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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보씨 Feb 07. 2024

삶의 다른 이름, 외로움

외로움에 지친 이의 넋두리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정호승, <수선화에게>






정호승 시인은 시 <수선화에게>에서 모든 존재는 외롭다고 말한다. 인간도, 도요새도, 산 그림자도, 종소리도, 가끔은 하나님도 외롭다고. 인간은 태생적으로 외로움을 타고난 존재이다. 누구나 사랑하는 가족, 연인 혹은 친구가 있어도 때때로 고독을 느낀다. 인간이 외로움을 느끼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 세상 어디에도 내 감정 혹은 생각을 완벽하게 공감해주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울고 있다면 우리는 그가 슬퍼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것인지 알 방법이 우리에게는 없다. 누구도 타인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기에. 단지 내가 슬퍼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기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보며 내 과거 경험으로 그의 감정을 유추할 뿐이다. 그것은 온전한 의미의 공감이 아니다. 






내 감정, 내 기분에 상대방이 공감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이가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상술했다시피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이 신이 아닌 다음에야 타자의 감정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감하기란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실망한다. 더욱이 그가 나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실망감은 배가된다. 나와 많은 것을 공유하는 사람일수록 나를 더 잘 알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세상살이이기에.






나는 스스로 고독을 즐기는 편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다. 한때는 내가 정말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혼자가 너무 편하고 혼자서 하는 것들이 즐거웠으니. 게다가 주위의 인간관계에 실망하여 많은 사람들을 정리했기에 더욱 더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졌다. 허나 무슨 조화일까, 외로움이 점점 견디기 힘들어지니.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이 더는 즐겁지 않고 누군가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싶고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내가 점점 나이를 먹고 늙어가기 때문일까.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맑은 옥돌에 불이 달어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 김영랑, <내 마음을 아실 이>






김영랑 시인의 한탄처럼 결국 내 마음을 나처럼 알아줄 이는 세상에 없으니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감정에 공감하지 못히면 더 큰 고독을 느끼게 된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고독한 존재라는 사실을 그냥 받아들이고 외로움을 즐기는 것이 고독에 견디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다만 이성적으로 아는 것과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에 또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가 생기는 것이니. 역시나 근원적인 문제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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