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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Sep 04. 2023

체념의 장벽을 넘어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여름이 한창 시작될 무렵 두 번째 시즌 마지막 인사를 드렸는데요, 어느덧 8월의 마지막 날이네요. 시간만큼 정직한 것은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합니다.


정직한 시간은 마냥 흘러가는데 그만큼 축적되는 것은 있는지 묻게 됩니다. 일의 가치와 의미를 확인하고 싶은데,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기에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뭐라도 자꾸 쌓아두고 싶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불안에서 비롯된 압박을 견디는 방법으로 저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거나 이야기를 듣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렇게 쌓아둔 꺼리들을 잘 갈무리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번 시즌은 소셜 섹터를 사회의 다양한 흐름과 연결하면서 살펴보려 해요. 시야를 넓히고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맥락들을 짚어가면서 또 다른 기회와 가능성을 모색하고 싶습니다. 그 여정에 함께해 주시면 좋겠어요!




어디서 추천받았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8월 초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책은 2020년에 번역되어 발간됐는데, 지금 이 시점에 읽어도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뚜렷합니다. 학습해야 할 것들은 많은데 이 많은 것을 학습하고 우리 현실에 적용할 시간이 우리에게 남아있는지, 그저 답답할 뿐입니다.


2022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입니다(일본은 1.26명). 2018년 처음 1명 아래(0.98명)로 내려온 뒤 매해 역대 최저치 기록을 내는 상황입니다. 일본은 부동산 버블이 절정에 달했던 1989년에 합계출산율 1.57명을 기록했고 이를 훗날 ‘1.57 쇼크’로 명명했습니다. 저자는 저출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초소자화에 관한 한 일본의 실패는 이미 회복불가능하다는 점은 암담한 일이다. 인구학적인 견지에서 본다면 소자화로 나아가는 선진국은 합계특수출생률이 1.50에 근접한 시점에서 다시 2.00쪽으로 출생률이 회복되는 나라와 출생률이 더 내려가 1.50 아래로 떨어지는 나라로 나뉜다. 운명의 분기점이다. 일본의 경우 이 분기점은 1980년대 말이었다. 일단 1.50 밑으로 떨어진 나라는 출생률을 1.50 이상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경제의 미래예측과 달리 인구학적인 미래예측은 정확도가 상당히 높다. 즉, 적어도 21세기 중반까지 일본은 초소자화를 해결할 수 없고, 이 나라의 인구는 감소가 지속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우리나라의 상황은 그때 그 시절의 일본보다 심각합니다. 지금의 민족적 구성을 지속하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현실이라고 생각해요.


지난달 EBS 다큐멘터리 ‘인구대기회 초저출생’에 나온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법대 명예교수가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은 이미지를 SNS에서 보셨을지도 모르겠어요.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을 듣고는 “와 한국 완전히 망했네요!”라고 반응을 보인 영상의 캡쳐가 돌아다닌 것인데요, 해당 다큐멘터리에서 초저출생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버려야 할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경쟁’을 꼽았습니다. 

경쟁자를 따라가는 패스트팔로워에서 저출생 분야에선 리더(..)로 거듭나려는 것일까요? 세계의 석학마저 이만큼 낮은 출산율은 들어본 적이 없다니... 웃픕니다. 영상이 주는 임팩트가 더 큽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영상을 꼭 보시면 좋겠습니다.


여기에서 다시 <헤이세이(平成)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들춰봅니다. “1980년대까지 일본에서는 “생활기반이 안정돼 있고 예측가능성이 높고, 생활목표가 뚜렷하고, 동시에 대부분의 사람이 목표에 도달가능”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있었고, “높은 저축성향도, 미래에 대한 신뢰라는 의미에서 일본인의 심리적 안정’의 증표였다. 그러나 이후 사회 불안정과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사람들은 “장래의 생활파탄이나 생활수준 저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고생해도 보상받지 못하고, 보다 좋은 생활을 위해 노력해도 헛일이라고 체념하기 시작한다. 희망의 상실에 의한, 의욕의 포기”라고 야마다는 지적했다. 즉 경제적 격차의 불가역적인 확대는 ‘스테이터스’의 격차를 낳고, 그것은 인생에 대한 ‘희망’의 격차가 되어갔다.” 꼭 우리의 이야기를 적어놓은 것만 같습니다. 이미 많은 전문가와 언론에서 지적한 것처럼 ‘체념의 정서’가 우리 사회에 잔잔하게 깔려 있는데요, 쉽게 걷히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해결 방법이 무엇인지 사실 알고 있지만, 그 방법을 실제 작동시키기에 우린 너무 지친 것일까요? 일찍부터 제로섬 게임에 던져져 있는 우리에게 안전지대가 있을까요?






사회적경제는 우리 사회의 안전지대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러고 보면 제겐 사람을 중심에 둔, 사람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사회적경제의 가치 제안(?)이 매력적으로 와닿았던 것 같아요.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가난의 구조에 대해 여기저기서 비평하지만, 막상 이 힘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답을 명확히 제시하지는 못하잖아요. 그런데 사회적경제는 우리가 당면한 과제를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니까요. 투박한 메시지이지만 실제 변화를 만들어 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오랫동안 작동해 온 사회적경제 현장의 가능성을 보며 희망을 품어보는 거죠.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어려움과 질문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이를 함께 고민하며 풀어갈 ‘동료’가 누구에게나 있는 건 아니죠. 경쟁사회에서 쉽지 않잖아요. 그렇게 어렵게 버텨온 우리에게 ‘함께’ 할 누군가가 있다는 사회적경제의 메시지는 분명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메시지를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지 그게 사실 관권이 아닐까 싶은 거죠. 사회적경제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어떻게 전달되고 있을까요? 다들 어떻게 그 메시지를 읽고 있는 것일까요?


올해 출판된 <해석 수준 이론을 적용한 사회적기업 관련 메시지 구성 전략>이란 논문에서는 사회적기업과 사회적기업 육성기관이 주요 이해관계자라 할 수 있는 소비자, 내부 근로자, 일반 시민,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적용 가능한 메시지 전략 사례를 소개합니다. 예를 들어, 연구자들은 고용노동부와 사회적기업의 메시지 전략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회적기업 인식 제고 캠페인을 계획할 경우, “개별 기업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해당 기업이 특정 사회 문제 해결을 어떻게 실행 가능한지와 관련된 비즈니스 모델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메시지 내용 요인을 조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역별로 활동하는 육성기관이 지역주민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경우에는 “사회적기업 육성 필요성에 대한 메시지를 등장인물, 스토리 등 내러티브 형식으로 제시”하는 것에서 나아가 영상으로 메시지를 제시할 때는 “그림, 컬러, 구체적 소리를 중점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논문은 심리학 이론인 해석 수준 이론(construal level theory, CLT)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해당 이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여기에 덧붙이진 않을 텐데요(너무 어렵거든요!!-_ㅜ) 자세한 내용은 역시 논문을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제시한 메시지 구성 전략에 기초한 실증연구를 계획 중이라고 합니다. 앞으로의 연구 결과가 기다려집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광고와 홍보(PR), 캠페인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죠. 그리고 또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정책도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유로뉴스(Euronews)의 기사 하나를 봤는데요, 기사를 통해 사회적경제 생태계가 발전됐다고 알려진 유럽에서도 유럽연합(EU) 국가별 편차가 크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유럽연합은 2021년 사회적경제 실행계획(Social Economy Action Plan)을 채택하고 사회적경제의 잠재력을 최대한 동원(mobilising the full potential of the social economy)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창업, 확장, 혁신, 일자리 창출 등을 하기에 원활한 환경을 구성하는 거죠.


기사에 의하면, 복지 국가의 상징적 존재로 알려진 스웨덴의 사회적경제는 유럽연합 평균보다 낮습니다. 그러니까 스웨덴에서 사회적경제는 전체 유급 노동력의 4.2%를 차지하는데 이는 유럽연합 평균인 6.3%보다 낮고, 룩셈부르크의 9.9%보다도 낮은 수치라고요. 이에 대해 이탈리아의 사회적경제 전문가인 Giulia Galera는 “공공 정책은 사회적기업이 출현하고, 발전하고, 확장할 수 있는 생태계, 즉 환경을 조성하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사회적기업이 설립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정책을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인데요, 지금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 있는 코멘트란 생각입니다. 사회적경제가 안전지대가 될 수 있도록, 사회적경제가 추구하는 사회적 목적에 초점을 맞추면서 지속가능한 경제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그렇게 사회에 사회적경제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책의 파트너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얼마 전 경남 창원에 위치한 경남사회적경제혁신타운에 다녀왔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19년부터 작년까지 진행한 <사회적경제 혁신타운 조성사업>의 성과를 보고 온 셈인 거죠.


지하1층, 지상5층, 연면적 1만 1212㎡ 규모로 리모델링 및 증축됐다는 혁신타운의 이미지는, 일단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기계, 제조, 조선산업의 중심지 창원에서 사회적경제, 사회혁신의 창원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경남사회적경제혁신타운이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의 시도가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희망을 현재에 잘 버무려낼 수 있기를 말이죠.


지역이 가진 역사와 장소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사회적경제만의 가치를 만들어가면 좋겠어요. 그런 움직임을 곳곳에서 보고 싶고, 할 수만 있다면 저도 그런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네요.





2022년 8월부터 격주로 발행 중인 <오늘의 논문> 뉴스레터의 내용을 다시 싣고 있습니다. 구독은 아래 링크에서 가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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