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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영 Nov 13. 2022

한여름 밤, 한강에서의 픽업 게임.

미엔의 시작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농구나 축구, 야구를 하는 남자들의 세계가 부러웠다. 모두가 에너지 넘치는 고등학교 시절, 점심시간에 잠깐 농구하고 돌아온 남자애들의 도파민이 폭발하는 모습이 부럽고 궁금했다. 저건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대학교 때 과선배가 야구부 매니저를 제안해서 음료수를 한두 번 사들고 갔지만 지루하게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도무지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 나도 필드에서 뛰고 땀 흘리고, 함께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었다. 농구나 탁구 같은 체육 수업을 듣고, 간혹 친구들이랑 포켓볼이나 탁구장을 갔지만, 무언가 풀리지 않는 갈증이 내 안에는 계속 존재했다.

“한 여름밤의 한강에서 모르는 사람들끼리 픽업 게임 하고, 신나게 농구하고, 흠뻑 젖은 땀 식히며 시원하게 맥주 마시고 싶어.”



미엔 첫 모임 페이스북 이벤트 공지



미엔은 땀흘리며 운동하는 팀 스포츠를 10대때부터 동경하던 나의 생각, 그 생각에 동의해준 몇 명의 지인, 그리고 그 자리에서 간단한 몸풀기 스트레칭을 시연해주기로 한 농구 전공자 감동님*이 없었으면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5명 정도 모이자 나는 신나서 페이스북에 공개 이벤트로 농구할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다.


오프라인에서는 실력 부재로 하지 못하지만 온라인에서는 픽업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이벤트에 이름을 설정해야 해서 나는 약 10분 정도 고민 끝에 ’미녀들의 NBA’라는 이름을 지었다. 8명 정도 더 모였고, 그렇게 우리는 10명이 훌쩍 넘는 인원으로 모여서 한강에서 게임을 하게 되었다. 이벤트 전에 신나서 팀을 구분하는 옷도 만들었다. 초록색과 파란색 티셔츠 바탕에 MINYEOS' NBA를 고민없이 아주 크게 - 대문짝만하게 삽입했다. 아, 당시 빈브라더스에서 사용하던 BEBAS NEUE 폰트 그대로. ㅎㅎ


*감동님 = 감독 + 감동적이다의 줄임말로, 수년 간 미엔과 함께 해준 츤데레 감독님 지칭하는 합성어.
**농구 픽업 게임은 농구를 하고 싶어하는 개인 또는 지인들이 삼삼오오 해당 장소에 모여 랜덤하게 팀을 구성한 후 농구게임을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미엔의 첫 비공식 유니폼의 탄생 현장!


사실 첫 모임은 농구라고 부르기에도, 게임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무언가였다. 몸은 그래도 다행히 잘 풀고 시작한 농구는 한 번에 3명씩 공을 잡고 에워싸고 같이 걸어 다니는 워킹이 난무한 하나의 집단극(?)에 가까웠다. 그래도 우리는 땀이 났고, 한강의 여름밤은 더없이 시원했으며, 운동 후에 마시는 맥주는 끝내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공간에 모인 우리는 그 행위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다. 팀을 나누고, 팀을 위해 뛰고, 땀 흘리고 공을 뺏는 그 행위.


하루짜리 노는 이벤트일 줄 알았던 그 농구 이벤트는 그 뒤로 바로 정기화되었으며, 미엔은 어느덧 매주 농구를 하는 모임이 되었다. 내가 지었던 미녀들의 NBA는 팀 이름으로 부르기 다소 민망한 이름이었지만, 미엔(MIEN)으로 짧게 줄여 무사히 살아남았다.


2013년 8월 13일. 미엔의 첫 모임. 파란색과 초록색의 조합은 어디서 나온 것이었을까...


매주 일요일 저녁 한강에서 농구하던 모임은 어느덧 팀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고, 실내 농구장들을 대관하기 시작했다. 2시간이라는 소중한 시간 동안에  체계적으로 체력 훈련과 기본기 - 드리블, 패스, 레이업 -  훈련하는 시간들을 가졌고 우리는 어느덧  이상 3명이서  공에 붙어 다니지 않고 거리를 유지할  있었다. ‘공을 돌릴 알게 되었고, 레이업도 가끔   있게 되었으며, 3 슛에 능한 자들도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느덧  한강 집단극로 시작한 모임이 이제 9 차를 맞이해간다.

미엔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미엔을 단순히 농구팀으로, 아니면 동아리로 정의하기엔 너무 아쉬움이 많다. 미엔은 미엔을 경험한 멤버들에게 하나의 ‘정체성'이다. 미엔은 어쩌면 학교나 회사, 내가 선택한 혹은 선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속하게  수많은 그룹  가장 나를  드러내주는 - (사실은 내가 가장 드러내고 싶은) - 키워드이다.

여자들이 모여 농구를 꾸준히 하는  생각보다 우리 모두의 삶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건 비단 ‘농구'라는 모임의 목적 자체뿐만 아니라 미엔 팀으로 모인 개개인들의 조합 덕분이다. 미엔에서는 정말 특이하게도 (대부분이 농구 실력이 높지 않아서였겠지만) 경쟁이 없었으며, 시샘도 없었고, 오로지 응원과 찬사 그리고 배려만 있었다. 누군가 나보다 훨씬 잘해도 그를 진심으로 응원할  있었다. 농구를 못해도 욕먹지 않고 누군가 다가와 어떤 훈련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미엔은 경쟁적인 한국 사회에서 나름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멤버들이 처음으로 맞이하는 완전한 컴포트 (Comfort Zone)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대 후반 즈음 한강 농구를 경험했던 미엔 1세대는 커리어적으로도 서로 영향을 많이 미쳤다. 창업이 흔하지 않던 시절, 창업을 한 팀원을 보고 좀 더 용기를 얻게 되었고, 해외로 떠나는 친구들을 보며 더 해외 생활을 잘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전직을 해도, 나에 대해서 새롭게 계속 알아가도 그를 응원해 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의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도 받아주는 팀원들이 있다는 건, 새로운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삶의 중요한 지지대 역할을 하였다.


이것은 미엔, 그리고 미엔을 통해 변화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Written By 서영




Written By 윤서영
등번호 1번, 미엔의 (ex) 파워포워드.

30대까지는 파워 포워드적인 삶을, 40대부터는 가드같은 삶을 살길 꿈꿉니다. 현재는 테니스와 필라테스를 소소(?)하게 합니다. 커피 회사를 키워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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