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곤 실레와 이방인

2024년 12월 23일의 기록

by 허건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그게 어제였나. 잘 모르겠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첫 문장이다. 이방인은 주인공 뫼르소가 죽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장례식장에서 뫼르소는 자신이 얼마나 슬픔이라는 감정에 무딘지 스스로를 묘사한다. 장례식장에서 그가 느낀 감정은 단지 뜨거운 태양으로 인해 몰려오는 짜증뿐.


소설상 뫼르소는 결국 그 작열하는 태양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재판을 받게 된다.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카뮈는 아버지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전사하는 바람에 어린 시절엔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모친은 남편 사후 카뮈와 형을 데리고 친정에 들어간다. 모친은 문맹에 청각 장애를 가진 하녀였고, 카뮈는 한 집에서 할머니, 어머니, 형, 외삼촌 두 명과 함께 살았다.

어린 시절 카뮈는 매일 외삼촌에게 겁탈 당하는 모친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무력했던 카뮈에게 어머니에 대한 동정은 그의 마음을 무너지게 만들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동정의 마음을 닫음으로써, 그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그게 어제였나. 잘 모르겠다."

그래서 주인공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에 무심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머리에 내리쬐는 태양은 마치 어머니처럼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어머니는 늘 그곳에 있었고, 그녀를 피해 그늘에 가려진 채 살던 뫼르소가 장례식장에 찾아오자 비로소 피부로 받아들인 현실이 바로 작열하는 태양이었다.

부모와의 관계는 한 사람의 가치관을 평생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에곤 실레의 그림에서도 나타난다.


에곤 실레의 아버지는 그가 15살 때 매독으로 죽었다. 실레는 아버지의 죽음에도 슬퍼하지 않고 무덤덤한 태도를 보이는 어머니에게 충격을 받았다. 이때부터 아버지를 우상화하고, 어머니를 혐오하기 시작했다. 이는 실레에게 있어서 최초의 불신이었다. 이후 평생 어머니와 불화한 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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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의 대표작, '엄마와 아들'에서 아기는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으로 엄마에게 안겨 있다. 마치 빠져나가고 싶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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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 대한 불신은 여성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난다. 에곤 실레의 연인이었던 발리 노이칠은 무명 시절부터 그에게 헌신하며 조강지처를 자처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화가로서 입지를 다진 에곤 실레가 정작 결혼할 맘을 먹고 선택한 것은 무명 시절부터 조강지처 노릇을 해왔던 발리가 아니라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던 에디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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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여성은 사랑을 하는 대상이 아닌, 출세를 위한 도구처럼 여겨졌다.

부유한 집안의 여성과 결혼한 에곤 실레는 이전과 다른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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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앙상하게 보일 정도의 누드화를 그리던 그의 그림은 에디트와의 결혼 이후 물질적 풍요를 보여주듯 살이 통통하게 오른 누드화로 화풍이 뒤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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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으로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감명이 깊었던 작품은 에곤 실레의 가치관과 대비되는 느낌의 에른스트 스토르의 '호수 옆 커플'

물질과 욕구의 대상으로써의 이성이 아니라, 함께 앞을 보며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연인의 모습이다.

분리파의 목적이 과거로의 분리라고는 하지만 때론 보수적인 가치관이 더 아름다울 때도 있다. 온고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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