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보 Nov 03. 2019

사진에 온 삶을 던진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일하고, 최대한 많이 벌고, 최대한 높이 올라가고, 좋은 집과 좋은 차를 갖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또 무엇이 더 있을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지향하고 있는 규격화된 삶의 지향점이 이런 것들 아닐까.   


   

인생을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 규격화된 길에서 어떻게든 떨어지지 않으려는 사람의 눈엔 보이지 않지만, 한발 비켜서면 보이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보인다. 물량적 목표와 도시의 삶을 흔쾌히 뒤로 하고 자신의 영혼을 실을 수 있는 일에 행복을 느끼며 그 의미와 가치만을 보며 우직하게 걸어가는 사람들. 그중 한 명을 오늘 소개하고 싶다. 제주도에 미쳐 제주의 풍광을 담는 데 말 그대로 온 삶을 건 김영갑 사진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김영갑은 1985년에 아예 둥지를 제주로 옮겨 제주를 담는 데 몰입했다. 밥값을 아껴가며 때론 굶어가며 필름을 사는 것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다. 외로울 때면 들판에 나가 오름과 같은 제주의 풍경 앞에서 셔터를 눌러댔다. 온통 삶 자체가 사진이었던 그는 몸을 잘 돌보지 않은 탓이었는지 루게릭병에 걸려 2005년 5월 눈을 감는다. 하지만 그는 몸을 움직이기 힘든 상황에서도 폐교 한 군데에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을 세웠다. 그의 뼈가 이곳에 뿌려졌다. 김영갑은 영원히 제주의 사람, 두모악(한라산의 옛 이름)의 작가로 잠들어 있다.     


전에 제주에 갔을 때 ‘두모악’을 들렸다. 갤러리 분위기는 정갈하고 편안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무언가 묵직한 예술혼이 흐르고 있었다. 김영갑의 사진에는 빛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제주의 빛깔이 담겨 있고, 바람조차 담아보려 했던 그의 열정이 녹아 있다.      



김영갑은 ‘그 섬에 내가 있었네’라는 책을 남겼다. 그의 생전에 구술로 만들어진 귀한 책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제주를, 사진을 사랑하고 그 작업에 몸을 아끼지 않은 채 온 생을 걸었는지를 알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뚜벅뚜벅하며 뜨겁게 살다간 예술가이다.    

 

김영갑에게 제주의 들판은 친구였다. “나는 들판의 친구로 삽니다. 들판을 친구 삼아 나의 비극과 고통을 넘어섭니다. 아픔은 한동안 머물다 사라집니다. 행복과 즐거움보다는 불행과 슬픔이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듭니다”     

김영갑의 삶은 사진을 빼고 나면 고통 그 자체였다. 그는 건강보험증이나 신용카드 하나 없이 살았고, 늘 혼자였기에 외로웠다. 먹는 것은 허기를 메우는 데만 급급했다. 사진이 밥벌이가 안되는 줄 알면서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죽는 날까지 자연을 떠돌아다니리라. 홀로 초원에 묻혀 살아가리라. 끼닛거리가 없으면 없는 대로, 외로우면 외로운 대로 살아가리라”     



사진은 무엇이기에 김영갑은 온 삶을 던졌을까. 김영갑은 사진이 홍수처럼 넘치는 시대지만 사람들이 사진을 잘 모른다고 꼬집는다. “나는 셔터를 누르기 전에 이미지를 완성한다. 한 장의 사진에는 사진가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이 말을 듣고 나 자신도 되돌아보게 됐다. 사진을 취미로 즐긴 지가 오래됐지만, 충분히 생각하고 사진에 영혼을 담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김영갑이 남긴 말을 음미하며 영혼이 담기는 사진을 찍기 위해 더 성찰하고 더 바라보고 더 깊어져야 할 것 같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읽으며 반가운 대목이 있었다. 김영갑의 사진 철학에서 내 생각과 비슷한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진 하면 좋은 장비를 생각한다. 그릇된 생각이다. 장비가 아무리 좋아도 마음의 렌즈로 사진을 찍지 않는다면 별다른 의미가 없다. 김영갑도 이 점을 강조한다. 또 아름다운 곳에 가야 아름다운 사진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가까운 주변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시선이 있다면 얼마든지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김영갑은 말한다. “아름다움은 어디에도 존재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름다운 곳을 찾아 해외로 나간다고 아우성이다. 어떤 바다나 강에도 큰 고기는 있기 마련이다”    

 

두모악 갤러리는 김영갑의 인간 승리의 상징물이다. 병상 중에 있던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집념으로 갤러리 건립의 꿈을 버리지 않는다. “나에게 허락된 하루를 절망 속에서 허무하게 떠나보낼 수는 없다. 쓰러지는 그날까지 하루를 희망으로 채워가자”“나는 수 없이 보아왔다. 다리 한쪽이 잘린 노루가 뛰어다니고, 날개에 총상을 입고도 살아남은 꿩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조금 힘들고 불편해도 나에게 허락된 오늘을 즐길 수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구원은 멀리 있지 않다. 두려움 없이 기꺼이, 기쁘게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구원일 것이다”     


문학평론가 안성수는 김영갑에 대해 “예술을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美의 수도자, 지독한 가난과 고독, 외로움을 견디며 자연 속의 황홀경을 훔쳐본 작가”라고 평가한다. 김영갑의 삶을 가난한 사진작가, 고독한 인간, 투병의 길로 안성수는 집약한다.     



김영갑은 다르게 살다 갔다. 규격화된 삶을 뒤로하고 그가 추구하는 예술을 향한 자유를 향유했다. 규격화된 기준으로 보면 그는 가난했고,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그의 예술혼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허망한 것에 불과하다. 김영갑은 의미 있는 가치를 좇았다. 제주 들판에서 홀로였지만 사진으로 인해 행복했다. 제주에 가면 두모악 갤러리는 꼭 다시 한 번 들러보고 싶다. 그의 삶을 반추하며 그의 작품들 앞에 서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