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그려보는 미래
**2026년 1월 15일 오늘 일정
오후에 네일숍 예약을 해뒀다. 손톱 위에 붙여둔 마이크로칩이 어느덧 손톱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어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재부착하는 김에 네일 컬러도 바꿔줘야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고기 없는 정육점에 들려 저녁에 먹을 고기도 사 와야겠다. 고기와 함께 곁들일 쌈 채소는 스마트 팜에서 주문해볼까. 참! 얼마 전 논알콜 바가 새롭게 오픈했다고 하던데, 저녁 먹은 후 거기서 가볍게 술 한잔해야겠다.
상상력을 더해 5년 뒤의 일정을 써보았다. 몇십 년 전, 2020년이 되면 '하늘 위를 나는 자동차', '식량을 대체할 수 있는 알약' 등이 생길 거라고 상상해보았던 것처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2026년의 일정은 상상력만으로 작성한 건 아니다. 이미 세계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는 일을 수집하여 각색한 것으로 미래의 일상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일이다. 현재 우리의 일상은 어디까지 진화하고 있을까?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새로운 움직임을 통해 살펴보자.
우리는 편리함과 신속함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왔다. 과연 그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 인간은 어디까지 도구를 진화시킬 것인가? 최근 가장 재밌는 도구의 진화는 '화폐'다. 최근 몇십 년 사이에 지폐 또는 동전을 지갑에 넣어 다니던 시대에서 카드만 들고 다니던 시대를 지나 핸드폰 하나로 모든 걸 결제할 수 있는 시대까지 진화해왔다. 그리고 가까운 미래, 신체 일부 어딘가에 마이크로칩을 부착하여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최근 두바이에 위치한 라노어 뷰티 라운지(Lanour Beauty Lounge)에서 손톱 위에 마이크로 칩을 부착해주는 네일 케어 서비스를 시작했다. 근거리 무선 통신이 가능한 NFC 칩으로 연락처나 명함, SNS 주소 등을 상대편 핸드폰에 전송할 수 있으며, 상점에서 결제도 할 수 있다. 아직 많은 기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속해서 기술을 개발해 나간다면 핸드폰만큼 데이터를 넣을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물론 손톱에 부착한 마이크로칩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지속해서 손톱이 자라나기에 3주마다 재부착해줘야 하는 번거로움이다. 하지만 지갑 또는 핸드폰으로 결제하는 귀찮음과 3주마다 네일숍에서 재부착하는 귀찮음 중 사람들은 어떠한 것을 선택하게 될까? 일상 속 필수 수단으로 여겨지던 지폐와 지갑이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건 시간문제일 듯하다.
머지않아 거리에서 고기 없는 정육점을 마주할 수 있는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고기 없는 정육점이라니. 이 아이러니한 단어는 비거니즘에서 비롯되었다. 고기 대신 콩, 밀 등으로 대체육을 만들던 움직임이 비건 정육점에까지 도달한 것. 특히 영국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2020년 6월 영국 대형 마트 세인즈버리(Sainsbury)에서 'MEAT-FREE BUTCHERS'라는 간판을 내걸고 3일 동안 팝업 스토어를 진행한 것이 시초였다. 그 흐름을 이어 받아 11월 런던 북부에 루디스(Rudy's) 비건 정육점이 정식으로 오픈했다. 베이컨과 소시지, 미트볼, 버거 패티 등으로 채워진 쇼케이스를 보면 일반 정육점과 다를 것 없어 보이지만 모두 콩, 밀 등으로 만든 대체육이라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올해 1월에는 영국 슈퍼마켓 체인점 아스다(ASDA)에서도 비건 정육점 시장에 뛰어들었다. 식료품 브랜드 케이박스 글로벌(Kbox Global)과 함께 손잡고 아스다 매장 안에 콘셉트 스토어 '빌리셔스(VEELICIOUS)'를 오픈한 것인데 6개월 동안 시범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식물성 베이컨, 콩 버거, 미트볼 등을 판매하며, 비건 치즈, 비건 밀키트도 구비되어 있다.
해외 흐름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국내 비건 시장도 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0년 만에 비건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이 10배나 증가했으며 지속해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으로 보았을 때 머지않아 국내 거리에서도 비건 정육점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스마트팜의 도래는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 미래의 농업으로 주목받아온 지 오래되었으며, 활발하게 성장해가고 있는 분야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성장 속도가 빨라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 침투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11월 상도역 안에는 메트로 팜이 오픈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쌈 채소 및 새싹 채소 8종을 재배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자란 채소들은 유통업체 또는 레스토랑으로 판매되고 있다. 또한 바로 옆에 샐러드바를 함께 운영해 즉석에서도 즐길 수 있다. 메트로 팜을 넘어 이제 집 앞에서도 스마트팜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전시에서 아파트 단지 내에 스마트팜 형태의 아파트 농장을 만들어 주민들이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스마트팜이 주목받는 이유는 기존 농업보다 토지와 물 사용량을 월등히 줄일 수 있으며, 기후에 구애받지 않고 365일 내내 작물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이 한정적이어서 아쉬운 부분은 있다. 스마트팜에서 재배하는 작물이 지속해서 늘어가게 된다면, 머지않아 텃밭보다 스마트팜에서 기른 채소를 식탁 위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한편, LG와 삼성은 한 발 더 앞서나가 집 안에서 직접 채소를 재배하여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식물 재배기를 CES 2020에서 선보인 바 있다. 언제쯤 상용화가 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바로 코앞으로 다가와 있다. 올해 상반기 LG와 SK매직에서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건조기, 식기세척기, 스타일러에 이어 식물 재배기가 혼수 필수품이 되는 날도 오게 될까?
바에서 늘 비주류를 담당했던 논알콜 칵테일이 최근 조명받기 시작했다. 단순히 주류로 떠오른 정도가 아니다. 알콜 성분이 있는 술은 모두 밀어내고 오로지 논알콜로만 채운 바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9년 4월 뉴욕 브루클린에 문을 연 겟어웨이(getaway)는 등장과 함께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 분위기만 봐서는 여느 바와 다를 게 없지만 오직 논알콜 칵테일과 음료를 판매하는 것이 차별점이다. 간판도 논알콜을 의미하는 0%를 걸어 세웠다. 미국, 영국 등 서구권에서 시작된 논알콜 바의 흐름은 최근 아시아에도 도달했다. 작년 3월 도쿄에도 논알콜 바가 문을 열게 된 것.
이러한 흐름을 끌어낸 데에는 세계 최초로 무알콜 증류주를 만든 씨드립(SEEDLIP)의 영향이 컸다. 이전에 바에서 선보인 논알콜 칵테일은 음료 수준에 가까웠다면, 씨드립이 등장하면서 제법 술맛을 구현해낼 수 있게 되었다. 비슷한 맛이라면 숙취도 없고, 건강에도 좋은 논알콜 칵테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자연스레 논알콜이 트렌드로 떠올랐다. 비단 칵테일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논알콜 맥주 시장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해외는 물론 국내 맥주 회사에서도 앞다투어 논알콜 맥주를 출시하고 있다. 과연 저도수와 논알콜 트렌드는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살펴보았다. 어디까지나 현재의 작은 움직임이고 이 흐름이 어디까지 뻗어 나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순간들이 모여 미래가 되듯 이 중에서 몇 가지는 우리의 일상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과연 몇 개나 현실화가 될지 5년 뒤, 다시 이 글에서 확인해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