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이어도 공무원은 안 합니다의 시작
워라밸 허상에 얇은 귀가 팔락였던 과거의 자신
공무원을 퇴사(의원면직)한 지 벌써 6개월 차다.
시간 정말 빠르다는 걸 느끼며, 잊기 전에 서랍에라도 내가 왜 '공'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됐는지, 그 이유를 주섬주섬 담아 본다.
워라밸이라는 허상에 풍덩 잠겨 공부했던 과거의 자신이 있다.
워라밸이 그때 내 삶에서 최고의 지분을 차지한 단어가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
먼저, 건강이 약했다. (그때는 희귀병인 줄 모르고 그냥 약한 줄 알았다.) 그래서 자잘한 병원비가 매달 나가는 한 달 한 달을 보내고 있었다. 화장품 MD로 일하는 건 야근이 많아 몸이 고됐다.
같은 팀의 한 명이 퇴사 후, 신규 입사자를 뽑아주지 않아 남은 인원이서 0.3인분 이상을 더 하고 있었다. 그렇게 야근과 주말 출근을 계속하던 중, 알레르기성 결막염에 끊임없이 시달려 안과에서 센 안약을 처방받았다.
다음날 아침, 출근 전 처방받은 안약을 넣었는데 그대로 마치 구멍이 뚫린 듯한 쓰라림이 눈을 덮쳤다. 그 한쪽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 한 쪽 눈을 감은 채로 출근했고, 팀 전체가 놀라 병원에 가라고 배려해 주었다.
갔더니 너무 간단하게 하시는 말.
"각막이 녹았네요. 녹아서 구멍 뚫렸어요."
네? 그게 그렇게 간단히 하실 말씀일까요 선생님?
"각막은 다시 자라니까 괜찮아요."
대수롭지 않게 1~2주일은 보호 렌즈 끼고 살면 회복된다고 하셔서, 또 다른 약 뭉텅이와 함께 병원을 나섰다. 이때 눈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인생에서 처음으로 실감 났다. 눈을 잃고 산다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이기에, 생각 전에 신체가 반응하여 조금씩 떨렸다.
내 신체 중 한 부분이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도, 회사는 바빴다. 주말을 끼고 하루만 휴가 내서 쉬었다. 절대적으로 많은 업무량에 세 명뿐인 팀 전체가 짓눌리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보호 렌즈를 끼고 다시 출근했다. 이제는 다른 장기가 아픔을 호소했다. 하혈이 멈추지 않았다. 약을 아무리 먹어도 회복이 되지 않아서, 결국 시술로 터진 핏줄 부위를 전부 지져야 했다. 전신마취여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베드에 누워서 정신을 붙잡고 있기 싫었을 터이다.
신체가 두 곳 아픈 후, 이제는 위궤양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역류성 식도염이 찾아왔다. 현대인의 고질병이라지만, 나에게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해본 불편함이었다. 각종 알레르기성 비염, 각막염에 시달리고 있는데 먹는 것까지 말썽이라니. 다행히 위궤양까지는 가지 않았으나 점점 식사가 불편해졌다.
'이직하자.'
팀원들은 좋았으나 내 몸이 갈려서 점점 제 기능을 잃어간다면, 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이었다. 굳게 마음을 먹고 이직에 성공했다. 면접까지 가서 거절당한 경험은 몇 번 없었기에, 내가 문을 두들기기만 하면 어떤 문은 반드시 열린다는 걸 믿고 있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인지, 이직한 회사가 두 달 만에 해고를 통보했다. 중국 자본이 들어오기로 해서 사람을 더 뽑았는데, 사드 미사일 배치로 중국 쪽에서 투자를 취소했다는 거였다.
금요일 저녁에 갑자기 들은 해고 통보에 황당했으나, 실업급여를 한두 번 받은 후 다시 직장을 구했다. 실업급여만으로는 1인 청년 가구가 서울에서 월세를 내며 살아가기 어려웠다.
'그 정도면 산업스파이 아니야?'
예전 직장 동료가 여러 필드, 여러 직무에 취직하는 나를 보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기획 직무가 아닌 회계 직무. 회계가 맞지 않구나, 라는 걸 깨닫게 해 준 경험이었다. 지금 글을 쓰다 보니 그때 한 발 먼저 '나는 굳은, 정형화된 일과 조직이 안 맞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 공무원을 그만둔 것에 후회는 없다.
회계 직무를 벗어나, 다시 상품 기획 MD로 일한다면 안정성(실업으로 경각심을 가진)과 워라밸(각막이 녹아 절실하게 된)을 챙기기 위해, 한국에서 워라밸이 가장 좋다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공부 준비를 할 돈을 모으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약 1년간 MD로 일하며 돈을 모아, 드디어 공무원 준비를 시작했다. 무척 오랜만에 보는 5지선다형 교재들이 반가웠다. 월세까지 내기엔 버거웠기에 본가로 들어간 후, 독서실을 결제하고 다녔다.
빠른 합격을 위한 빠른 투자.
이 때는 시험이 가까워졌을 때의 자신이 어떻게 변할지 몰랐었다. 정확히는, 심리가 그렇게까지 내 신체를 지배할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