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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씨 Nov 27. 2023

군인의 자격, 인간의 자격

[영화 리뷰]서울의 봄(2023)

대한민국을 뒤흔든 10월 26일 이후, 국민들은 민주화에 대한 희망을 갖는다. 하지만 보안사령관이자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광'(황정민 분)은 권력에 대한 야심을 드러낸다. '전두광'과 '노태건'(박해준 분)을 중심으로 한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의 권력욕을 막으려는 계엄사령관 '정상호'(이성민 분)는 강직한 참군인 '이태신'(정우성 분)을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한다. 동시에 '정상호'는 온갖 월권과 전횡을 일삼는 '전두광'을 동해경비사령부에, '노태건'을 55향토보병사단으로 좌천시킴으로써 '하나회'를 무력화시키려 한다.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전두광'은 '하나회' 멤버들과 함께 계엄사령관이자 자신의 상관인 '정상호'를 구속하는 군사반란을 계획하고 '이태신'과 '공수혁'(정만식 분) 육군특수전사령관, 김준엽(김성균 분) 육군본부 헌병감은 '전두광'과 '하나회'의 쿠데타를 막으려고 한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말씀드려야겠다. 이 글은 영화 <서울의 봄>의 리뷰를 가장한 나의 수다이다. 현재 극장에서 절찬리에 상영 중인 영화이기 때문에 가급적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은 최대한 배제하고 그저 나의 사담 정도만 적어볼까 하지만 혹여나 영화 내용과 관련된 내용이 있을 수 있으니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으신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시기 바란다.






영화 <서울의 봄> 메인 포스터



나는 전부터 궁금했다. 왜 10.26을 직, 간접적으로 다룬 영화는 많은데 12.12 쿠데타를 다룬 영화는 없을까?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가치판단을 떠나서 12.12 쿠데타의 전개과정은 그 자체로 긴박하고 박진감 넘치는 좋은 이야깃거리일 텐데 말이다. 그러한 내 생각에 긍정이라도 하듯이 좋은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바로 김성수 감독의 영화 <서울의 봄>이다. 


영화 제목은 <서울의 봄>이지만 실제 영화의 내용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수괴로 한 '하나회'가 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 12.12 군사반란이다. 상술했다시피 전두환 일당이 권력을 차지한 사건은 그 자체로 충분히 흥미진진한, 좋은 이야깃거리이다. 하지만 역사 특히 한국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 만한 이야기이다. 역사적 사실을 극화한 영화들은 대부분 같은 딜레마를 겪는다. 사실을 그대로 영화화하면 극적 재미가 없어지고 허구적 사실을 지나치게 많이 넣으면 고증에 문제가 생긴다는 딜레마 말이다. 영화 <서울의 봄>은 그러한 딜레마를 아주 훌륭히 극복했다. 인물의 이름 정도를 제외하면 역사적 사실을 거의 그대로 스크린에 옮겼으면서도 동시에 극적인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실제 사건이 갖는 재미의 덕도 있겠지만 감독의 연출, 배우들의 연기 등 영화의 모든 면에서 수작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광'에게 진압에 실패한 '이태신'은 일갈한다. 

넌 대한민국 군인으로도, 인간으로도... 자격이 없어.


'이태신'의 입에서 이 대사가 나올 때 나는 전율했다. 실제 전두환에게 내가 오래 전부터 하고 싶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전두환은 12.12 군사반란을 성공하고 민주화를 바라는 시민들의 열망을 짓밟더니 끝내 이듬해 5월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들을 학살하고 권력을 잡는다. 상관의 지시와 명령을 불이행하고 국가 시스템을 뒤엎은 반란을 저지른 군인은 군인으로서 자격이 없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인간은 인간으로서 자격이 없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전두환 같은 인간이 천수를 누리고 있던 몇 년 전, 그것에 대해 열을 내며 분노하던 나에게 독실한 기독교인인 나의 어머니는 말했다. 공의의 하나님이 다 심판하실 테니 너무 그리 화내지 말라고. 그가 죽어버린 지금 당연히 나는 그가 이승에서처럼 저세상에서도 평안히 지내지 않기를 바란다.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고통을 당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는 그의 죽음이 달갑지만은 않다. 내 어머니의 말처럼 '공의의 하나님'이 실재하고 역사한다고 해도 그가 저지른 행위에 대하여 그가 살아있을 적에 제대로 된 단죄와 처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처분과는 별개로 인간의 법과 제도에 의해 제대로 대가를 치렀어야 했다. 그에 의해 희생당한 수많은 영령들과 살아남아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는 진심어린 사죄나 용서는 구하지도 않고 훌쩍 다른 세계로 가 버렸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많은 이들에게 불쾌한 찝찝함을 남긴다. 마지막 '전두광'의 웃음이 그 불쾌함의 절정일 것이다. 쿠데타와 5.18민주화운동만 빼면 전두환이 정치를 잘했다고 공적인 자리에서 말한 자가 대통령으로 있는 2023년의 대한민국이기에 더더욱...



영화 <서울의 봄> 인터내셔널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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