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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파동 강작가 Jun 07. 2019

전철과 플랫폼의 틈새를 막아주세요.

전철을 타고 내릴 때 자꾸 아래를 보게 되는 이유


 얼마 전, 서울 전철 4호선을 탈 일이 있었다. 서울의 전철은 참 좋은 이동수단이다. 약속 시간에 맞추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편하다. 큰 이슈가 없으면 교통사정에 따라 늦어진다거나 하는 일도 없다. 게다가 요즘같이 더워지기 시작하는 날에는 햇볕을 받으며 버스를 기다리기 보다는, 지하로도 다니는 전철이 훨씬 더 시원하다.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 열차와 플랫폼 사이의 간격이 넓은 역 중에 하나다.


    여튼 그 날은 꼭 제 시간에 도착해야 하는 약속이 있었기에 버스보다는 전철을 택했다. 그 날따라 비어 있는 좌석도 많아서 편하게 앉아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성신여대입구역에 도착했을 때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전철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타기 시작할 때, 플랫폼과 전철 사이의 틈에  한 청소년의 다리 한 쪽이 빠진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평온했던 전철 여기저기서 "아이고, 저걸 어째"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다행히 빠진 다리를 금방 빼낼 수 있었지만 그 사이에 전철 문이라도 닫혔다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 다리가 빠질 정도로 넓은 틈이라니. 건장한 청소년이 한 눈을 팔면 위험해지는 환경이 왜 만들어진 걸까? 


이 정도 틈새면 휠체어나 유아차의 바퀴도 빠질 수 있다.


    성신여대입구역 뿐만 아니라 그 외의 다른 여러 역들에서도 발이나 지팡이가 빠지는 위험한 상황을 겪은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을 수 있다. 이 정도로 넓은 틈새라면 휠체어의 바퀴나 유아차의 바퀴도 충분히 걸릴 수 있다. 나 역시 셋째와 이동할 때 유아차의 바퀴가 틈새에 끼어서 난감했던 적이 있다. 


 휠체어나 유아차가 이 틈새를 무사히 넘기 위해서는 힘껏 속도를 내서 넘어야 한다. 바퀴가 틈새에 걸리면 위험한 상황에 닥치게 되니 마치 액티비티를 하듯 멀리서부터 속도를 내서 틈새를 지나쳐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오르내리는 전철에서 휠체어나 유아차에 속도를 내면 또다른 위험이 따를 수도 있지만, 그를 감수하고라도 속도를 내야만 틈새에 끼이는 일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위험을 피하려고 또 다른 위험을 만드는 일이다. 많은 장애인과 부모들이 이런 위험을 알리고 개선 요청을 하지만 아무리 민원을 제기해도 도통 개선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운영의 주체인 서울지하철공사 측에서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플랫폼에 다양한 안내문구를 통해 경고하고 있고 전철이 들어올 때에는 플랫폼 역사 방송으로, 전철 내 방송으로도 벌어진 틈새를 주의하라고 안내하고 있다. 그 안내를 들으면 주의를 기울이면서 조심스럽게 타고 내리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안전성이 낮은 시설을 승객 스스로가 주의를 기울이며 이용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향일까? 시설의 불안전성에 대한 부담을 승객이 짊어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은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는 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본질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것이다.


발빠짐 주의 라는 안내문만으로는 이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오래된 플랫폼이라면 이런 부분을 개선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한다. 또한 플랫폼이 직선 형태가 아니라 곡선 형태로 휘어져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틈새가 벌어지게 설계될 수밖에 없으리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신도림 역의 1호선 플랫폼을 보면 전철 문이 열릴 때마다 플랫폼 아래쪽에서부터 넓은 발판이 함께 올라온다. 자칫 잘못하면 빠질 수도 있는 넓은 틈새를 메꾸고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다. 이런 시설들이 더 빠르게, 더 많이 생겨날 수는 없을까? 서울과 경기도 등 전철이 닿는 모든 곳에는 전철을 이용하는 수많은 승객들이 있다. 그러나 그 승객들의 불편함을 개선하는 속도는 굉장히 더딘 것 같다. 특히 장애인들에게는 더더욱 더디게 여겨진다. 


 장애인으로서 사는 데에 불편한 것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전철을 타고 내릴 때 경험하는 불편은 정말 중요한 문제다. 정보나 안내가 부족해서 생기는 불편함들은 개선 속도가 느려도 생명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철을 타고 내릴 때에 경험하는 불편은 생명을 담보로 한다. 비장애인들이 한 발 크게 내딛으면 될 때, 이동약자들은 잔뜩 긴장을 하고 힘을 주면서 바퀴를 돌리고 케인으로 틈새를 확인 하면서 조심스럽게 탑승을 해야 한다. 이 틈새를 메꾸고 바꿔주지 않으면 언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누군가 다치고 사고가 난 이후에는 이미 늦다. 정책을 만들고 운영하는 주체들이 늘 먼저 살펴보고 경험한 후 설계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나는 그들에게 휠체어를 타거나 유아차를 밀고 이동약자들과 함께 전철을 이용해 보기를 권해보고 싶다. 20~30cm의 틈새가 얼마나 큰 틈새인지 직접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그 틈새를 꼼꼼하게 메꿔낼 때에, 비로소 전철을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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