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이 오늘 나왔습니다. 다른 책들도 그랬지만, 이 책은 많은 고민을 하며 최선을 다해 썼습니다. 진영이 첨예하게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경제에 대해 어떤 견해를 내놓는다는 게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평생 경제기자의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 최대한 객관적 의견을 적어보려 노력했습니다. 프롤로그에 실은 일부 글로 이 책 소개를 대신합니다.
<프롤로그>
‘양손잡이 경제’와 ‘양손잡이 경영’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경제가 정치와 지나치게 맞물린 현실 때문이다. 물론 경제는 정치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경제적 의사 결정에서부터 그 실행의 과정, 그리고 결과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이게 그대로 정치에 반영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요즘처럼 첨예하게 ‘우리 편’과 ‘내 편’으로 갈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기업에 우호적인 얘기를 하면 ‘반개혁’이라는 프레임으로 비판을 받기 쉽다. 분배나 불평등 얘기를 꺼내 들면 ‘좌파’라는 색깔이 덧입혀진다.
우리 경제는 위기인가 아닌가? 진영으로 갈라 이 질문을 던지면 답은 너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한쪽은 무조건 위기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은 경제가 순항하고 있다고 말한다. 현실의 답은 그 중간 어디쯤엔가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본 글로벌 순위나 경제 지표들을 보면 현재 한국 경제의 ‘건강 상태’는 좋은 면도 있고 걱정이 되는 점도 있다. 문제는 미래다. 불안 요인이 적지 않다. 한국 경제는 GDP 대비 수출 의존도가 40%에 이르는 소규모 개방 경제다. 대외여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외부 환경이 얼음 위를 걷는 듯한 상황이다. 18개월 동안 무역전쟁을 벌여온 미국과 중국. 확전을 피하려 휴전을 했지만,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글로벌 주도권을 놓고 다투는 패권 경쟁인 만큼 두 나라의 마찰로 인한 세계 경제의 불안은 오랜 기간 계속될 것이다. 세계 경제는 중국 경제의 성장세에 제동이 걸린 상태에서 1~2년 사이에 미국 경제까지 침체에 빠져들면 종전보다 긴 하강 국면이 이어질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적인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는 위기 경보를 울리고 있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 많은 기관과 전문가들이 소득과 자산, 그리고 건강의 양극화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성장 둔화와 양극화 심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경제의 본질적 체력인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가운데 실제 성장률은 여기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투자도 부진해 전망도 밝지 않다. 인구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 한국 사회와 경제의 판을 크게 뒤흔들 ‘회색 코뿔소’여서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해 대처해야 하는데도 그만큼의 위기의식이 있는지 걱정이다. 양극화도 심각하다. OECD 회원국 중 불평등이 심한 국가에 들어가며 특히 고령층의 양극화는 상황이 더 나쁘다. 서로 어깨를 기대고 살아도 쉽지 않은 상황인데 한국 사회는 다른 사람에 등 돌리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각자도생’ 사회임이 국제 조사 결과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와 경제가 직면한 과제는 단선적이지 않고 복합적이다. 성장률도 끌어올리고 양극화도 완화하고 공동체 문화도 복원해야 한다. 성장 대 분배, 시장 대 정부, 작은 정부 대 큰 정부, 기업 대 노동. 이 중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배척하는 이분법적 사고로는 이 과제를 풀어 나갈 수 없다. 굳이 진영 논리로 말하자면 성장을 중시하는 ‘오른손’과 분배를 중시하는 ‘왼손’을 다 같이 써야 한다. 복합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처방전도 실용적이고 융합적이어야 한다. 진영의 논리는 이상이지만 경직돼있다. 현장의 논리는 현실적이며 유연해야 한다. 이 책에서 살펴본 한국과 미국의 역대 정부들은 실제로는 경제 정책에 관한 한 진보와 보수 성격의 정책을 모두 사용했다. 현실이 요구할 땐 상대 진영의 정책도 과감하게 빌려 썼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 경제의 위기 돌파를 위한 방안으로 ‘왼손’과 ‘오른손’ 정책을 다 쓰는,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양손잡이 경제’를 제시한다.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다른 데도 아닌 재계가 앞장서서 주주 가치만을 중시하는 주주자본주의의 종언을 선언하고 고객, 근로자, 거래업체, 지역사회, 주주 등을 모두 중시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촉구하고 나섰다. 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를 유행시킨 세계경제포럼 WEF의 클라우스 슈밥 회장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다보스 선언’을 내놓았다. 주주만이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를 기업의 목적으로 삼는 ‘양손잡이 경영’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 중국에는 기술 수준이 거의 따라잡혔다. 글로벌 디지털 경제는 거의 미국과 중국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구는 증가 둔화부터 시작해 감소세까지 빠르게 진행될 전망이다. 길어야 10년 이내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제를 순식간에 살리는 비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방향을 잘 잡고 한약을 먹듯 일관되게 대응을 잘해나가야 경제의 하강 흐름을 반전시킬 수 있다. 스웨덴은 국가를 ‘국민의 집’으로 부른다. 정부, 기업, 근로자 모두 ‘경제공동체’의 한배에 탔다는 공감대를 회복해 한국 경제를 ‘성장하며 함께 잘 사는 '국민의 집’으로 만들어야 한다. 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잘 뛸 수 있게 밀어주고, 기업은 그 과실을 공유하는 ‘낙수효과’를 복원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 딱 한 번의 기회가 남았다는 절박함으로 문제를 직시해야 해답이 보이고 공감이 형성되고 실행력이 생길 것이다.
이 책의 제1부에서는 다음번에 올 경기침체에 대한 진단과 함께 세계 경제의 장기적 불안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이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향방에 대해 심층적으로 짚어본다. 제2부에서는 글로벌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양극화 및 불평등 심화를 진단해보고 제3부에서는 경제 정책에 관한 진보와 보수의 철학적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본 다음 한국 경제가 성장과 양극화 완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양손잡이 경제’를 운용해야 할 필요성을 제안한다. 진영이 첨예하게 부딪치는 시기에 이 책을 내게 돼 조심스러운 면도 있다. 경제 기자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한국 경제의 갈 길에 대해 고민하고 사유해온 결과물이 이 책이다. 그런 점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현상을 진단하고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했다. 행여 귀담아들을 만한 제언이 이 책에 있다면 그것으로 너그럽게 받아주시기를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