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
라면을 먹으려 젓가락을 꺼냈다. 혼자 사는 성인 남자 집에 젓가락만 10쌍이 있다.
처음 이사할 때 혹시 모르니 많이 가져가라는 할머니의 말에 혹해서 본가에 있는 젓가락을 싹 털어온 것이다.
그러나 내게 젓가락은 다다익선이 아닌 과유불급. 과감한 대지 지분을 자랑하는 행복주택 5평의 집구석에 그만한 젓가락을 모두 나눠줄 정도의 초대 손님을 초대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자취 3년 동안 한 번도 선택 받지 못한 젓가락이 있을 터였다. 뒷방 늙은이처럼 먼지 풀풀 날리는 수저통 저 뒤편에서 고독을 삼키며 내내 나의 선택을 기다린 젓가락이 있을 터이다.
오늘 나는 그 녀석을 선택하기로 맘먹었다. 젓가락 선입선출을 지키지 않았던 나는 오늘에서야 가장 뒤편에 있던 젓가락을 꺼냈다. 그 녀석은 자신의 본질을 지키지 못하며 그저 실존해있었다. "실존은 본질에 우선한다"는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묵묵히 부조리를 견디며 실존해있었다. 본질로써 쓰이길 원한 젓가락의 욕망이 오늘에서야 비로소 해소된 것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포격에 의해 집과 가족을 모두 잃은 팔레스타인 여성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살고(Living) 있는 게 아니라, 그저 존재하고(Existing) 있다."고 말했다.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인간으로서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마치 젓가락처럼 실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고, 그들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선 외부의 힘을 빌어야하는 부조리를 견뎌야만 한다.
모든 인간이 부조리 속에서 태어나 부조리와 대립하며 살아가지만, 이런 극한의 상황 속에서 그 부조리의 형태는 더 구체화되고 피부에 와닿는다.
1936년부터 3년 동안 일어난 스페인 내전은 실존주의 철학을 탄생시켰다. 모든 전쟁은 새로운 철학 사상을 탄생시킨다. 21세기의 전쟁은 어떤 철학을 가져올 것인가. 인간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삶에 대한 절망 없이,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 - 알베르 카뮈.
불교의 생즉고(生卽苦), "삶은 곧 고통이다." 고통과 즐거움은 순환하는 것이기에 삶이 고통이라면 "삶은 곧 즐거움이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유대 민족의 전쟁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불교 철학이 떠오른다. 사실 모든 종교는 한 가지 방향성으로 향해 있는 게 아닐까.
등 따시고 배부른 나는 유튜브 실시간 뉴스 속보를 틀어 놓고 라면을 끓여 먹으며 삶의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