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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안에서 책임진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결과가 좋지 않으면 분해해라."

by 윤서영

이번 주 내내 책임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조직 안에서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다 보면, 목표한 것만큼 성과가 날 때도 있고 그러지 못할 때도 많다. 충분했다고 생각했지만 무언가를 고려하지 못한, 혹은 놓쳐버린 프로젝트의 실패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책임은 누구의 몫이고, 책임을 지는 모습은 무엇인가?


일에서 책임을 진다고 우리가 이야기할 때에 흔히 떠오르는 클리셰는 '책임지고 물러나다' 같은 문장이다. 최근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기는 김 부장>에서 류승용의 팀원(과장)은 기가망이 깔려있지 않은 지역에 기가망 영업 제안을 진행해도 되는지 물어본다. 껄끄러워하며 제안서를 수정하고 싶어 했던 과장에게, 상사(상무)와 대화 중이어서 집중하지 못한 김 부장은 "그냥 해"라고 이야기를 하고, 팀원이었던 과장은 그 상황을 녹음한다. 본 녹음은 이후 자신의 책임 면피를 위하여 확실하게 사용한다. 본 지시는 이후에 IT 유튜버의 폭로로 큰 이슈를 만들게 되고, 김 부장의 영업팀 전체는 위기에 빠지게 된다. 김 부장은 유튜버에게의 대응에 집중하느라, 본인들이 수주했던 관공서에 사과하러 가는 걸 뒷전으로 하고, 관공서의 직원들은 팀원들에게 소리 지른다. "책임자는 어디 가고, 너희들만 온 거야!" 그 장면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연령대나 직급으로 정해지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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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장은 이후 아산 공장의 안전 관리자로 발령을 받게 되고, 회사에서 곧 나오는 수순을 밟는다. 하지만 그것은 25년 차 대기업 부장의 이야기. 이런 형태의 책임 말고 보다 일상적인 책임에 대해서 우리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작금의 시대에서 누구나 프로젝트의 오너가 될 수 있고 목표를 설정하고 실행해갈 수 있다. 일상적인 성과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좋은 책임을 지는 팀장, 나아가 팀원의 모습은 무엇일까? 에 대해 생각하던 이번 주, 헤라 TV의 PD 한다혜 기획자가 쓴 "되는 기획"에서 힌트가 되는 구절들을 우연히 찾게 되었다.


선배가 신입 PD들을 모아놓고 직무 강의를 해준 적이 있습니다. 선배가 이것만은 꼭 명심하라며 강조한 말이 있어요.

"결과가 좋지 않으면 분해해라. 설령 분하지 않더라도, 분한 척이라도 해라."

기획이 기대한 만큼 성과를 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성과가 나기보다 안 날 때가 더 많죠. 선배는 생방송이 예상만큼 결실을 맺지 못하면 관계자들과 간단히 사후 미팅을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누구 하나라도 "뭐, 이 정도면 괜찮겠죠"라는 태도를 보이면 그 팀은 무어진다는 거예요. 잘 안된 날일 수록 다 같이 속상해하고, 분통을 터뜨리고, 원인을 캐묻고, 감정을 공유할 줄 알아야 비로소 '우리'가 된다고요.

- <되는 기획>, '같은 곳을 보게 하는 일' 챕터 중 (100p)

기획자의 진짜 실력은 완벽한 계획보다 실수를 수습하는 방식에 더 많이 담긴다는 걸 배웠어요. 완벽하지 않은 날의 책임이 준 선물이었습니다. 디렉터로서, 자기 이름을 걸고 만드는 사람으로서 완벽한 계획보다 중요한 건, 실수 뒤에도 손을 놓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려는 태도였습니다.

선택은 작은 근육과 같습니다. 쓰지 않으면 무뎌지고, 쓸수록 단단해져요. 짧게 고민하고, 제대로 선택하고, 후회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해 실행하는 방식으로 결정하는 능력을 단력시켜야 합니다. 일을 잘한다는 건 더 나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기보다는, 더 빠른 감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뜻에 가까워요. 정답은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보입니다.

- <되는 기획>, '맛도 모르는 콘텐츠 기획자의 빠른 선택에 관하여', (68p)


책임을 지는 태도의 첫 번째 단계는 성과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입으로 공유하는 것이다. 사실 성과의 결과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프로젝트가 아니라면 누구든 비슷하게 이미 결과를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로 보았을 때 이 프로젝트는 실패다,라고 인정하고 협업 팀들에게는 죄송함을 표한다. 더 가까운 팀원들과는 다 함께 분함을 표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다. 왜 이렇게 되는지, 공분을 안주로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럴 때 주의할 것 역시 감정에 휩싸여 객관성을 잃는 것. [나/팀이 인지하고 준비할 수 있었지만 놓친 것]과, [우리가 처음이기 때문에 차마 알 수는 없었을 것들], [천재지변 성격의 무언가] 등등의 요인들을 각 레벨단위로 나누어서 살펴보는 게 좋겠다. 핑계나 변명거리를 만드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 대표적인 식은땀 나는 실패로는 공인과 진행했던 네이버 쇼핑라이브가 있다. 우리 팀은 쇼핑 라이브를 거의 5년째 자체적으로 많이 해왔었고, 하는 데 있어서 큰 부담은 없었다. 스마트스토어의 매출 규모와 비슷한 수준의 성과를 꾸준히 내왔었는데, 성장하지는 않고 있는 정체 구간을 몇 년 동안 보였다. 우리보다 먼저 해당 공인과 쇼핑라이브를 진행해 본 동종업계의 친한 브랜드에서 진행해 보는 걸 추천해 주었고, 그들의 매출 규모를 레퍼런스로 우리의 쇼핑 라이브 매출 목표를 잡게 되었다. 네이버 공식 채널에서의 신규 노출과, 우리도 자사 채널에서 평소보다 힘준 제품 기획 구조로 충분히 목표 매출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판교의 먼 사옥에 긴장감 없이 도착했다. 필요한 세팅들을 돕고, 진행 호스트에게 살가운 인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체크하고 싶은 것들을 추가했다.


하지만 라이브가 진행되는 1시간은 절망적이었다. 외부와 진행하는 쇼핑 라이브고 공인과 함께 진행했어야 했기 때문에 제작비가 어느 정도 필요했었는데, 1시간 라이브를 진행하는 동안 거의 제작비에 가까운 매출이 나왔다. 라이브가 끝난 직후, 슬랙으로 로스터리에게 상황을 알렸다. 예상 매출 대비 저조한 매출이 나와서, 익일의 출고량에 대한 가늠을 잡게 하고 아쉬움과 죄송함을 표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처음에는 분함을, 이후에는 우리가 무엇을 놓쳤는지를 계속해서 찾는 밤이 이어졌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우리는 자체 쇼핑 라이브는 많이 진행해 왔었지만 대규모 인원이 시청하고 구매하는 라이브에 대한 스터디는 미흡했다. 네이버 채널이나 MD의 힘을 더 활용하는 방법, 처음 보는 신규 고객들이 살만한 제품의 구색, 그 제품의 리뷰 구성 등에 있어서 아쉬운 영역들이 다시 보였다.


남은 우리의 책임은 라이브용으로 만들어놓은 재고들을 소진하는 것이 먼저였다. 생각보다 재고 판매는 우리의 자체 라이브로 수월하게 되었다. 재고는 다 소진했지만, '왜 예상만큼 잘 안되었을까?' 혹은 '왜 우리 자체 라이브와 성과가 큰 차이가 없었을까?'에 대한 가설을 우선순위를 세우고 검증할 수는 없었다. 또다시 실험해 보기에는 비용이 많이 드는 실패였기에, 조금 더 몸집을 키우고 나서 해보고 싶다. 하지만 다시 시작한다고 했을 때, 우리의 실패를 톺아본 '다음을 위한 기획'이 아주 잘 설계되어 있는지는 의문이다.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실패나 실수를 인정하고, 원인을 찾고, 빠지고 상처 입은 만큼 빠르게 메꾸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간다면 기존 프로젝트를 '이렇게 한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의 회고를 아주 멋지게 작성해서 공유하는 것도 좋겠다. 그 회고를 기반으로 자신이 과거의 실패를 책임지는 더 높은 성과를 낸다면 제일 멋지겠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팀이 비슷한 수렁에 빠지지 않게 미래를 위한 제언으로 남겨둘 수 있어야겠다. 그게 일상적인, 책임지는 모습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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