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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열매 Jun 30. 2024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여전히 쌀쌀한 바람이 못마땅하지만, 그래도 봄은 오고 있습니다. 저는 요즘, 풍선에 바람을 넣듯 딱딱한 몸과 마음에 바람을 불어넣고 있어요. 있어 보이게 표현을 포장해 봤는데요, 여기저기 돌아다닌다는(...) 의미입니다. 사회적경제를 둘러싼 저의 막연한 회의감을 지우기 위한 노력이었죠. 사회적경제의 지형 변화가 가져온 회의감이라기보다는 변화된 지형에서 나타난 성급한 진단에 대한 회의감이었을까요?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요.


그동안의 성과와 한계를 성찰하기 위해선 다양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그렇게 ‘듣는 사람’으로 중요한 자세는 ‘기다림’이었는데요. 말과 말이 오가는 사이의 맥락과 분위기를 읽고, 이를 제 상황에 맞춰 재해석하는 과정을 급하게 해선 안되더라고요. 잘 듣기 위해선 능동적인 기다림이 필요했습니다. 그만큼 그 상황에 집중해야 했죠. 그리고 얻은 결론 아닌 결론은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사회적경제가 ‘산업’으로 불릴 수 있을 정도로 큰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였어요. 이런저런 고민이 드는 요즘입니다.

얼마 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세운상가를 걷다 만난 문구인데 맘에 들더라고요. “만드는 건 소질보다 끈기와 집요함”




뒤늦게 알았습니다만 꼭 소개하고 싶은 뉴스레터가 있어요. 배달 플랫폼 요기요에서 발행한 뉴스레터 ‘요기레터’입니다. ‘식품 생산의 현장에서 직접 가서 본 걸 전한다’는 모토로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발행됐는데요, 최첨단 공장에서 작은 부엌, 외식기업의 연구소부터 철원의 와사비 농장까지 본격 ‘K-푸드 시스템’을 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먹는 것만큼 먹는 것에 얽힌 이야기도 좋아하는데요, 그런 니즈에 맞춤 뉴스레터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요즘 간짜장을 하지 않는 중식당들이 늘어나고 있거든요. 간짜장이 손이 많이 가는 것에 비해 마진이 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좀 더 가격을 올려서 삼선간짜장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서 내놓는 식으로 대응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주변에 간짜장 잘하는 중식당이 있으시다면, 사장님의 중식 철학을 한 번 살펴보시면 좋겠어요. 우리 동네 숨은 고수일지도요! 하루 세끼 챙겨 먹는 것이 일상이라 하지만, 막상 먹는 것에 무심하잖아요. ‘무엇을 먹을까’라는 고민에 시대 변화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얹는다면 어떨까요? 편의점에서 사 먹는 떠먹는 요구르트가 어떤 하이테크의 산물인지, 값비싼 문어를 위해 바다 위에서 누군가는 어떤 일을 하는지, 그 과정을 알고 나면, 그 찐-한 연결고리에 놀라고 마니까요. 


뉴스레터 속 컨텐츠가 지난해 10월 책으로 출간됐더라고요. 관심 있는 분들은 책을 살펴보셔도 좋겠습니다. 저는 미나리 생산자분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어요.


“친절하고 수다스러운 김성기가 한재 미나리의 설계자이자 집행자다. 이 모든 아이디어는 그로부터 왔다. (중략) 현재 미나리는 가격정책 면에서도 남다르다. 한재 미나리의 가격은 언제 어디서나 고정되어 있다. 1킬로그램에 1만 원을 유지하다가 올해 물류비 등을 이유로 1만 2천 원으로 인상했다. 작황따라 가격이 바뀌는 다른 농산물에 비하면 해에 따라 수익률이 낮을 수 있으나 김성기의 뜻은 명확하다. 큰 욕심을 부리자. 일희일비하지 말고 길게 가자는 뜻이다. 한재 미나리는 11월부터 6월까지의 생산철 중 1월은 쉰다. 추워서이기도 하고, 그동안은 다른 미나리 생산지역이 팔면 된다는 논리 때문이기도 하다. 김성기는 확실히 남다른 세계관이 있는 사람이었다.” - <모던키친> 미나리: 미나리 마을 사람들, 360~361쪽


한재 미나리 가격이 고정된 이유가 이런 철학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누가 알았겠어요. 누군가는 이런 단단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키우고 있고, 또 그걸 알아보는 누군가가 있는 거겠죠. 그렇게 청도에서 생산한 미나리가 전국 곳곳에서 자신의 향을 냅니다.


사실 이런 콘텐츠가 아주 낯선 것은 아녜요. 생협(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서 꾸준히 생산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까요. 많은 경우에 지금 이 시대에 사람들이 어떤 것에 반응할지 또 어떤 것이 필요할지 고민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 역시 대중입니다. 대중성 있는 그 무언가가 필요하단 이야길 하잖아요. 우리가, 내가 좋아하는 걸 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요?(물론 엄청 열심히 말이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하는데, 기존에 있는 걸 조합해서 ‘새로워 보이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런 생각이 켜켜이 쌓여갑니다.


어쩌다(?) 여성민우회 소식지 <함께가는 여성> 과거 자료를 찾게 됐어요. 1990년대 자료여서 당시 함께가는생활소비자협동조합(함께가는생협) 이야기가 꽤 많더라고요. 참고로 1989년 창립한 함께가는생협은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여성민우회 내 생활협동사업부로 통합 운영됐습니다. 1999년 생협법 시행 이후 2000년에 한국여성민우회 소비자생활협동조합(여성민우회생협)으로, 개별 법인으로 독립했어요. 그리고 2013년 행복중심생협이란 새로운 이름을 갖고 현재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논문은 <1960~1970년대 소비협동조합운동의 일 양상 여성단체의 소비조합과 공동구매 활동을 중심으로(2023)>입니다. 생협을 이야기할 때 흔히 두레생협연합회, 아이쿱생협연합회, 한살림연합, 행복중심생협연합회 4개 생협연합회를 중심으로 한 사업과 활동에 주목합니다.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됐다고 이야기하고 있고요. 논문은, 단체(교회나 친목모임), 지역 혹은 직장별로 소비조합이 조직되면서 역량이 축적된 1960~1970년대의 흐름을 살펴봅니다. 특히 여성단체가 소비자보호운동을 목적으로 전개한 소비조합, 공동구매클럽에 집중해서 말이죠. 


1960년대 여성단체가 소비자 보호를 실천하기 위해 소비조합에 주목합니다. 1965년 당시 서울여대 학장인 고황경을 이사장으로 한 ‘한국여성소비조합’이 설립됐는데요, 로치데일협동조합의 운영원칙을 준수했다는 점이 인상 깊은 지점입니다. 대표적인 여성 리더들이 운영하고 산하에 단위조합을 두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상징성을 갖고 있죠. 하지만 1969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습니다. 그 이유로 연구자는 “경제적 약자인 일반 대중의 자발성과 공동유대에 기초한 협동교육에 기반하지 않고 여성단체 지도부의 주위 인맥에 의거하거나 혹은 하향식 경로로 결성”했다는 한계를 지적합니다. 당시 여성단체 주도의 소비조합은 3~4년 운영되다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일이 많았다고요. 그 후 대체 조직으로 고안된 것이 ‘공동구매클럽’입니다. 1970년대 YWCA와 주부클럽이 지도하는 공동구매클럽이 활발했다고 해요. 도매시장이나 생산자들로부터 밀가루, 식용유, 세탁비누, 치약, 설탕, 김, 분유 등을 구매했다고 합니다.


연구자는 “오늘날의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은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실제 그 운동 역량은 1960~1970년대 소비조합운동 과정에서 축적된 것이다. 이 시기 소비조합운동은 크게 보아 신용조합 계열, 노동조합 계열, 여성단체 계열 세 축으로 전개되었으며, 기타 아나키스트 계열(일부 농촌운동 계열)도 있었다”고 서술합니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각각의 역량을 키워 생협이라는 한 섹터를 만들어낸 거구나 싶더라고요. 하나의 절대적인 대의를 향해 움직였다기보다는 각자의 배경과 맥락에 만들어 낸 목적 속에서 역량을 발휘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아닌가 하는 거죠. 그렇게 다져진 토양에 또 각기 다른 씨앗이 뿌려진 거겠죠. 한편, 각각의 역할 자체로도 완전성이 있지만, 서로 결합/합성할 때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가 만들어질 수도 있을 테고요. ‘따로 또 같이’ 잘 작동할 때 결국 시너지가 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시간이 참 빨라요. 벌써 2024년의 1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니요!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건 뇌가 흥미롭거나 충격적인 일은 오래 기억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것에 크게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요.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경험은 줄고 익숙함이 늘잖아요. 머릿속에 인상 깊게 남는 일이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죠. 그러니 시간을 느리게(?) 만들고 싶다면 평소와 다른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많이 시도하면 됩니다. 어찌 보면 간단한 해결책이기도 하죠. 일상의 새로움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좀 더 부지런해져 볼까 봐요!






뉴스레터 <오늘의 논문>에 담긴 글을 다시 올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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