다. 어떤 질문이든 다정하게 바라본다면 합리화라는 피해나갈 구멍이 생기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좀 더 몰아붙일 필요가 있었다. '내가 이것이 없으면 사는데 지장이 생기는가.' 그것들은 없어도 아무 무리가 없는 것들이었다.


여름옷을 버리고 며칠 뒤 겨울옷까지 버린 나는 남아있는 옷들을 보면서 결국 입는 옷은 정해져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안 입는 옷을 두고 언젠가 한 번은 입겠지하는 아까운 마음에 두었던 옷들의 대다수는 옷장 한 구석에 처박힌채 1년 내내 빛을 보지 못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옷이 튀어나오는 마술이 일어나고, 수납 공간도 덜 필요하게 되자 방을 넓게 쓸 수 있게 되었다. 찾고자 하는 옷을 단번에 찾을 수 있게 되었고, 차라리 스티브잡스처럼 특정한 옷을 주구장창 입고 다니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평화도 얻고 개성도 찾을 수 있다. 가령 5천원짜리 몸빼바지를 입고 번화가를 돌아다니면 낯선 사람들의 시선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옷에 대한 고민을 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옷을 버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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