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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갱 Nov 19. 2019

상하이 여행의 시작

와이프랑 상하이 가, 트위스트 추면서

 

 한 달 전쯤, 같이 사시는 분이 회사에서 뭔가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갑자기 짧게라도 여행을 다녀오자고 했다. 비용은 자기가 부담한다고 했다. 이 멘트가 킬링 포인트다. 멋을 아는 상여자. 일본을 빼니 가깝게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가 별로 없었다. 지도를 보며 고민하다 상하이로 결정하게 되었다. 주변에 상하이 간다 그러면 어쩜 그리 다들 ‘트위스트’ 이야기를 하는지. 설운도씨가 대한민국에 끼친 영향이 대단하구나 생각했다. 트위스트 타령이 지겨워 나중에는 상하이 여행을 이야기 할 때면 내가 먼저 선빵을 쳤다.


 ‘이번 주말에 와이프랑 상하이 가…트위스트 추면서…’


 중국 여행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라고 하기보단 귀찮) 비자를 만들어야해서 비자발급 센터에 두 번 발급해야 했고 모든 정보들이 한자로 되어 있었다. 나는 한자 2급 시험에 낙마한 경험이 있을 만큼 한자에는 약해서 약간의 의미를 파악하는 일 조차 힘들었다. 또, 비자를 만들 때 여권을 내고 왔다는 사실을 잊고 ‘큰 일이다, 여권을 잃어버렸다’ 하면서 온 집안을 뒤집어 놓기도 했다. 세상 똥멍청이가 따로 없다. 그래서 그런가 이번 여행은 사전에 준비를 거의 하지 않았다. 여행도 전에 나는 이제 지쳤기 때문이다, 땡벌.


 와이프는 출발 전 유심을 구입하며 ‘진짜 유심을 안살꺼냐고’ 물어보셨다. 회사에서 에이스로 활약하고 계셔서 연락 올 때가 많으셔서 유심을 사시나보다. 나는 그렇게 중요한 전화도 오지 않고 연락오는데도 별로 없어서 됐다고 했다. 몇 번의 여행결과 유심을 안사고 여행하면 좋다. 세상과의 잠깐이지만 완벽한 단절의 경험 (와이파이만 연결하지 않으면)을 할 수 있다. 낯선 곳에서 익숙한 것들과의 잠깐의 이별이 여행의 묘미 아니던가. 세상과의 단절은 좋지만 불편한 점도 있는데 지도를 보며 목적지로 가기, 정보 검색, 택시 부르기 같은 여행의 필수적인 서비스는 누릴 수가 없다. 그럴 때는 유심이 있는 동반자를 구해보자.


 

 공항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해 일행분과 같이 앉지는 못했다. 3인석에 모르는 분들과 앉았다. 책을 읽으며 가고 있는데 옆에 있는 여자분이 자꾸 책을 곁눈질로 보는 것 같았다. 영화를 재생하면 내 영화를 같이 봤다. 오목 게임을 할 때도 관전하셨는데 컴퓨터한테 어이없게 질 때 ‘아~’하면서 되게 아쉬워 해주셨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공감능력이 많으신 분 같았다.괜히 더 잘해야 될거 같아서 두 번 더 도전했는데 알파고한테 계속 졌다. 비행기가 푸동공항에 내리니 옆에 계신 여자분이 춤을 췄다. 그래서 한 20대 초반이나 되는 삶에 모든 것이 파닥파닥 다가오는 그런 나이의 여자분이신가 싶었는데 내릴 때 보니 30대 후반정도의 여자분이 셨다. 무릎꿇고 물어보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재밌게 살 수 있는지. 여행의 시작이 좋다.


 상하이에 도착하니 300km/h 로 달리는 모노레일 열차를 타고 도심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와이프는 오기 전부터 이 모노레일을 가장 기대하는 듯 했다. 왜? 빨리 달리는 모노레일 열차를 타고 싶은걸까? 첨단 테크놀로지에 감탄하는건 언제나 와이프 쪽이다. 테슬라도 첨단 테크놀로진데 안사나?


 일행의 유심이 되다 안되다 해서 지도를 보고 택시를 부르는데 애를 먹었다. 게다가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주소를 두 개를 올려놔서 사람 햇갈리게 했다. 서울의 한 점에서 상하이의 한 점까지 이동하는게 쉬울리는 없겠지. 골프로 치면 목적지까지 홀인원으로 가기도 하겠지만 이번 숙소 찾기는 트리플 보기 정도의 난이도 였다. 항상 그렇듯 마침내 숙소를 찾아 짐을 내리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원래 동방명주인가 뭔가 하는 곳에 가서 야경을 보려 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고 몸은 힘들어 근처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여행 중 길을 잃는 일은 꽤 멋진 일이다. 낯선 곳에서 길을 헤맬 때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 때 주로 좋은 곳, 현지인스러운 곳, 나만 아는 멋진 곳을 찾을 수 있다. 이번에도 숙소를 찾아 헤매다 아주 멋진 프렌치 레스토랑을 찾게 되었다. 거기서 디너 코스를 먹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푸와그라도 먹어봤다.(거위야, 미안해) 만족스러운 서빙과 대단히 훌륭한 음식들과 상쾌한 맛의 화이트 와인을 먹으니 김치에 라면을 먹던 내 모습이 흐릿해졌다. 일행분은 여행일정 중 앞으로의 모든 저녁은 자기가 살테니 너는 모든 점심을 사라고 했다. 경비를 다 부담하는 줄 알았는데 도착하니 말이 바뀌었다. 앞으로는 약속을 서류로 남겨야겠다. 내일부터 점심은 현지인들의 식문화를 체험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여행이기에.

 숙소 주변에 괜찮은 펍 하나를 봐둔데가 있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펍으로 갔다. 나는 기네스 한 잔과 글렌피딕 더블 샷을 언더락으로 먹었고 일행분은 스텔라 아투아와 이름이 어려운 칵테일을 마셨다. 마침 라이브 공연이 시작되었다. 트럼펫과 베이스 기타로 연주하는 조촐한 밴드였는데 이 두 악기의 조합이 좋았다. 중간 중간 음향 기기 들 사이에 노이즈로 삑~ 소리가 한 참 나기도 하고 두 사람의 호흡이 삐걱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라이브 연주에 감탄하고 있었다. 음반으로 재생되는 결함없는 완벽한 연주보다 불완전한 라이브 공연을 더 소중히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인생과 닮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불완전하지만 좋은 연주를 들으며 첫 날 상하이의 밤이 깊어갔다. 트위스트는 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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