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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L Nov 05. 2020

무쓸모의 쓸모

버려진 음식의 재탄생


요리하다 보면 이따금 한숨을 내뱉게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음식물 쓰레기가 한가득 쌓여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으려 노력해보지만, 채소의 뿌리와 잎을 잘라내고 상한 부분을 다듬다 보면 금세 한 봉지를 채우게 된다. 과연 음식물 쓰레기를 생성하지 않는 날도 올까? 인류가 요리 또는 음식을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지 않는 이상 음식물 쓰레기는 피할 수 없는 문제일 거다.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문제는 오랫동안 거론되어 왔지만, 플라스틱 또는 재활용 쓰레기보다 비교적 주목을 덜 받는 듯하다. 다행히도 세계 곳곳에서 이를 놓치지 않고 다양한 방안으로 모색해 나가고 있는데, 음식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은 외식 업계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제로 웨이스트 레스토랑이다. 재료 손질을 하며 나온 음식물 쓰레기를 다시 비료로 활용하여 쓰레기를 하나도 남기지 않는 건데, 이와 비슷하게 식료품 마켓에서 버려진 재료들을 이용하여 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도 있다. 


또 유럽 곳곳에서는 푸드 뱅크를 활용하여 유통기한이 임박해졌거나 남은 음식을 다른 사람에게 기부하는 활동도 펼치고 있다. 나아가 버려진 재료를 활용하여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음식의 선순환을 끌어내는 곳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오늘은 마지막 사례에 해당하는, 음식물 쓰레기를 활용해 제품을 만드는 곳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맥주로 다시 태어난 빵

TOAST ALE


사진 : Toast Ale Instagram


빵을 주식으로 먹는 나라가 많은 만큼 빵의 소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버려지는 것도 꽤 많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빵의 약 1/3이 폐기되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매일 약 1백만 개의 빵이 버려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트리스트람 스튜어트Tristram Stuart는 아이디어 하나를 생각해낸다. 버려진 빵으로 맥주를 만들어 보는 것. 언뜻 생각해보면 빵이 맥주로 변신한다는 게 신기한 것처럼 보이지만 빵과 맥주 모두 곡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쉽게 대체될 수 있던 셈.


그렇게 하여 탄생한 곳이 바로 런던의 Toast Ale이다. 이름마저 '빵 맥주'인 이곳은 베이커리, 슈퍼마켓 등에서 버려지는 자투리 빵을 받아 맥주를 만들고 있다. 이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만은 아니다. 보리 1파운드를 생산하기 위해선 대략 65L의 물이 필요한데, 보리 대신 빵을 이용하면서 에너지 또한 줄이고 있는 것. 이를 통해 좋은 선순환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파인애플 잎으로 만든 가죽

Piñatex


사진 : Piñatex Instagram


파인애플이 자라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길고 긴 잎사귀 위로 작은 열매로 나타났다가 점점 몸집을 키우게 되는데, 우리가 먹는 크기까지 자라면 수확을 한다. 하지만 함께 자라난 파인애플 잎들은 대부분 태우거나 버려지게 된다. 영국에 위치한 Piñatex는 버려지는 파인애플 잎에 주목했다. 동물 가죽의 대체재로 말이다. 파인애플 잎은 질기고 강한 섬유질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방수 효과도 뛰어나 가죽으로 활용하기 탁월했던 것. 필리핀에서 파인애플 잎을 공수해와 옥수수에서 추출한 바이오 플라스틱인 PLA와 혼합하여 내구성 있으면서 유연한 가죽을 만들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죽은 언제쯤 상용이 될 수 있을까? 싶지만 이미 우리 일상 가까이에 와있다.


Piñatex는 2013년부터 비건 가죽을 개발해 온 회사로 이미 다양한 브랜드들이 이곳의 가죽을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앤아더스토리다. 지난가을, 앤아더스토리는 Piñatex 가죽을 이용하여 만든 가방을 선보였는데, 비록 소량으로 출시되었지만 빠른 속도로 품절되어 이에 힘입어 올여름 재생산한 바 있다. 또한 올해 초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넥스트 인 패션' 속에도 등장했다. 로큰롤을 주제로 한 에피소드 6편에서 민주킴과 에인절이 함께 만든 실버 의상을 기억하는가. 그 소재가 바로 Piñatex의 가죽이다. 파인애플 잎으로 옷을 만들 수 있는 건 머나먼 미래의 일일 거로 생각했지만 실상 아주 가까이 우리 옆에 와 있다.



앤아더스토리가 19 F/W 에 선보인 가방으로 Piñatex 가죽을 이용했다 / 사진 :  Piñatex Instagram





버섯을 입어볼까요?

Mylo


사진 : Mylo Homepage


버려진 음식을 활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기대되는 또 하나의 가죽이 있다. 바로 버섯으로 만든 가죽이다. 미국에 위치한 Mylo는 버섯을 이용하여 가죽을 만드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데, 필라멘트 구조를 지닌 버섯의 균사체를 활용하여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 버섯 가죽은 동물 가죽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적은 양의 물을 사용하며, 온실가스 또한 적게 배출하여 친환경적이다. 또한 가죽의 텍스처와 느낌이 동물 가죽과 흡사하여 대체재로 주목받고 있다.


비건 패션을 지향하고 있는 스텔라 매카트니는 이미 Mylo와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오고 있는데, 지난 2018년 런던 V&A 뮤지엄에서 진행된 'Fashioned from Nature' 전시회에 Mylo 가죽을 이용하여 만든 스페셜 에디션 백을 선보이기도 했다. 스텔라 매카트니에서 영향을 받은 걸까? 스텔라 매카트니를 비롯해 아디다스, 구찌, 룰루레몬을 보유하고 있는 케링 기업에서는 Mylo 가죽을 이용한 제품 출시에 몰두하고 있다. 내년에 버섯 가죽을 이용한 다양한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라니 기대해봐도 좋을 듯하다.




위의 사례처럼 버려진 음식과 부산물에 주목하여 새로운 제품으로 만드는 움직임은 꽤 오랫동안 진행되어 왔으며, 브랜드의 수도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브랜드들이 주요 브랜드로 부상하는 일은 시간문제다. 우리는 곧 파인애플 잎으로 만든 옷, 빵으로 만든 맥주 등을 일상생활처럼 활용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재활용 쓰레기를 플라스틱, 종이, 비닐 등으로 분류하여 버리는 것처럼 남은 음식 재료를 분류하여 각종 회사로 보내 좋은 쓰임에 활용되는 날이 오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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