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팀장이 되던 날

by 가가

처음 팀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이 기억난다. 약 5개월간의 미국 장기 출장에서 돌아와, 그 사이 미묘하게 바뀐 사무실의 분위기와 새롭게 주어진 업무에 적응하느라 정신 없던 어느 날. 실장님이 작은 회의실로 나를 불렀다. 회의실 의자에 앉자마자 그녀는 마주앉아 노트를 펼치고 백지에 키워드를 써내려가며 조직 변화의 큰 그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휘릭 다음장을 넘기더니 선과 박스를 슥슥 그려나가기 시작한다. 빠르게 마구 날려쓰는 그 핸드라이팅이 멋져서 감탄을 하며 보고 있는데 어느새 새로운 조직도가 완성. 그리고 그 상자 어딘가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여길 00님이 맡아주면 돼. 준비됐지?"


그날 이후, 아직 조직개편 발표는 나지 않았지만 여러 리더그룹에 추가되며 메일과 정보 폭탄을 받기 시작했고, 원래 담당하던 일에 새로 맡게 될 팀 업무를 인수인계 받기 위한 온갖 미팅이 병렬로 이어졌다. 정신은 하나도 없지만 한편으로는 마치 '그들만의 리그' 처럼 여겨지던 리더 그룹 대상의 정보를 바로 공유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설레기도. 또 부담스럽기도. 그 사이 조직개편에 대한 소문이 퍼졌는지 메신저로 알음알음 건네오는 동료들의 축하에 얼떨떨하기도 하고, 조금 으쓱하기도 했던 시간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후 조직개편 발표가 났다. 그리고 그날, 평소엔 포커페이스 였던 부사장이 갑자기 내 책상 앞에 와서 노크를 똑똑똑- 또 그 작은 회의실로 오란다. 회의실에 들어서자 너무나 깜찍하게도 등 뒤에 숨겨둔 봉투를 내미시는데, 그 안에는 고급 호텔 숙박권과 식사권이 들어 있었다. 팀장이 된걸 축하한다며. 00님은 원래도 팀장처럼 일했는데 이제 진짜 리더가 된거라며, 평소엔 살벌하게 추궁만 하던 VP가 나에게 갑자기 명절에 만난 큰아버지처럼 따뜻한 덕담과 선물을 건네주시니, 아. 리더가 된다는건 이런건가? 그 몇주 사이 '리더' 라는 도파민에 거의 절여진 상태로, 그렇게 나는 9년차에 처음 팀장이 되었다. 그리고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최근 다양한 기업의 리더들, 그중에서도 특히 신임리더 대상의 1:1 코칭을 종종 진행하다보면 과거의 내가 자주 떠오른다. 처음 팀장이라는 역할을 맡게 된 나는 정말 엉망진창이었는데, 최근 코칭 과정에서 리더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도 잊은 줄 알았던, 하지만 (어쩌면 내가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억 저 깊숙한 곳에 묻어둔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답을 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미주알 고주알 털어놓으며 소주 한 잔 나눌 친구도 좋지만, 진짜 도움이 필요할 때 좀더 성숙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가까이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코칭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코칭에서의 답은 언제나 고객 자신에게 있으니.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담백한 현실조언이나 자주 발생하는 상황에서 한번쯤 시도해보면 좋을 방법론이 생각날 때마다 정리해야 겠다고.


언제부턴가 조직에서 리더가 되는 것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나는 여전히 조직에서의 진짜 즐거움은 '얼마나 달성했는가' 보다 '누구와, 얼마나 찐하게 경험하며 함께 해냈는가' 에 있다고 생각한다. 혼자가 아닌 팀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 괜찮은 리더로 성장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나 역시도 더 나은 리더십 코치로 성장하기 위한 고민과 배움을 이곳에 하나씩 적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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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mondrian-53.1347-2048x2031.jpg 덧. 머릿속에 마구 헝클어져 있을 때 몬드리안을 보면 조금 편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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