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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ngo Oct 17. 2022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꿈에게

[책] GV 빌런 고태경

내 꿈은 멋있는데 현실의 나는 후줄근하게 느껴지는 사람,

영화 한 번 찍어보겠다고 소동 피운 적 있는 사람,

빌런 좋아하는 사람(?)

에게 추천합니다.


자야 하는데 잠이 안 와서 쓰기 시작한 가벼운 리뷰.

2년 전에 추천받았는데 이제야 읽어보았다.

연구 서적 읽기 싫어서 도망친 곳이 소설이라니, 무슨 인생을 사는 거야 나.


p.13
진부한 말이지만 영화는 너무나 돈이 많이 든다.

진짜 진부한 말인데 너무 맞는 말이다. 마치 1만 얼마 세 번 썼더니 5만 원, 10만 얼마 5번 썼더니 100만 원인 것처럼 뭐 조금 할 거 했는데 돈 쭉쭉 나가는 현장. 내 작품(이라고 하니 너무 민망하지만 내가 연출한 건 맞으니까 다른 말을 찾을 수가 없네)을 마지막으로 했던 게 7년은 더 된 일이라 가물가물하다만 조금이라도 아껴보겠다고 온갖 노력을 했었던 기억은 남아있다. 진짜 아무것도 없는 수준의 단편 현장인데도 백 단위는 우습게 들었었지.


p.60
관심의 공산주의가 필요하다. 관심의 재분배, 최소생계 유지처럼 최소관심 유지가 되는 사회.

관심을 하나도 못 받아서 외로운 사람이 있다는 건 관심을 너무 많이 받아서 괴로운 사람도 있다. 요새 모 아이돌이 유튜버 등으로부터 루머와 악플로 저격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관심을 내가 다 받은 것처럼 피로감을 느꼈다. 80억 지구인들의 관심을 그러모아서 모두에게 똑떨어지게 균등하게 나눠 줄 수 있다면 전 세계의 행복도가 최상으로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단편 하나 겨우 완성한 나도, 기생충으로 칸을 간 봉준호도 똑같이 인정받는 세상, 아름답지 않은가.


p.102
“재능이니 뭐니 하는 건 이십 대에나 하는 거 아냐? 그냥 하는 거지. 이 나이 되니까, 재능 있다던 사람들 그만두고 재능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성공하는 것도 다 지켜봤어. 꾸준히 계속하는 의지야말로 진짜 재능이지.”

내가 좋아하고 또 선망하기도 하는 이슬아 작가가 ‘재능과 반복’이라는 칼럼에 이런 말을 쓴 적이 있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

이 말을 보고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언제나 특기를 갖고 싶어 했으나 무엇 하나 콕 집어 내보일 수 없던 나에게 해주는 말 같았거든. ‘너, 그렇게 꾸준히 하는 것만으로도 재능인 거다’하고.

그 뒤로 꾸준함은 나의 소소한 자부심이 되었다. 그냥 좀 실력이 잘 안 늘어도 ‘뭐 어때,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이다 보면 특기는 아니어도 장기는 되어 있었다. 그래서 가장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친구가 나를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 꾸준히 하는 걸 제일 잘하는 이라고 칭찬해 줄 때 보람찬 마음이 들었었다. 그게 보인다니 아주 뿌듯하잖아.​



아무리 멋진 꿈을 가지고 있더라도 현실이 요렇게 밖에 안 되는 게 애석함을 넘어 처참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해보는 수밖에는 없잖아. 그래서 나는 영화를 만들어 보고 깔끔하게 놓아줄 수 있었다. 영화를 찍는 건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재능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거지. 여전히 연출이 멋져 보이지만 그 때문에 내가 초라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내가 줄 수 있는 마음을 다 주었기에 아쉬움이 짙지는 않다. 종종 올라오는 아쉬움은 내게 아직 남아있는 애정이다. 영화는 여전히 좋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든 멋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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