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미엔 멤버 인터뷰
미엔은 '13년도에 원타임 이벤트로 시작하여 여차저차 지금까지 이어온 팀입니다. 이제 벌써 내년이면 10년차를 바라보고 있네요..! 그래서인지 초기에 했던 멤버들 중에는 결혼과 육아, 이민, 유학등으로 농구를 쉬고 있는 그녀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그녀들을 ‘올드미엔(Old-Mien)'이라고 부릅니다.
그녀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코트의 두근거림을 뒤로한 채, 어디에 열정을 쏟고 있을까요? 그 궁금증을 해소하는 첫 타자로 미엔 최초의 센터, 김다인님을 찾았습니다.
인터뷰어(서영): 자기소개 해주세요.
인터뷰이(다인): 미엔 9번이었던 김다인입니다.
서영. 농구하기 전에도 원래 운동을 많이 하는 편이었나요?
다인. 아니요. 20대 때에는 또래 여자들이 많이 시도하는 PT, 요가, 필라테스를 떠돌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어느 하나에 정착하지 못했죠. 맞는 걸 못 찾은 것 같아요. 혼자 하기도 하고, 비용도 많이 들기도 하고. 어디 여행 다녀오면 운동 흐름이 끊기기도 했어요. 그래서 꾸준히 한 운동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아, 가장 오래 한 운동은 등산이에요. 어렸을 적에 온 가족이 매일 오전에 산에 올랐거든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타의로 4-5년간 아침마다 산을 탔어요.
서영. 많은 사람들이 언니의 '감동님, 저 살찌워서 올게요.' (센터 포지션은 힘, 방어력이 중요해서 주로 키가 크고 덩치가 클수록 유리하다.)라는 코멘트를 기억하고 있어요. 외모보다는 농구를 선택하는 그 의지에 다들 놀랐죠. 그만큼 열정적이었던 언니의 플레이. 농구에 어떻게 빠지시게 된 거예요?
다인. 미엔의 첫 한강 번개는 초대받았을 때엔 단순히 재밌을 것 같아서 나가게 되었죠. 그때까지 농구라는 건 중학교 때 농구 골대를 향해 몇 개씩 던져본 경험이 거의 전부였어요. 한 여름밤에 농구하고 끝나고 맥주 한 잔. 생각만 해도 근사했거든요!
그날 농구는 솔직하게 말하면 난장판이었죠. 개떼처럼 몰려다니고 소리 막 꽥꽤 지르고. 공 하나에 5명씩 붙어서 뒤엉켜있었어요. 그래도 너무 재밌었어요! 공놀이라는 게 재밌고, 팀 플레이를 경험할 수 있어서 신이 났었죠. 다 같이 끝나고 맥주 마신 그 여름밤의 분위기도 좋았고요. 그때 했던 거랑 물론 팀이 시작되고 나서 하게 된 거랑은 완전히 달랐어요. 첫날 했던 걸 농구라고 부르기는 어렵죠. 공놀이를 해봤다, 정도랄까?
서영. 농구를 시작하고 비로소 ‘농구를 하게 된' 때까지 어느정도 연습기간이 필요했나요?
다인. 사실 아직도 공놀이에서 완전히 농구로 갔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웃음) 농구를 하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스킬 세트들이 10가지 정도 있다면, 그중에 2-3개를 어느 정도 잘 하는데 1년이 넘게 걸린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드리블이 정말 오래 걸렸어요. 저는 왼손잡이인데 오른손 드리블을 하기까지 참 시간이 많이 필요했어요. 아직도 오른손 드리블, 양손 드리블은 잘 못해요. 20대 후반에 드리블을 연습하려고 하니, 마땅히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어요. 출근 전에 공터에 가서 하고, 혼자 살 때에는 빌라의 주차장에 가서 하고. 공 튀길 때 소리가 많이 나니까 편하게 하지는 못했어요.
드리블은 권투선수가 줄넘기하는 것처럼 먼가 성취가 바로 보이지는 않는데 계속해서 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스킬이잖아요? 감동님이 드리블은 계단식으로 성장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드리블에 꽂혀서 열심히 했던 수 개월이 저에겐 첫번째 계단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겠지만 예전에 미엔 연습할 때에는 2시간 중 20-30분은 꼭 체력훈련에 시간을 썼어요. 감동님이 오리걸음도 시키고, 사이드 스텝도 시키고. 물론 처음부터 잘하는 일지*나 슬아같은 친구들도 있었지만 오리걸음 3-4개 하면 주저앉는 저나 다른 친구들도 꾸준히 1-2년 하니까 늘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계단식 성장에 대해서 뿌듯함을 느낀 것 같아요.
(*일지: 20대 초반에 미엔에 합류하여 오랜시간동안 막내이자 에이스를 지키던 일지는 첫 점프를 보고 감동님이 한국인임을 의심할 정도의 피지컬과 탄탄한 기본기를 지닌 미엔의 선수이다.)
체력훈련은 팀 스포츠가 아니었다면 절대 안 했을 거예요. 성취도 눈에 안보이고, 지루하잖아요! 팀이 다 같이 하니까 한 거죠.
서영. 농구가 팀 스포츠라는 걸 많이 느끼셨나요?
다인. 항상 느꼈죠. 제 마음속에서는 일지나 슬아처럼 잘하고 싶은데 그렇게 못하지만, 그래도 팀에 쓸모가 있었어요. 우리 팀 5명이 모두 일지처럼 잘하면 좋겠지만, 제가 부족하지만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이 항상 있었어요. 5분을 뛰어도, 패스 한번 잘 되어 공격이 잘 이루어져도 충분히 기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죠. 그리고 그 모습에 잘했다고 해주는 팀원들도 많고. 농구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모두 느낄 수 있는 포인트인 것 같아요.
보통 나이가 들면, 자기가 못하는 건 안 하려고 하잖아요. 남들 앞에서 못하는 모습은 더욱더 안 보여주려고 하고. 그래서 금방 포기하게 되는데, 농구를 할 때엔 다른 사람들한테 내가 잘 못하는 걸 보여줘도 괜찮다는 걸 배웠어요.
농구에서 제가 느꼈던 것들이 회사생활이나 팀 생활의 관점으로 이어지기도 했어요. 내가 모든걸 다 잘할 필요는 없구나. 내가 A는 못해도, B로 기여할 수 있구나.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영향을 주었죠. 누구는 지금은 이 영역이 약하지만 다른 영역에서 잠재성이 보이는구나. 창업을 하고 팀을 꾸려가며 리드해가는 관점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어요.
서영. 그럼 현재 본인의 정체성에 농구가 어느정도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다인. 숫자로 비중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정말 많은 영향을 주었어요. 저는 농구를 정말 정말 잘하고 싶었거든요. 현실과 제 이상의 갭이 너무 컸어요. 잘하고 싶었던 만큼 제가 하는 모습을 계속 다시 리플레이해서 봤어요. 연습할 때 녹화를 많이 했었거든요. 아, 이날은 정말 잘했고 내 발이 깃털처럼 가벼웠던 것 같은데 화면 속 저는 전혀 빠르지 않았어요. 그걸 볼 때의 좌절감은 참. (웃음) 녹화 영상을 쭉 보는 건 제가 상상한 제 움직임이랑, 실제랑 많이 달라서 마음이 아팠지만 복기하는 관점을 그때 처음 배운 것 같아요. 저희가 일상생활에서 무언가를 객관적으로 리플레이해 볼 일이 거의 없잖아요? 농구에서 스스로의 플레이를 돌아본 것 처럼 일상, 회사 생활에서도 스스로의 행동과 주변에 미쳤을 영향을 리플레이해서 바라보게 된 것 같아요.
아, 그리고 농구하기 전까지는 제가 무언가를 갈망하고 충분히 열심히 한다면 다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농구를 하고나서는 깨달았죠. 열심히 해도 안되는 건 있다는걸. 겸손해지게 된 것 같아요. (웃음)
서영. 농구를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서 새롭게 깨달은 점이 있나요?
다인. 제가 생각보다 함께하는 팀의 반응에 민감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팀원들이 함께 즐거워하고, 제가 한 패스나 리바운드로 기뻐하고, 저랑 한 팀이어서 좋다고 표현해 주는 것들이 큰 에너지로 다가오더라고요. 그전까지는 외부의 인풋으로 동기부여에 영향을 받는 게 나약하다고 생각하고, 경계했었거든요. 하지만 제가 그런 사람인 걸 알고 회사에서도 서로서로 그런 표현을 많이 나누려는 자리를 만들게 되었어요.
아, 두 번째로는 내가 이렇게 무언갈 못해도 오래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웃음) 인내심을 갖고 쭉 하다 보니 잠재력이 몇 년 뒤에 나올 수도 있다는 걸 농구를 하면서 경험하게 되었죠. 전 원래도 성격이 급한 편이고, 첫 직장이었던 컨설팅에서는 일주일 정도 팀원이랑 일을 해보고 바로 평가한다든지, 아니면 직관으로 빠르게 판단을 하고 백업하는 자료들을 찾는 일들을 해왔었거든요. 농구를 하면서 꾸준히 매달리며 조금씩 실력이 늘어나는 나와 다른 친구들을 보며 오랜 호흡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걸 스스로 체감하게 된 것 같아요.
만일 농구를 안 했다면 이런 장기적인 관점이 쉽게 생기지 않았을 것 같아요. 사업을 할 때에도 중간 과정에서 훨씬 더 빠르게 닦달하고 더 많이 지쳤을 것 같아요. 예전에 루트 임팩트 다닐 때 사회적 기업을 하는 대표님들을 많이 만났었잖아요? 그때 스냅샷으로 볼 때 잘 되시는 분도 있었고, 지지부진해 보이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다들 이구동성으로 버티는 게 이기는 거다,라고 말씀을 주셨었는데, 사업을 해보니 정말 버티는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사업은 20명이 순식간에 2명으로 줄기도 하고, 이유를 알 수 없이 성장하기도 하고. 컨트롤할 수 없는 외부 변수들 사이에서 포기하지 않고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어야 기회가 찾아오거든요. 시간이 조금은 오래 걸릴 수 있어도 계속 하다보면 내가 원하는 최종 목표에 조금씩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걸 미엔을 통해서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서영. 육아와 사업을 병행하고 있는 지금은 어떤 운동을 하세요?
다인. 지금 둘째를 갓 출산했는데, 임신하기 전까지는 부부 필라테스를 6개월 정도 했었어요. 지금은 산책가거나 산에가는 것 외에는 운동을 못하고 있네요.
서영. 앞으로 농구 없이 삶을 산다면, 대체할 만한 다른 요소를 어떻게 찾아나갈 것인가요?
다인. 이미 농구를 대체하는 요소는 찾았어요. (웃음)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과정이 끊임없는 좌절과 자기 효능을 느끼게 하거든요. 오랜기간 공을 들여도 한순간에 결과가 나오지 않지만 - 아이가 커나가는 과정에서 너무 많이 배우고 있죠. 물론 임신을 안했더라면 전 끝끝내 지금도 농구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다시 태어난다면, 정말 정말 농구를 잘 하고 싶어요.
미엔의 센터였던 9번 김다인님은 현재 농가에서 직접 꽃을 배송해주는 어니스트 플라워(Honest Flower)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설립된 지 불과 3년 만에 어니스트 플라워는 4만 여명의 회원들에게 신선한 꽃 경험을 선사해왔습니다. 그녀의 포지션은 방어 중심의 센터였지만, 실로 그녀의 사업수완은 누구보다도 민첩한 가드에 가깝습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을 육아와 함께 병행해온 것을 알면 더욱 놀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