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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ㅅㅇ Feb 22. 2017

<거인>

영화에세이

거인이 된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면 실망스럽다. 나이나 생김새는 제법 어른 구색을 갖춰가고 있으나 몸만 자란 어린애와 다를 바가 없다. 세상 살기를 익히고 삶에 부딪히는 과정에서 어른이 되는 법을 알지 못해 그저 독해지기만 했다. 영악해질수록 삶은 편리해진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나자, 그 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나는 주로 나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만만해 보이는 사람 앞에서 거인이 되었다. 누군가 나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내비칠 때 나는 더욱 커졌고, 항상 누군가의 우위에 서서 제멋대로 군림하고 싶었다. 다른 데서 채우지 못한 것을 채우고자 하는 요구에서 비롯된 반항이었다.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나의 모습은 비겁하기 짝이 없었다. 평등해야할 관계에서 나는 큰 소리를 쳐왔고, 소중한 사람에게도 위선적으로 굴어 왔다. 하지만 나보다 힘이 조금만 센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졌다. 이런 나의 실체를 이미 어떤 어른은 꿰뚫어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지를 모르고, 어디서부터 달라져야하는지를 모른다. 이미 너무 많은 무책임한 행동과 말들을 세상에 던지고, 책임으로부터 멀리 도망쳐왔다. 잃는 게 두렵고 다시 작아지는 게 두려운 나는, 거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가끔씩 거인이 되지 않은 이들을 마주할 때면, 내 마음이 본능처럼 다시 투명해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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