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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by 윤서영

오랜만에 학교에 갔다. 지난 9월 말, 집에서 커피를 내려마시는 홈 브루어들 대상으로 진행한 <Bb Home Brewers Cup>의 우승자가 서울대학교 커피 동아리 회원이어서, 유튜브 촬영을 핑계로 커피 동아리 회원들을 만나고 왔다. 지난주 점점 건조해지는 날씨와, 급작스레 취소되는 일정으로 점점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학교에 가는 금요일 오전에는 눈이 번쩍번쩍 떠졌다.

DSC06076.jpg 베로와 ㅅ샷

가을을 완연하게 품고 있는 학교는 무척 아름다웠다. 내가 꿈꾸는 산 뷰를 이렇게 가득 머금은 곳이었는데, 왜 다닐 때에는 계절을 더 즐기지 못했을까. (그때는 산의 맛을 몰랐던 것 같기도..) 일부러 차를 안 갖고 대중교통으로 이동했는데, 정문에서 만나 학관까지 걸어가는 그 풍경의 잔향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다녀온 날 밤, 자기 전에 대학생들이 '캠퍼스'라는 공간에서 20대 초반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느끼게 되었다. 수직적이기 그지없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드넓은 공용 정원과, 수평적인 건물들 여러 동을 걸어서 이동하여 생활할 수 있는 곳. 졸업하고 땅에서 더 멀리, 엘리베이터에 의존하여 이동하고 하루에 8시간씩 고층에서 일한다는 게 예전에는 멋있어 보였지만, 지금은 인간의 본성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감사하게 만날 수 있었던 23학번, 24학번 친구들과 아주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무한한 잠재성을 지니고 있는 그들을 보니 부럽기 그지없었다. 그 시절의 나와 친구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나는 식사를 같이 하게 된 친구에게 교환학생 생각은 있는지 물어보고, 바이브 코딩에 관심을 가지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친구는 크게 와닿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ㅜㅜ 나의 꼰대토크가 될뻔한 이야기도 거기서 멈추길 다행. 그 시절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다시 20년 전 나를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다.


1. 더 많은 모험을 해도 돼.

네가 생각하는 모험의 범위는 모두 리스크가 큰 모험이 아니야. 너는 젊고 잃을 게 없고, 무엇이든 경험 자산으로 쌓이는 시기야.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하지 않는 것이라고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어. 친구들이 하지 않는 것일수록, 너 고유의 특질로 하게 되는 일일 거야. 너의 선택을 더 믿어도 돼.


2. 더 다양한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해.

지금 생각해도, 연극 중앙 동아리를 한 건 정말 잘한 일이야. 다른 전공의 사람들, 다른 배경의 사람들을 만나. 그리고 더 깊은 대화를 했으면 좋겠어. 같이 하는 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들. 네가 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기회야. 너는 결국 비슷한 생각을 하고 기질이 비슷한 사람들을 평생 옆에 두게 될 거야. 학교에서는 더 다양한 사람들을 곁에 둘 수 있어.


3. 혼자만의 시간을 더 즐겨봐.

학교는 혼자 있기에도 정말 멋진 공간이야. 혼자 다니는 게 뻘쭘하고 쑥스러울 수 있지만 학교만큼 혼자 있기 멋진 공간도 없어. 네가 혼자 다니는 걸 지켜보는 사람도 사실 아무도 없단다. 혼자만의 시간을 조금 더 만들고, 즐기고, 사유의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 혼자서 듣는 수업, 혼자서 들어간 음감실이나 DVD 감상실에서 더 많은 인풋을 느껴봐. 혼자서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생각들을 더 키웠으면 좋겠어. 고독을 받아들이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어. 그러면 앞으로 20대 내내 있을 불안정한 감정의 기복들을 혼자서도 조금 잘 견디는 힘을 길러낼 수 있지 않을까.


4. 해외에서의 경험을 꼭 만들어.

해외에서 수학하는 경험을 갖도록 해. 실제로 어느 정도 원하고 시도도 했지만 환경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지. 더 적극적으로 다녀오도록 해. 성인이 되어서 느끼는 글로벌 감각은 나중에 자연스레 너의 시야를 확장시켜 줄 거야.


5. 과외가 아닌 아르바이트를 해봐.

몸으로 하는 일을 해보아. 하루에도 수많은 랜덤 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해봐. 서비스직을 경험해 봐. 나중에 네가 하는 많은 일들에 도움이 될 거야. 네가 얼마나 일머리가 좋은지 나쁜지 한번 판단받아볼 좋은 기회야.


6. 구기 스포츠를 즐겨.

체육 수업을 띄엄띄엄 즐겼지만, 꾸준하게 한 건 없었지. 구기 종목을 즐길 수 있는 건 30대 초반 정도까지인 것 같아. 테니스, 농구, 축구 온갖 구기 종목을 들어봐. 그리고 여자 운동부에 가입해. 없다면 네가 만들어! 만약에 만든다면 너는 그걸 평생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로 여기게 될 거야. 학교의 인프라는 졸업 후에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비싼 레슨비 없이, 비싼 대여비 없이 즐기는 팀 스포츠를 꼭 학교에서 즐겨. 너의 인생에 구기 생활을 연장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7. 길을 찾는 과정은 끝나지 않아.

너는 언제나 마음속에 '이것이 최선일까?'라는 생각을 품고 있어. 그래서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감을 느껴도, 어딘가 구멍이 뚫려 있는 것 같지. 그 구멍을 메우느라 에너지를 많이 쓰게 돼. 더 많은 경험에 목말라하고,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기회비용을 따지게 되지. 하지만 길을 찾는 과정은 끝나지 않아. 단기적인 목표는 큰 의미가 없어. 너를 알아가고, 너와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것에 의미를 두어. 어떤 회사를 택하느냐, 어떤 직무를 택하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 네가 견딜 수 있는 것과 견딜 수 없는 것을 알아가는데 더 주안점을 두어. 너에 대해서 배워가는 과정에 감사함을 느끼도록 해. 선택은 영원히 끝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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