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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RICORN Nov 04. 2020

최악의 룸메이트 (feat. F××× 보다는 ㅆ)

역시 욕은 한국말이 최고.

최악의 룸메이트.

사실 앞의 내용은 전초전이었다. 질척한 공방전의 시작은 지금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장실은 불만은 있었지만, 너무 열 받아 죽겠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내가 조금 희생해서 솔선수범하여 치운다면 일상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개인 사생활을 침범하는 일들이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이 이야기에 앞서 내 룸메이트에 대해 설명을 해야겠다.
처음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룸메이트 ‘알렉스’와 통성명을 했을 때, 알렉스는 나와 ‘하이’ 정도의 인사만 했을 뿐, 한국이라는 나라도 모르고, 룸메이트가 된 나에 대한 궁금함 역시 전혀 없었다.
또, 나는 미국에 오기 전에 ‘교환학생’으로서 한국을 알리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나는 인사동에 가서 한국스러운 많은 물건을 싹쓸이해왔다. 거기서 사온 한복을 입은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엽서와 라면을 알렉스에게 오자마자 선물로 주었으나, 바로 즉각적으로 필요 없다고 거절당했다. 그 뒤로도 이런저런 말은 시켜봤지만 알렉스는 고개만 끄덕이고 어깨만 으쓱거릴 뿐 나와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없었다. 나는 룸메이트끼리의 우정은 영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여서 급 소심해졌다.
LA 레이커스 팬이었던 그녀는 농구부의 후보 선수였다. 그러나 그녀는 같은 농구부끼리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급식실에서 누구와 같이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애는 항상, 거의 매일 투고(To-go) 박스를 들고 와서 방에서 혼자 먹곤 했다. 아침에는 수업이 없는지 항상 자고 있었고, 저녁에는 가끔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 룸메이트와의 갈등은 내가 시차에 적응되면서 시작했다. 처음 미국에 와서 열흘 정도는 나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잘 잤다.

그러나 시차에 적응하고 나서 보니 그 애는 새벽에도 TV를 크게 보고 있었으며, 음악을 들을 때 역시 이어폰을 끼지 않았다. 새벽 3시에 말이다! 전혀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심지어 어느 날은 너무 시끄러워서 눈을 떠보니 새벽 4시에, 내 앞에 3-4명의 약간은 취한 듯한 여자들이 와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풀린 눈으로 ‘Hey’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알렉스는 나의 동의는 한마디도 구하지 않은 채 이런 일을 벌인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알렉스는 눈 뜬 나에게 대고 미안하다거나 그런 말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다음 날 알렉스에게 말을 걸었다.  그 애는 쳐다도 보지 않은 채로 TV를 보고 있었지만 그녀의 그런 옆모습에 대고 말했다. 화장실 청소와 더불어 같은 룸메이트로서 기본적인 에티켓을 지켜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날 새벽 2시, 여전히 그 애는 노트북으로 영상을 이어폰도 끼지 않은 채 보고 있었고, 그 새벽에 열이 받은 나는 침대에서 튕겨져 나와 그 애한테 갔다.

“우리는 방을 같이 쓰는 사이야. 나에 대한 어느 정도의 존중은 해줘. 최소한 새벽에는 이어폰을 사용해 줄래? 제발”

내가 최대한 부탁의 단어인 respect, please를 버무려서 얘기를 했다. 그러나, 그 애는 나를 쳐다도 보지 않았고, 앞만 보고 있었다. 새벽에 열이 받은 그 애의 어깨를 검지로 툭툭 두드리며 얘기했다.

“대답(answer)”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한번 쓱 쳐다보더니, 컴퓨터를 할 뿐이었다. 나는 꽤 집착도 심하고 고집이 조금 세다.

나는 그 애가 대답할 때까지 침대 위에 누워있는 애를 그 바로 옆에 서서 지긋이 쳐다보았다. 그리고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 So, Answer is?”

10분쯤 지났을까, 내려보던 내 눈의 시선과 마주친 그 애는 거의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알겠다고 말했고, 나는 고맙다고 답했다. 그렇게 해피엔딩이 되는 듯했으나, 그 애는 동양 여자애한테 대답을 했다는 게 꽤나 억울했던 것 같다. 모든 일은 그날 새벽에 시작되었다.

그 새벽, 다른 방에서 보드카 몇 잔을 얻어 마시고 새벽 2시쯤 방에 조용히 들어왔다. 내 방의 불은 모두 다 켜져 있었고, TV와 컴퓨터에서 나오는 음악소리로 어지러웠다. 내가 이를 닦고 눕는 신호를 했음에도 그 행동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난 걔에게 찾아갔다.

"소리 좀 줄여 줄래?"

어깨만 으쓱할 뿐, 그 애는 내 영어는 못 알아듣겠다는 시늉을 하고 전화기 속 누군가와 떠들면서,

"얘가 뭐라고 말하는데 못 알아듣겠어, 혼자 떠들게 하지 뭐"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정말 되지 않는 영어로 룸메이트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고 진짜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영어로 나의 열 받음을 얘기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전화를 하면서, 어깨만 으쓱하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거의 한 달간 쌓아 둔 것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내 머리는 더 이상 사고하기를 거부했다. 나는 기숙사 방에 있는 콘센트를 다 뽑기 시작했다. TV도 방안의 램프도 모두 꺼졌다
 
"야 뭐 하는 거야"
 

라는 그녀의 말에 나도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그 애는, 전화를 끊더니, 침대에서 일어나서 온갖 내가 빼 버린 콘센트를 다시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나는 다시 달려가서 뽑고, 걔는 다시 달려가서 꼽고 그런 유치한 행동을 몇 번이나 계속했다. 영어로 한창 나에게 욕을 하며 블라블라 한참 떠드는 그 애 앞에서, ‘저 애한테 영어로 욕을 하며 대응할까’라고 한 2초 고민하다가, 외국인이 영어로 욕해봤자 웃기기만 할 것 같아서, 한국말로 응수했다.

"씨 X, 미친 X아. 말을 하면 들어라. 머리에 뭐가 들었니? 예의는 똥으로 변기통에 다 흘려보냈니? "

“What?”

우리나라 욕은, 너무나 입에 착착 달라붙어서, 어느 나라 사람이 들어도 '욕' 같다고들 했다. F 단어가 아닌 ㅆ로 시작하는 말은 정말 입에서 기차가 기찻길을 가듯 연이어서 청산유수처럼 나왔다.
 
나는 삿대질을 하며 한국말로 욕을 하기 했고, 그 애는 내 손가락을 한껏 드리블하듯 치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욕을 하면서도 걔가 농구선수라 한 대 맞을까 봐 조금은 무서웠다. 그러나 그때의 기분으로는 ‘한 대 맞으면 깽값이라도 받아 야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머리가 정상 회로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나는 맞지 않았다(??)!!  
 
새벽 3시, 조용한 기숙사에는 한국 욕과 영어 욕이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그렇게 욕이 난무하던 와중에 나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내가 이 먼 미국까지 와서, 처음 만난 외국인 룸메이트와 무슨 짓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친개는 피하는 게 답일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그 애의 입장에서도 내가 미친 개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한국말을 멈추고 잠시 그녀를 지긋이 바라봤다. 잠시간의 멈춤으로 그녀도 잠시 하던 말을 멈추고 나에게 집중했다.
 

"예의도 모르는 너, 참 불쌍하다. 평생 그렇게 살아라. you are so pity “

나는 어이없어하는 그녀의 얼굴을 뒤로한 채 그 길로 그 방을 나왔다. 나온 직후, 어차피 다음날엔 저 방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조금 우울하긴 했으나, 나를 존중은커녕 무시하는 그 방에서는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다. 나는 그 길로 다른 언니한테 전화를 걸었고, 나는 추운 겨울에 밖이 아닌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다음 날 나는 바로 기숙사장에게 연락해서 여러 이유들을 말하며 방을 바꿔줄 것을 요청했고, 의외로 그 요청은 빠르게 수렴되어 이틀 만에 나는 다른 방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아주 다행이게도, 바뀐 방의 룸메이트들은 비교되게 공용의 공간들을 아주 깨끗하게 유지하며 룸메이트로서 역시 최소한의 존중을 해주는 친구들이었다.

가끔, 수영장에서, 길거리에서 그 애를 마주한 적이 있었다.
한 번은 수영장 자쿠지에서, 그 애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남자애 바로 뒤에 착 붙어서 억지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그 애는 또 투고 박스를 들고 기숙사로 가는 중이었다.

한껏 외로워 보이는 그 모습은 나에게 묘한 승리감을 주었다. 그리고 그다음 학기, 나는 다신 그 애를 기숙사에서도, 학교 내에서도 볼 수 없었다.
 

-다음부터는, 다른 사람의 말에 경청하는 법도 배우고, 다른 사람도 존중할 줄 알며, 함부로 사람 무시하지 말도록.
남한테 피해 끼치지 말고. 이 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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