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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선미 Nov 01. 2021

독서모임 사람들과 팟캐스트를 만들었다

대불호텔의 북클럽 / 팟캐스트 호스팅, 편집 프로그램, 녹음 장비 팁

팟캐스트를 만들었다. 시작은 단톡방이었다.


예은 "저 선미님이 인스타에 책 올리실 때마다 잘 보고 있어요,,,"

선미 "이렇게 보람될 수가"

예은 "저도 얼마 전에 지구 끝의 온실 받아서 읽으려고 합니당"

선미 "문보영 시인이 새로 낸 일기시대라는 에세이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천재성이 폭발하는 느낌이라 재밌으면서도 질투 나고 근데 좋고 복잡한 마음으로 읽었거든요. 이것도 강추함다"

예은 "헉 그것도 넣어두겠습니다!!!"


예은과 나는 독서 취향이 겹친다. 장류진 작가의 '달까지 가자'라는 신작 얘기가 이어졌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 예은이 다시 단톡방에 카톡을 보냈다.


예은 "진짜 뜬금없는데 말할 곳이 없어서요. 지구 끝의 온실 강추할게요"

예은 "정세랑 작가님과 김초엽 작가님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를 사랑하는 일을 계속 글로 쓰는 게 너무 좋아요 아놔 갑자기 벅차오르네 방금 다 읽어서요"

선미 "아직 단행본으로 안 나온 김초엽 작가님 작품들도 많은 것 같던데, 잡지나 이런 곳에 올라가는 것 있잖아요. 나중엔 다 책으로 엮이겠지만 지금 찾아서 읽어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아여"

선미 "와중에 신예도 좀 발굴하고... 같이 덕질하고... 문학잡지 보기 시작하면 이제 끝난 거야"


김초엽 작가님의 천재성에 대해서 한참 토론했다. 사랑해요 김초엽. 찬사와 주접이 오갔다.


예은 "다음 책은 좀 뒷북이지만 정세랑 작가님 시선으로부터 읽어야겠어요"

선미 "저 방금 그거 추천하려고 했는데 굿잡 베리굿초이스 신간 에세이집도 매우 좋은데요. 여행 가서 읽기 좋아요. 저는 강릉 가서 읽었어요"


이후에는 정세랑 작가님의 전작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집에서 낭독하며 읽은 이야기. 피프티피플, 지구에서 한아뿐 등 정세랑 작가님의 전작들을 추천하다가 '엥 그냥 다 추천합니다' 하며 어리둥절해하기도 했다. 단톡방에 예은의 메시지가 올라오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우리는 리커버에도 진심이었다. 북커버가 어떤 일러스트 작가의 작품인지, 왜 그런 작가들과 콜라보를 해서 날 미치게 하는지... 이야기는 끝도 없었다.


예은 "시선으로부터 하와이 버전도 너무 예쁘던데"

예은 (시선으로부터 하와이 버전 표지 커버)

선미 "헉 미쳤다"

선미 "저는 수신지 작가님이 옥상에서 만나요 표지 그리신 것 보고 이마 팍팍 쳤잖아요"

선미 "내가 산 것보다 예쁜 걸로 또 나와? 그럼 또 사? 또 삼"

예은 "자취생은 책이 늘면 힘든데 어떨 수 없어요"

선미 "마자영 어쩔 수 없어 우리 집에서 제일 큰 가구 아마도 책장임"


집이 작아 하루가 멀다 하고 물건을 내다 버리는 와중에 유일하게 계속 사고 있는 품목은 책이다. 제발 이북으로 읽으면 안 되냐는 동거인의 간청을 책 택배를 받을 때마다 듣고는 있는데, 종이로 된 책의 물성이 좋아 이북에는 잘 손이 안 간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바라보며 책멍을 때리는 것도 힐링 루틴이 되어버렸다. 어제는 책장 앞에 멍하니 앉아 책 등을 바라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는데, 동거인이 그 모습을 보고는 못 볼 꼴을 보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후에 대화는 책 모임에 가고 싶다, 트레바리는 어떻겠냐, 모임에 들어가면 이런 책 읽어보고 싶다로 급 전개되기 시작했다.


선미 "암튼 하... 좋네요... 책 모임 만들어야겠네"

보민 "합시다 고고"

예은 "저 진짜 할래요"

보민 "추석 지나고 킥오프?"

선미 "애자일하게 스프린트는 2주로"


IT 인간들은 어딜 가도 티가 난다. 독서모임을 하면서 킥오프, 회고, 애자일, 스프린트라는 단어를 들먹이는 사람들이 흔하지는 않을 것 같다.


선미 "가끔 책 읽기 귀찮은 주에는 영화도 보고 그르까여 가끔 시집도 하고"

민주 "좋아여~~~~"

예은 "헉 진짜 좋다 저시도진짜좋아해요어디가서많이말못하지만 아... 근래 중에 제일 재밌다 진짜 요즘 맨날 취준만 하다가 갑자기 심장박동수 치솟는 기분"


예은은 흥분했는지 띄어쓰기 기능이 고장 났다.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독서모임 첫 책은 쉽게 정했다. 강화길 작가의 "대불호텔의 유령"이라는 작품을 읽어보고 싶었기 때문에 영업했고 '한국형 여성 스릴러'라는 말에 다들 쉽게 낚였다. '2주 간격으로, 토요일 오후 2시에 보자' 까지도 쉽게 정했다.


북클럽 이름을 짓는 게 어려웠다.


예은 "북적북적 이런 네이밍은 이미 많겠죵"

선미 "Book의 적...?"

예은 "뭔가 공공기관 같기도 하고"

민주, 보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선미 "공공기관 느낌은 이런 거죠. 실력을 높이go 기회는 job고"

H "아 찐이다. 정부 포스터 하나 본 것 같아요"


보다 못한 보민이 랜덤 단어를 뿌려주는 사이트를 들고 왔다. 북클럽 이름이 될 뻔한 후보는 아래와 같다.


토마토 파뿌리 할머니, 아프리카 곶감 천사, 깨소금 기숙사, 그리고...


민주 "토마토 파뿌리 할머니 괜찮은데?"

보민 "깨소금 기숙사도 괜찮은데?"

선미 "오 저는 포크레인 해물탕 콤플렉스 티라노사우르스"

선미 "경찰 콘돔"

보민 "편견이 없는 친구네"

선미 "아줌마 책 잘 읽지?"

All "......생각을 좀 해보고 모입시다"




북클럽 이름은 첫 책 "대불호텔의 유령"에서 따와서 "대불호텔의 북클럽"이 되었다. 두 번째 모임을 할 때까지도 '진짜 이걸로 할 거냐', '정말이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말들이 오갔지만 우리 머릿속에서 이보다 괜찮은 이름이 나올 일은 요원해 보였다. 그리고 예은이 이 이름으로 북클럽 표지를 만들어줬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로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독서모임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유튜브나 팟캐스트 얘기도 나왔다. 이왕 하는 거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을 해두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기록의 방식은 다양했지만(짧은 글로 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가장 간편한 게 오디오 녹음이었다. 디스코드에서 원격으로 만나기 때문에 녹음 봇(Craig)을 이용했다. 오디오 편집은 배워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작년에 데이터리안 웨비나 행사를 한 번 편집해서 팟캐스트로 올려본 적이 있었는데, 덕분에 팟캐스트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배포를 하는 일은 뚝딱뚝딱 진행할 수 있었다.




우리의 방법을 적어보자면 이렇다.


편집: ocenaudio 라는 프로그램을 쓴다. 유튜브를 보고 구간을 선택해 자르는 것만 배웠다. 다른 기능은 거의 쓸 줄 모른다.


마이크: 각자 집에 있는 개인 장비. 에어팟 같은 이어폰으로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슈어사의 MV7이라는 팟캐스트 용으로 나온 마이크를 쓴다. 팟캐스트를 위해서 따로 구매한 것은 아니고, 강의 촬영을 위해 구비해둔 장비를 겸사겸사 쓰는 거다. 개인 이어폰으로 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음질이 좋다. 팟캐스트 전반적으로 봤을 때에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전문 팟캐스터들보다는 음질이 떨어진다. 에피소드 안내에 "음질은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라고 적는다. 실제로도 1화, 2화를 거치면서 멤버들이 좀 더 조용한 장소에서 참석을 한다던지 소소한 노력들을 해주고 있어 음질은 좋아지고 있다.


호스팅: Anchor를 사용한다. 스포티파이에서 만든 팟캐스트 편집, 호스팅, 배포용 앱인데 사용이 간편하다. 이거 말고 다른 호스팅 도구를 알아본 건 아니라서 다른 프로그램과 비교해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배포는 Anchor가 스포티파이까지는 자동으로 해주고, 애플 팟캐스트만 추가 배포를 하고 있다. 앞으로 팟빵 같은 안드로이드 프로그램들에도 배포하게 될까? 지금은 팟캐스트가 온전히 취미라서 잘 모르겠다. 멤버들은 모두 아이폰을 쓰고 있어서 아직 안드로이드 사용자를 위한 배포에는 신경을 안 쓰고 있다.


화상회의 & 녹음녹화: 원래는 디스코드와, 디스코드 안에 있는 Craig 라는 녹음 봇을 이용했는데 이게 음질이나 녹음 품질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녹음 품질 개선을 위해 3회 차부터는 Zoom을 유료 결제해서 사용하고 구독료를 위해 모임비를 걷기로 했다.


모임 주기와 회비: 2주에 한 번이고, 한 번 참여할 때마다 이천 원의 모임비를 모임통장으로 입금한다. 모임비는 Zoom 구독료로 들어갈 예정인데, 만약에 남는다면 나중에 같이 관람할 영화 티켓을 산다던지, 전시회를 간다던지 하는 문화생활비로 쓰고 싶다. 정말 많이 남는다면 출연료를 드리고 누군가를 모시는 데에도 쓰고 싶다. (근데 아마 안 남을 것 같다)




이렇게 만들어진 방송은 아래 링크를 통해 들을 수 있다 :)


총 3화까지 업로드되어있고 각 에피소드 제목은 이렇다. 업로드는 토요일, 격주로 될 예정이다.


1화 - 독서모임은 혼란했고 고양이는 귀여워요 [대불호텔의 유령 - 강화길]

2화 - 뼈 맞은 동학개미와 오징어 게임 feat. 면접 꿀팁 [인문잡지 한편 5호 일]

3화 - ...상처주네? feat. 보민의 풋살 첫 골 [인문잡지 한편 5호 일]


iOS 유저라면 애플 팟캐스트


안드로이드, 웹 유저라면 Anchor




우리들의 이야기를 팟캐스트로 내놓는 데에 처음에는 불안도 있었다. 전문가도 아닌데 이런 작품에 말을 얹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했다. 편집을 직접 하다 보니 검열도 했다. 그런데 이건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고, 완벽하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무엇보다 내가 즐겁기 때문에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니 중심이 잡혔다. 3화 방송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어떤 하나의 주제에 대해 몰입하여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다. 팟캐스트를 하면서 우리가 가장 많이 성장할 것이다. 듣는 이들을 웃기기도, 생각에 잠기게 하기도, 슬프게도 하면서.


모임을 격주로 꾸준히 했을 때 1년에 약 스무 권의 책을 읽게 된다. 멤버들과 소설, 에세이, 시, 논문, 영화, 전시, 공연 등 다양한 경험을 같이하고 싶다. 긴 호흡으로 함께 하고 싶다. (마지막 문장은 멤버들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했으나 남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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